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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계가 굉장히 화려해 보이지만 뒤로 가면 일이 많은 직업이예요. 다 알려진 것이지만 지금 패션업계도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고 특히 이번 코로나를 맞아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더 큰 변화를 어쩔 수 없이 겪고 있죠. (패션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라면 정해진 틀 바깥에서 생각하고 보는 자세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기만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해요.”
패션 하면 일반적으로 생각나는 것은 ‘화려함’이다. 많은 이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 무대의 주인공이 된 자신을 그리며 지금 이 순간에도 패션업계로 뛰어들고 있다. 그러나 이면에는 창작에 대한 고뇌가 존재하고 성패에 대한 희비가 엇갈린다.
이 같은 적나라한 적자생존 법칙의 세계에서 독보적으로 두각을 드러낸 이가 있다. ‘패션의 본고장’ 프랑스 파리에서 약 30년을 머물면서 루이비통 등 세계적인브랜드에서 근무한 뒤 귀국해 100% 본토 기법으로 리미티드에디션(한정판) 스카프 등을 론칭한 김준희 몽키지(www.montkiji.com) 대표가 주인공이다.
“잃을 게 없었기에 낸 용기가 제 작품의 원동력이죠”
“한국에서 태어나서 파리에서 30년 정도 살았고 패션디자이너로 뉴욕·파리, 그 중에서도 대부분 파리에서 계속 일을 하다가 약 2년 전에 창업을 하게 됐어요. 우연한 기회에 한국에 오게 됐죠.”
서울 강남구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김 대표는 ‘높은 콧대’와 같이 패션디자이너에게 갖는 고정관념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랜 외국 생활로 인터뷰 과정에서 종종 영단어를 사용하긴 했지만 사무실 입구에서 기자 일행을 맞은 김 대표의 태도는 겸손함 그 자체였다. 기자도 여느 사람들처럼 패션디자이너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있었지만 김 대표의 나긋나긋하고 친절한 목소리 앞에 절로 ‘무장해제’될 수밖에 없었다.
“어릴 때부터 그림이나 디자인에 관심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 방향으로 나아가겠다고 특별히 노력한 건 없었어요. 패션디자이너라는 꿈을 꾼 적이 없었죠. 우연한 계기로 파리에 가게 됐는데 3개월쯤 되자 ‘평소에 하고 싶었던 게 뭐였지’ 생각하다 파슨스디자인스쿨(Parsons School of Design)에서 공부하게 됐어요. 우연히 파리에 가서, 우연히 패션디자인을 하다가, 모든 일이 일어났어요. 파리에 가면서 모든 일이 우연히 전개됐고 계획해서 일어난 일은 없어요. 계획했더라면 계획한 대로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솔직히 들어요. 우연히 시작했기 때문에 순조롭게 진행됐던 것 같아요.”
소녀 같은 인상의 김 대표의 삶은 한 편의 영화 같았다. 그가 처음 파리에 간 계기는 한국은행에서 근무하던 부친이 파리지점장으로 발령 났기 때문이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김 대표는 1년 휴학을 하고 부친을 따라 갔는데 그곳에서 30년을 살게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매해 “1년 더”를 외치며 패션업계에서 성공하기 위해 앞만 보고 노력했던 것이 오늘날에 이르게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제 삶의 시작은 파리라고 생각해요. 한국에서는 딸로서, 학생으로서 주어진 삶을 살았지만 주체적으로 어른으로서 제 삶을 시작한 건 파리라고 생각하기에 어떤 면에서는 파리가 훨씬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점도 있어요.”
파리를 인생의 시작이라고 밝힌 김 대표는 그러나 파리에서의 좋았던 기억을 묻는 질문에는 고개를 내저었다. 타인이 볼 때 ‘파리지앵’이라고 한다면 코냑으로 상징되는 호화로운 삶을 상상하기 마련이지만 김 대표에게 파리는 피 말리는 경쟁의 현장이자 ‘전쟁터’였기에 그러하리라는 짐작이 들었다.
“파리가 좋고 아름답다 이런 생각은 처음부터 전혀 들지 않았어요. 좋다고 생각된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파리를 떠났을 때였죠. 예를 들면 일 하느라 뉴욕에서 3년 반 동안 지낼 때가 있었는데 파리를 떠나서 밖에서 보니 좋은 점과 나쁜 점이 확실하게 보였어요. 파리는 어떻게 보면 처음부터 사랑하지는 않았어요. 편한 걸로 치자면 한국이 편하죠.”
질문을 바꿔 파리에서의 안 좋았던 기억을 묻자 김 대표는 동양인에 대한 일부 현지인의 편견을 꼽았다. 30년 전만 해도 프랑스에서 ‘동양인 패션디자이너’는 드물었다고 한다.
