신라에 군사지원을 요청한 문주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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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수의 新 삼국사 산책

신라에 군사지원을 요청한 문주왕

신라왕실의 피가 흐르는 문주 통해 군사 1만 얻은 백제

정재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20-07-06 10:08:59

475년 고구려 장수왕은 3만 군사를 이끌고 대대적으로 백제를 침공한다. 장수왕의 남벌전쟁이다. 개로왕은 고구려군이 수도 한성(풍납토성/몽촌토성)을 포위하자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급히 신라에 군사지원을 요청한다. 이때 신라에 급파된 사람이 문주(文周)이다.

신라 지원은 문주왕의 특수관계

문주는 개로왕의 이복동생으로 당시 조정영수인 상좌평이었다. 문주는 비유왕(20대)이 신라와 왕실간 혼인동맹을 체결하면서 맞이한 신라 눌지왕(19대)의 딸 주(周)씨가 낳은 아들이다. 문주의 몸속에는 신라왕실의 피가 흐른다. 신라왕실과 특수관계이다. 『삼국사기』는 ‘문주가 신라에 파견되어 군사 1만을 얻어 돌아왔다(使文周求救於新羅得兵一萬廻).’고만 기록한다. 전후 맥락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어 우리의 상상만을 자극한다.

『신라사초』에 상세한 정황이 나온다. 신라에 파견된 문주는 순망치한(脣亡齒寒 - 『춘추좌씨전』 출처)의 고사를 들어 외삼촌인 자비왕(20대 - 눌지왕 장자)을 설득하고 자비왕은 지원군 1만을 내어준다.

그런데 문주는 신라에 머무르면서 신라귀족 보신(宝信)의 딸 보류(宝留)와 혼인한다. 백제의 존망이 걸린 위급한 상황에서 문주의 행동은 의외다. 물론 신라지원군을 얻어 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인다. 그러나 출동한 신라지원군은 일모성(충북 청원 양성산성)에 주둔하며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한다. 한성을 초토화한 장수왕의 군대가 파죽지세로 충청남도 북부지역까지 밀고 내려왔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신라지원군의 출동은 너무 늦는다. 이때 백제는 하남(河南·충남 아산 곡교천)에서 고구려군을 막아내고 신라는 감매(甘買·충남 천안 풍세) 벌판에서 고구려군을 맞이해 승리한다. 이로서 곡교천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대치전선이 형성된다.

나제동맹을 지킨 신라 자비왕

그렇다면 신라지원군은 북진했을까? 북진하지 않는다. 자비왕은 백제-고구려 전쟁이 신라로까지 확전되는 것을 경계했다. 그래서 지원군은 보내되 고구려의 추가적인 남진을 억제하는 수준에서 멈춘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고구려사략』이 흥미로운 내용 하나를 전한다. 장수왕이 신라에 사신을 파견해 백제 땅을 나눠 갖자고 신라에 제안한다. 자비왕은 사신으로 온 고구려 풍옥(風玉) 태자에게 자신의 두 딸을 시침(侍寢 - 잠자리)케 하며 단안을 내리지 못한다.(遣風玉太子于慈悲議分濟地慈悲以其女二人獻于太子侍枕太子以慈悲不奉詔責之慈悲疑貮不斷) 자비왕은 백제와 왕실간 혼인으로 맺은 나제동맹을 결코 외면하지도 버리지도 않는다.

문주는 신라의 지원에 힘입어 웅진(충남 공주)에 새로이 도읍을 정하고 즉위한다. 웅진시대를 개막한 21대 문주왕이다. 문주왕은 야마토에서 급거 귀국한 이복형 곤지(昆支)를 신라에 파견한다. 곤지는 신라 자비왕의 중재로 고구려 풍옥왕자와 정전협상을 벌이고 그 결과로 고구려군은 철수하며 장수왕의 남벌전쟁은 종결된다.

백제 웅진시대의 개막에는 신라왕실과 혈연으로 맺어진 문주왕의 특수관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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