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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년 동안 울산광역시는 현직 시장인 송철호와 전직 시장인 김기현의 진흙탕 싸움으로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지역 정치인의 주도권싸움에 경찰과 검찰까지 가세했고 전‧현직 공무원들도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격으로 유탄을 맞았다.
한국 경제는 1980~90년대 조선·철강·석유화학 등 소위 말하는 ‘중후장대’산업이 주도했고 2000년대 이후에는 반도체·액정표시장치(LCD)·발광다이아드(LED)·유기발광다이오드(OLED)와 같은 ‘경박단소’산업이 성장을 이끌고 있다.
울산의 주력산업인 자동차·조선·석유화학이 글로벌 경쟁력을 잃으면서 도시가 쇠퇴하고 있다. 관광·로봇·신재생에너지 등 신성장동력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울산시의 자치행정을 국가정보전략연구소가 개발한 ‘오곡(五穀)밸리혁신(5G Valley Innovation)’ 모델을 적용해 평가한 결과를 살펴보자.
정체성 없는 정치로 허둥거리며 미국 러시트벨트처럼 몰락 중
지방자치시대가 시작된 이후 울산 시장은 광역시가 승격되기 전에 심완구, 1997년 광역시로 승격된 이후에는 심완구·박맹우·김기현·송철호가 차례로 시장을 역임했다. 울산은 TK와 같이 한국 정치사에 양대 산맥을 형성한 PK의 변두리에 불과했지만 보수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정부의 친기업정책으로 노동탄압이 지속되면서 1980~90년대 강성 노조의 터전이었다. 현대자동차가 위치한 북구와 현대중공업이 소재한 남구는 노동자 출신의 지역정치인 진출이 두드러졌다. 그럼에도 보수 중심의 지역 할거주의 벽을 넘지 못했다.
보수 출신인 심완구·박맹우·김기현은 산업도시·환경도시·국제무역도시·창조도시·문화도시를 건설하겠다고 주장했다. 반면 진보 출신인 송철호는 일자리 창출·노동 존중·복지 중심의 시정을 펼치겠다고 공언했다. 시정 구호를 살펴보면 보수는 산업화의 그늘을 벗지 못했고, 진보는 복지의 환상에 젖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박맹우와 김기현은 울산을 국제무역도시·국제산업도시로 육성한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산업이 추락하는 현실을 극복하지 못했다. 송철호도 ‘시민과 함께 다시 뛰자’는 구호를 외치지만 ‘어디로 뛸 것인지’에 대한 방향도 불명확하고 건강·환경·관광·노동 등과 같은 추상적인 비전만 강조하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온 이주민의 비중이 높아 애향심이 부족한 것도 울산의 정치가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이유다. 시민들이 현명하게 지역정치를 심판하지 않으면 포항·구미·거제·고성 등과 함께 미국 북부의 러스트벨트 도시처럼 몰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2012년부터 디플레이션에 진입했으며 자체 신성장동력 확보는 실패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울산시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68조원으로 전년 74조원 대비 7.2% 감소했다. 2017년 75조원과 비교하면 10% 이상 줄어들었다, 2012년부터 발전이 정체됐다가 2017년부터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주력산업인 조선과 자동차가 침체된 것이 주요인으로 분석된다.
1인당 GRDP는 전국 1위로 높지만 6대 광역시 중 소득역외유출은 가장 많다. 즉 지역에서 창출된 부가 외부로 유출되면서 지역경제 활성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2012년부터 지역경제는 디플레이션에 진입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역경제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64%로 높다. 자동차·조선·석유화학이 핵심인데 조선과 석유화학은 저가공세로 나오고 있는 중국, 자동차는 일본·독일산의 무차별 공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2011년 지역 수출액이 1000억달러를 넘었는데 2021년 743억달러로 축소됐다. 그나마 2021년 수출액은 전년 대비 32.5% 늘어났다.