“제가 처음으로 커리어를 시작할 때만 해도 한국은 (프랑스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 동양인이 패션계에 많이 있지 않았어요. 동양인들은 음식점을 한다는 식의 편견이 있었는데 뉴욕에 가서 그걸 깨달았죠. 똑같은 사람인데 뉴욕 사람들이 저를 보는 눈은 완전히 달랐어요. 뉴욕에는 성공한 동양인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죠. 예를 들면 ‘똑똑할 것 같고 잘할 것 같다’처럼 좋은 점만 봤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뉴욕이 더 많이 클 수 있는 기회가 됐던 것 같아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 김 대표가 어려움을 딛고 루이비통·마크 제이콥스·소니아 리키엘·엠마뉴엘 웅가로 등 세계 정상급 브랜드에서 일하게 된 원동력이 궁금해졌다. 김 대표는 주저 없이 ‘용기’라고 밝혔다. 대답하는 김 대표의 표정은 이역만리 먼 타국에서 편견에 맞서며 지냈던 그 시절이 생각나기라도 한 듯 일순간 결연해졌다.
“솔직히 성공이라고 하긴 그래요. 다만 열심히 했기 때문인 것 같고 용기가 있었던 것 때문인 것 같은데 (현지인들이) 제가 누군지 모르는 상태에서 저를 증명해야 하기에 열심히 한 것 같아요. 솔직히 잃을 게 없어서 용기가 있었던 것 같고요. 그 두 가지가 비결이 아닐까, 라고 말씀 드릴 수 있겠네요. 제 인생 전체가 굴곡이 있었던 것 같지만 지나와서 생각해보니 이 굴곡을 통해 저라는 사람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기에 감사하게 생각해요.”
“프랑스의 美를 한국에서 느끼실 수 있게끔 노력해요”
“제가 고마워서 선물을 드리고 싶은 분이 있었는데 ‘세상의 모든 걸 가진 분에게 무슨 선물을 드려야 할까’ 하다가 ‘커스텀메이드(맞춤형)가 필요하다, 내 감사한 마음을 전달해야 되겠다’ 해서 생각한 게 스카프였어요. 그것을 계기로 몽키지를 창업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는데 여기까지 오게 됐죠.”
숙연해졌던 분위기도 잠시였다. 김 대표는 ‘프로 패션디자이너’답게 제품 이야기를 꺼내자 자세를 고쳐 잡고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전문용어를 곁들였기에 간혹 알아듣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그는 기자를 배려하려는 듯 최대한 쉬운 말로 풀어주려 노력했다.
“창업을 할 때 저는 커스텀메이드 스카프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무렇게나 하는 게 아니라 글로벌 브랜드와 같은 수준으로 하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러다 보니 리미티드에디션 스카프라고 해서 제가 (창작) 하는 디자인도 같이 하게 됐어요. 그래서 한국에서는 커스텀메이드 스카프보다 리미티드에디션 스카프를 더 많이 보여드리고 얘기를 나누고 있어요.”
김 대표가 디자인한 리미티드에디션 스카프는 비전문가인 기자가 봤을 때도 문양이나 색상 등 여러 면에서 시중의 여느 스카프와는 차별화된 뭔가가 있었다. 그 덕분에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몽키지 제품을 찾는 발길이 이어진다고 김 대표는 설명했다.
“저희 제품은 100% 프랑스에서 만들었다고 얘기할 수 있어요. 옷감짜기 등 (모든 과정을) 프랑스에서 한 것이라서 100% ‘메이드 인 프랑스’라고 생각하면 돼요. 커스텀메이드 스카프는 한국에서는 얘기를 많이 안 하고 해외에서 더 많이 얘기하는 편이예요. 예를 들어 지난주에는 바레인에 살고 있는 남성분이 청혼을 위해 약혼녀에게 (선물할 목적으로) 주문하기도 했죠. 가면 갈수록 (구매층) 범위가 넓어지고 있어서 커스텀메이드 스카프가 어느 시장에서 어떻게 발전할지는 지금 상태로서는 잘 모르겠어요. 리미티드에디션 스카프는 한국 분들이 많이 좋아해주셔서 기쁘게 생각해요.”
자신의 작품들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고 실제로도 국내외 고객들 사이에서 인정받는 김 대표였지만 한국·프랑스 양국의 패션디자인 업계 차이를 묻는 말에는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제가 패션업계를 얘기한다는 건 외람된 얘기예요. 한국 패션업계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지만 다만 먼발치에서 관심 있게 지켜보는 입장이에요. 저도 한국 사람이니까 한국 패션업계가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죠.”
[오주한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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