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선 투표 둘러싼 잡음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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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선 투표 둘러싼 잡음이 부럽다

박선옥 논설실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20-11-06 00:02:42

미국이 대선으로 분주하고 시끄럽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조 바이든 전 부통령, 두 후보가 서로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저마다 승리를 장담했으나 승자는 오로지 한명 뿐이고 그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간다. 아바의 저 유명한 노래 ‘The Winner Takes It All(승자독식)’은 사랑의 승리자가 모든 것을 차지한다고 말하지만, 이는 정치와 선거의 세계에서도 딱 들어맞는 말이다.

특히나 미국 대통령 선거는 우리와 달리 주마다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인단을 뽑는 것을 대선이라 부르는데, 이는 이후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뽑는 과정은 소속 정당의 숫자로 이미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각 주에서 두 후보를 놓고 국민들이 투표를 하면 이긴 후보가 그 주에 배정된 선거인단을 모두 가져가기 때문에 승자독식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런 만큼 유권자의 표 한 장은 경우에 따라서는 주 선거인단 전체를 의미할 수도 있다. 한 표만 차이가 나도 승자독식 원칙에 따라 주 선거인단을 모두 가져가기 때문이다. 미국 대선 선거인단 수는 모두 538명이다. 이는 미국 하원(435명)과 미국 상원(100명) 숫자를 합한 535명에 워싱턴 DC 선거인단 3명을 합해서 정해진 것이다. 사실상 미국민들은 트럼프나 바이든에 투표를 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서약한 선거인단에 투표를 하는 셈이다.

캘리포니아주(55명)나 텍사스주(38명)처럼 선거인단이 많은 주는 후보의 당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 영향력이 유권자의 표 한 장으로 갈릴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알래스카·와이오밍 주의 경우처럼 선거인단이 3명에 불과한 곳도 있다.

단 한 표 차이로 당락이 갈릴 수도 있는 상황이어서 그런지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일 수 개월 전부터 우편투표에 대해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올해 5월 트위터에 “우편투표는 상당한 사기가 일어날 수 있다” “우편함이 탈취되고 투표용지가 위조·불법 인쇄될 수도 있다”면서 우편투표 제도의 확대를 경계하고 나섰다. 우편투표는 미국에서 이미 실시되고 있었지만 코로나(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비대면 투표가 가능한 우편투표를 이용하도록 확대하는 주들이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경쟁자 바이든 지지층에 우편투표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꼼수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사실 투표장에 직접 가서 한 표의 권리행사에 적극적인 부류는 민주당 지지자 보다는 공화당 지지자가 훨씬 많다는 통계가 있다. 그런 만큼 트럼프로서는 우편투표가 못마땅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투표과정이 개인적인 공간에서 이뤄지는 만큼 악용될 소지는 충분히 있다. 공화·민주 양당이 함께 참여한 연방선거개혁 위원회에서도 “우편투표는 투표자 부정이 발생할 수 있는 가장 큰 원천이다”고 인정한 바 있다. 예를 들어 양로시설에 있는 노인들은 의사 표현이 어려울 수도 있고 쉽게 주변인에 의해 매수당할 수 있는 취약지대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투표는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말은 너무나 귀에 익은 표현이고 당연히 여겨져 왔다. 하지만 이번 미국 대선 과정에서 드러나는 ‘투표’라는 제도는 민주주의의 꽃을 아름답게 피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하게 한다.

민주정치를 최초로 실시했던 고대 아테네에서 철학자 플라톤은 민주주의는 ‘어리석은 대중들의 정치(중우정치)’가 될 수 있다며 경계했다. 아마도 플라톤은 매수당한 양로원 노인의 한 표가 다른 유권자의 한 표와 똑같은 가치와 권리를 지니도록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약점이라는 것을 앞서 간파한 듯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시작 전부터 “이번 선거는 결국 대법원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언명했다. 그래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의 공석을 서둘러 보수성향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으로 채웠을 것이다. 그는 연방대법관 후임을 서두른 이유를 묻는 질문에 “우편투표를 전면적으로 확대할 경우 부정선거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답했다. 실제로 펜실베이니아주에서는 투표용지 9장이 폐기된 것이 발견됐는데 그 중 7장은 트럼프 지지표였고 나머지 2장은 밝혀지지 않았다.

대선 후 누가 당선되어도 양 진영 지지자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어나 폭동이 생길 것을 우려해 미국 대도시 명품숍 윈도우는 나무판으로 가림막을 세워두는 등 소요에 대비하는 분위기다. 여기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우편투표에 대한 불신과 불복 의사 표현의 영향이 클 것이다.

민주주의란 아름다운 꽃만 피우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지난한 과정들이 수반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에서 제기된 부정선거 의혹은 너무도 다르다. 미국은 대통령이 나서서 부정 선거를 경계하고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반면, 한국에서는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목소리들이 마치 진공상태에서 외치고 있는 듯 이에 대한 메아리도 반응도 전혀 없다.

반대의 목소리를 강력히 제재하고 거짓말으로라도 항변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반응이라는 사실을 요즘 절실히 느끼는 중이다. 그런 의미에서 투표를 둘러싸고 시끄러운 미국의 상황이 오히려 부러워진다.

박선옥 논설실장 sobahk@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