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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선 최대 화제는 ‘젠더’였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대선 정국에서 ‘여가부 폐지’ 공약에 이대남(20대 남성)은 환호했다. 윤 당선인은 여성가족부를 양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할 것이라 알렸다. 윤 당선인은 정권교체에 성공했고 여가부는 존폐기로에 놓이게 됐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인 여성들을 위해 만들어진 핵심 부서를 폐지한다는 말에 여성단체 일각은 즉시 반발하며 젠더갈등 조장과 ‘성별 갈라치기’라고 쟁점화 시키는 양상이다.
여가부 폐지 논란은 앞서도 수 년에 걸쳐 공방이 오고 간 이슈였다. 이른바 남초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이대남들이 여가부의 여성우대 정책을 역차별이란 주장과 폐지 주장이 힘을 받아 확산했다. 이의 여론몰이에 나선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과 하태경 의원은 지난해 7월 대선경선 국면에서 ‘여가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고 표심을 공략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후보 되실 분은 폐지 공약은 되도록 제대로 냈으면 좋겠다”고 여가부 폐지에 힘을 보탰다.
여기에 최종 후보자가 됐던 윤 당선자는 대선정국이던 1월7일 ‘여성가족부 폐지’의 일곱 글자 공약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며 신호탄을 제대로 쐈다. 선거캠프의 간판 격인 원희룡 정책본부장은 최근 “일단 해체부터 하고 어떻게 할 것인지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고 응수하며 공약은 현실화했다.
여가부는 폐지 수순을 밟는 모습이다. 3월23일 윤 당선인의 인수위 여가부 파견 공무원을 인수위에 참여시키지 않기로 했다. 이번 인수위에서는 사회복지문화분과가 관련 공약에 대한 업무를 진행할 것으로 전해졌다.
인수위 사회복지문화분과 간사를 맡은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여가부의 모든 기능을 없애는 게 아닌, 성평등과 관련한 핵심 업무와 기능은 남겨둔 개편을 할 것임을 알렸다. 안철수 인수위원장이 여성단체 임원들을 만난 다음날인 지난달 31일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에서 ‘여성’을 뺀 후 인구문제를 대처하기 위한 부처로 확대 개편한 방향으로서 여가부를 저출산, 인구문제 등을 다루는 종합적인 부처로 통합,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여가부 폐지 수순을 밟는 것이다. 인수위는 다양한 여가부 개편안을 논의 중이다. 미래부는 여성 권익 증진을 위한 업무는 각 부처로 쪼갠 후 저출산·인구 감소 등 가족 문제에 초점을 맞춘 미래가족부를 신설하는 안을 낼 예정이다. 가족 부문 업무를 복지 업무와 묶어 ‘가족복지부’를 두는 안도 거론되고 있다.
여가부 올해 예산 규모 1조4600억원… 정부 전체 예산의 0.24%
올해 기준 여가부 예산은 1조4650억원으로 정부 전체 예산의 0.24%에 불과하다. 업무는 법무부, 보건복지부, 행정안전부, 교육부 등 관계부처와 조율해야 한다. 예산의 61.9%에 달하는 약 9000억원은 아동양육비 등 한부모 가족과 1인가구 지원 등 가족 정책에 쓰이고, 청소년정책엔 2717억원(18.5%)이 배정됐다.
남녀 구분 없는 복지정책에 쓰이고 있는 것이다. 여성·성평등정책 예산 규모는 1055억원(7.2%)에 불과하다. ‘오롯이 여성만을 위한 부처’ ‘여성 차별 우대 정책’이라는 논리가 힘을 얻기 힘든 구조임에도 여성우대 정부라는 오명을 가져왔다. 여가부가 ‘미래가족부’ 등으로 개편 될 여지가 높아진 셈이다.
우리나라의 여성 정책은 1945년 광복 이후부터 시작됐음에도 1980년대 이전까지는 여성에 대한 낮은 인식과 지위 때문에 유의미한 영향력을 갖지 못했다. 1948년 정부 수립 직후 정부는 사회부에 부녀국을 뒀으나 이후 사회부가 보건사회부로 바뀌면서 부녀국은 부녀아동국을 거쳐 가정복지국으로 변화했다.
1985년 ‘여성발전 기본계획’과 ‘남녀차별 개선 지침’이 채택되며 정부 차원에서 ‘여성정책’이 시작됐다. 여성정책의 흐름은 1990년대 들어와 상당한 변화를 나타냈는 데, 1995년 기본법이라 할 수 있는 ‘여성발전기본법’이 제정되며 여성정책에 대한 개념을 정의했다. 성평등 업무를 다루는 정부의 공식기구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98년 2월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로 2001년 1월 ‘여성부’로 발전했다. 당시 열악한 여성의 권익을 신장하고 남녀 성평등을 이루기 위해 각 부처에 분산된 여성 관련 업무를 통합했으며 한명숙 전 총리가 초대 장관을 맡았다. 성평등이 여권신장과 동의어로 여겨졌다.