문제는 현재의 위기가 진행 중이며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4차 산업혁명의 글로벌 변화 물결에서 뒤처지고 있기 때문이다. 울산시장과 공무원이 경제문제를 냉정하게 인식하거나 해결할 능력은 없고 외부 경제효과에만 기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2021년 12월 기준 울산의 인구는 112만명으로 2015년 120만명까지 증가했다가 매년 약 1만명씩 줄어들고 있다. 광역자치단체 중 울산시의 지역 소멸위험지수는 1.46으로 가장 높다.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대거 퇴직하며 의료수요가 높아지고 있지만 의사는 인구 10만명당 150명에 그쳐 전국 시도 중 꼴찌다.
공무원의 부패는 지연·혈연·학연으로 얽혀야 활성화되게 마련이다. 울산은 지역토착민 보다 외지인이 많고 시청 내 다수의 파벌이 존재해 부정부패는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전직 시장 측근의 비리 혐의, 고래고기 환부사건 등을 보면 고위 공직자의 밀실거래와 같은 은밀한 부정부패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3대 산업 침체도 인재육성을 소홀하게 대한 것이 주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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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 오동훈] ⓒ스카이데일리 |
울산은 궁벽한 시골 어촌마을에서 갑자기 대규모 산업도시로 단기간에 성장해 문화적 기반이 전무한 실정이다. 그럼에도 울산고래축제·처용문화제·한글문화예술제 등 연간 수십 개의 축제가 끊이지 않고 개최된다. 그나마 성공한 것은 고래축제이다.
장생포는 고래잡이가 허용될 때 고래고기의 주산지였지만 포경이 불법으로 지정되면서 쇠락했다. 고래축제가 활성화되려면 일본 오사카 인근의 타이지처럼 일정 규모 고래를 합법적으로 잡을 수 있어야 한다. ‘바다의 로또’라고 불리는 고래잡이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불법어업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나마 보존가치가 있는 문화재로는 반구대 암각화를 꼽을 만하다. 수몰돼 원형이 많이 손상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한데 여전히 개발 논리와 부딪힌다. 선조가 물려준 위대한 문화유산도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며 문화관광도시로 발돋움하겠다는 발상이 놀랍다.
울산의 조선·자동차·석유화학은 한때 글로벌 시장을 호령할 정도로 경쟁력을 갖췄었다. 전국에서 수많은 인재가 몰려들어 근로자의 기술 수준은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인력을 양성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고 수수방관하는 사이에 경제를 이끌던 3대 산업의 부진에 빠졌다. 첨단기술 인재가 부족한 것이 주요인이다.
미국·독일·일본의 주요 산업도시와 글로벌 기업들이 인재육성을 위해 합심하는 것도 지속가능 성장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울산이 재도약하고자 한다면 자치단체·기업·대학이 합심해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를 늘려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유능한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
지방선거에서 기존 공약 재탕하는 기존 정치인 퇴출시켜야 경제 회생 가능
울산의 자치행정 진단결과는 총 50점 만점에 20점, 평균 4.0으로 낙제점 수준이다. 그나마 경제와 기술은 국내 최고 산업도시의 위상을 감안해 각 6점을 받았다. 반면 전·현직 시장이 진흙탕 싸움을 하는 정치와 문화유산을 방기한 문화는 각 2점으로 최하점을 기록했다.
일자리를 찾아 도시를 떠나는 인구가 점점 늘어나고 주력산업의 경쟁력 회복이 더딤에도 불구하고 외곽순환고속도로 건설과 산재전문병원 유치와 같은 개발공약에 몰두하는 것을 보면 아직도 경제 퇴보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6월1일 지방선거에서 다시 진보와 보수가 치열하게 경쟁할 것이지만 ‘그 나물에 그 밥’ 수준의 공약을 재탕할 것으로 예상돼 우려스럽다. 의식 있는 시민단체들이 합심해 기존 정치인을 퇴출시켜야 울산의 지방정치뿐 아니라 경제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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