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무소불위 공권력 “교과서 검열·폐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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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도서관에서 재야 인사 서적 사라지고 식당 포스트잇까지 검열

박선옥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0-07-09 14:22:09

▲홍콩 공공도서관에서 재야 인사의 책이 사라진 가운데 교육당국은 각 학교에 홍콩보안법에 위배되는 내용이 담긴 교과서와 참고서 등을 전부 폐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사진은 관련 보도하는 CNN 뉴스. [사진=CNN 캡처]

홍콩 교육청이 이달부터 시행된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에 저촉될만한 내용이 담긴 교과서, 참고서, 교재 등을 모두 폐기하도록 각 학교에 지시를 내렸다.

7일(현지시간) CNN은 이 같은 내용을 전하면서 이로써 홍콩인에 대한 검열 강화에 대한 우려가 촉발됐다고 보도했다.

CNN·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에 따르면 홍콩 교육청은 6일(현지시간) 일선 학교에서 사용하는 모든 교재를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또한 이날 홍콩 경찰에게는 인터넷과 출판사 등을 포함해 홍콩 지역과 시민들을 조사·감시할 수 있는 권한이 확장됐다고 매체는 전했다.

교육청은 성명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내용이나 홍콩보안법이 정한 4가지 범죄와 관련된 내용이 포함된 교재, 혹은 다른 중대한 범죄나 사회적·도덕적으로 용인할 수 없는 행위를 다룬 교재들은 (학생들에게 국가안보 의식이나 국가안보 수호 의식을 가르치기 위해 긍정적으로 사용된 경우를 제외하고) 모두 폐기시켜야 한다”는 지침을 내렸다.

이어 “학교 운영진과 교사들은 빠른 시일 내에 교과서를 포함한 모든 학습 및 교육 자료를 검토해야 한다”고 전했다.

7일(현지시간) WP에 따르면 홍콩 고등학교 교사인 돔 찬은 내년 중국역사 수업 계획표를 작성하던 중 상급자로부터 ‘이상한 요청’을 받았는데 그것은 중국 북송의 문인 소순 관련 내용을 삭제하라는 것이었다. 11세기 문인이자 철학자였던 소순은 전쟁과 군사개혁에 관해 유명한 글을 남긴 학자였다.

돔 교사는 WP에 “그들은 내게 ‘교과서를 꼼꼼히 살피라’고 하면서 ‘소순의 글은 학생들에게 폭력을 조장하고 혁명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심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WP는 송나라 시대의 문호가 (역사에서) 지워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안고서 이 26세의 젊은 홍콩 교사는 당국의 지시를 따랐다고 전했다.

WP는 중국 공산당이 홍콩의 자유를 박탈하면서 홍콩의 교사들은 중국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는 압박에 직면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 처벌, 강압, 감시, 선전식 교육 등을 통해 자유로운 사상을 가진 학생들을 조국에 충성하는 애국자로 탈바꿈 시키려는 당국에 의해 홍콩의 학교들이 ‘이념적 전쟁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홍콩보안법이 규정하는 4가지 범죄행위는 국가 분열, 국가 정권 전복, 테러 활동, 외국 세력과의 결탁 등이다. 이같은 범죄를 저지르면 최고 무기징역형 또는 10년 이상 형량으로 처벌될 수 있다. 홍콩보안법은 또 법을 위반한 사람들을 조사·기소·처벌할 수 있도록 중국 및 홍콩 당국의 권한을 대폭 늘리기도 했다.

새로 시행된 법은 대학을 비롯한 각급 학교에 ‘국가안보교육’을 도입한다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CNN에 따르면 지난 2012년 홍콩에서 중국시민교육을 도입하려 했을 때 홍콩 시민 수 만명이 거리로 나와 이는 중국 선전 전략이라고 거부하며 시위를 벌인 바 있다.

앞서 지난 주말 동안 홍콩 공공도서관에서는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인사들의 저서가 일제히 사라졌다는 현지 언론들의 보도가 있었다.

5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홍콩보안법 시행 후 홍콩 내 공공 도서관에서 조슈아 웡 등 홍콩의 대표적인 민주화 인사들의 저서가 모두 사라져 열람 및 대출이 불가능하게 됐다.

조슈아 웡은 지난해 송환법 반대 시위와 2014년 우산혁명의 주역으로 ‘홍콩 민주투사’로 알려졌다. 그 밖에 야당 의원과 재야 학자의 저서들도 역시 도서관에서 자취를 감췄다.

당국은 “보안법 시행에 따라 일부 서적의 법 위반 여부를 심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콩 경찰은 서적 뿐 아니라 식당 벽 등에 시민이 써 붙인 메모지까지 검열하고 있다.

홍콩 경찰은 최근 “메모에 정부 비판이 있을 경우, 보안법 위반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해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일부 식당들은 정부에 항의하는 의미로 아무 것도 적히지 않은 빈 포스트잇을 벽면에 잔뜩 붙여놓기도 했다.

[박선옥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박선옥 기자 sobahk@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