여기에 여성운동에 힘썼던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의 상징성까지 더해져 ‘여성부’란 명칭이 만들어졌다.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5년 보건복지부에서 가족 관련 업무를 이관받아 여가부로 확대 개편했다. 2008년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여가부를 폐지하려다 여성부로 축소했다. 정부조직법을 개정하며 여가부가 수행하던 가족 및 보육정책 기능은 보건복지가족부로 이관됐다가 논란 끝에 2010년 다시 확대됐다.
현재 여가부의 소관 업무는 여성인력의 개발과 활용, 전방위적인 여성정책 기획·종합 및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를 포함해 청소년 활동 진흥 및 역량 개발, 양육·부양 등 가족 기능의 지원, 유해환경으로부터 청소년 보호 등이 포함된다. 이와 함께, 성폭력 피해자 상담 및 의료비, 집단 치료 지원 등의 업무도 적극 진행해왔다. 성폭력 관련 법 개정을 주도했다.
“선택적 성차별” 폐지 논란 자처한 역차별 여가부 행보
폐지 논란은 여가부가 불공정 시비에 휘말리며 시작됐다. 논란이 숱했다. 외모지상주의를 지양하고 다른 외모에 동등한 가치를 부여하도록 권고하는 내용이다. 2017년 이른바 ‘아이돌 외모 가이드라인’ 논란을 빚었던 ‘성평등 방송 제작 안내서’ 관련 정부가 방송 출연자의 외모까지 간섭하려는 시대착오적 규제라는 불만을 불러일으켰다. 2019년 배포된 ‘초·중·고 성평등 교수·학습 지도 사례집’이 양성 갈등을 부추긴다는 논란을 부추겼다. ‘김치녀’는 혐오 표현인데, ‘김치남’은 혐오 표현이 아니라는 내용이 담겼다.
같은 해 고(故) 장자연 사건의 증인 윤지오 씨에 대한 숙소와 렌터카 비를 예산으로 지원하려다 막히자 차관이 익명으로 편법 지원한 것까지 밝혀지자 논란은 일파만파 확산했다. 이듬해엔 여기에 성비위 사건에 휘말린 후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등진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 김잔디(가명) 씨가 여가부 폐지를 직접 주장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의기억연대 회계부정 의혹에 대한 국회의 자료 제출 요구까지 거부했다.
이 같은 편향적 행보는 여성인권 운동의 진정성에 의문을 품게 했다. 2020년 여가부를 폐지하라는 청와대 청원글에 서명자가 10만명을 돌파할 정도였다. 여가부는 지난해 5월 리얼미터에서 실시한 18개 정부부처 대상 ‘정책 수행 평가 결과’에서 꼴찌를 차지하기까지 했다.
여가부에 대한 여론 악화는 관련사업에 대한 운영난 및 지원 축소 등으로 이루어져 대상자들의 혼란과 혼동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성폭력 피해자를 365일 24시간 상담지원하는 해바라기센터는 여가부를 중심으로 지자체, 의료기관, 경찰청이 손잡고 성폭력 및 가정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기관이다. 2015년 성폭력 피해자 통합지원센터에서 이름을 바꾼 뒤 전국에서 39개소를 운영 중이지만, 운영난에 서울 동대문구의 삼육병원에 있던 서울북부센터에 이어 중구의 국립중앙의료원에 있던 서울중부센터까지 지난해 문을 닫았다.
고질적인 인력난과 재정난에 시달리며 적은 예산으로 성폭력 피해자 구제 서비스를 제공 중인 것이다.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에 빈틈이 생기고 있고, 지원을 받기 위해 대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이용 문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가족폭력 피해자까지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광의의 의미의 지원센터가 결과적으로 어려워졌다. 관계자에 따르면 해바라기센터의 경우 단순 여성 피해자를 지원한다는 이유로 이슈화가 되면 센터 운영이 어려워지고 상호연대하에 운영되는 센터의 모든 책임을 다시 여가부가 지게 되는 약순환이 번복되고 있다.
여가부 폐지에 대한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도 커지는 중이다. 역부 예산의 60%, 20%의 다문화 등 가족돌봄 등의 대상이 되는 한부모가정의 기초생활수급자, 학교 밖 청소년 등 청소년들의 불안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실제 자퇴를 한 후 여가부로부터 검정고시를 볼 수 있도록 교재와 수업 및 자격증 교육, 급식비, 교통비, 건강검진 지원 등을 받는 등 정책 수혜자들의 불안이 높아졌다는 게 중론이다.
최근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은 언론 기고문에서 “현재의 여가부는 회복 불가능할 만큼 국민 신뢰를 상실했다”라며 “권력형 성범죄에 단호하지 못하고, 거꾸로 권력과 가해자를 두둔하면서 여성권익 신장에 역행한 탓”이라 했다. 그는 “국민의 권익과 편의를 위한 체제 개편이자 개혁을 하자”면서 “‘여성가족부 폐지’는 개혁의지가 선명하고 확고하단 것을 알리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라 했다. 여성과 가족 그리고 일과 양육이 하나가 되는 진일보한 포용의 사회를 위해서라도 여가부 폐지 및 부처 개편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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