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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템임플란트의 2000억원 규모 횡령 사태를 시작으로 올해 들어 국내 주식시장에서 횡령·배임 사건들이 잇달아 터지고 있다. 모두 내부 회계에 눈이 밝은 임직원들이 저지른 범죄였다. 이에 소액주주들의 불안감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해당 기업들이 거래 정지 처분을 받거나 상장폐지 단계를 밟고 있기 때문이다. 상장사들의 부실한 내부 회계 관리로 개미투자자들이 재산을 날려버릴 위기에 처한 셈이다. 투자 심리도 꽁꽁 얼어붙었다. 횡령·배임 문제가 ‘코리아디스카운트(국내 증시 저평가)’ 원인으로 부각되면서 투자자들이 한국 주식시장을 떠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오스템임플란트·계양전기, 횡령 공시로 매매정지
1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횡령 등과 관련한 공시는 총 29건(정정 포함)으로 집계됐다. 유가증권시장에서 9건, 코스닥시장에서 19건, 코넥스시장에서 1건 발생했다. 내부회계관리제도 비적정을 사유로 투자주의환기종목으로 지정된 업체도 33곳에 달했다. 이는 작년 한해 동안 지정된 업체(17곳)보다 거의 두 배나 많은 규모다.
연초부터 주요 상장사에서 횡령·배임 사고들이 잇따랐다. 화장품 업체 클리오는 지난달 23일 제출한 사업보고서 및 감사보고서를 통해 횡령이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이에 따르면 클리오 영업직원 1명은 지난해 회사에 총 22억2000만원의 손실을 끼쳤다. 구체적으로 매출채권 11억1700만원, 재고자산 5억600만원, 거래처 피해 보상액 5억9700만원 등이다. 작물보호제 개발기업인 인바이오에서도 6억3700만원의 배임 사건이 일어났다고 공시했다.
대기업도 예외는 아니었다. 3대 통신사 중 하나인 LG유플러스는 지난달 초 횡령 사실을 인지하고 자체 조사에 착수했다. 영업담당 직원이 고객사와 허위 계약을 맺은 뒤 회사가 대리점에 지급하는 수수료 수십억원을 가로챈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피해 금액은 산출되지 않았지만 3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해당 직원은 사측과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앞서 2월 코스피 싱장사 계양전기에서는 대리급 직원이 2016년부터 재무제표를 조작하는 등 수법으로 회사 자금 246억원을 횡령한 것이 적발됐다. 해당 직원은 지난달 구속 기소되며 재판에 넘겨졌다. 임플란트 제조업체 오스템임플란트에서도 재무팀장이 회사 자금 2215억원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다. 국내 증시 역사상 최대 규모의 횡령 사건이었다.
악재가 터지자 주가는 휘청거렸다. 지난달 23일 2만1450원이던 클리오는 횡령 공시 다음날 7.46% 감소하며 1만9850원으로 고꾸라졌다. 13일(2만150원) 현재까지 주가를 회복하지 못한 상태다. 인바이오도 횡령 사건을 공시한 지난달 8일 이전 주가가 7700원이었지만 이후 4거래일 연속 하락하며 5650원까지 떨어졌다. 공시한지 한 달 넘게 흘렀지만 13일 현재 주가는 6280원에 머물고 있다.
일부 종목은 주가만 떨어진 게 아니라 거래가 중단되기도 했다. 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매매거래정지종목으로 지정된 상장사는 총 58곳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전체 46곳(해제 제외)보다 많다. 오스템임플란트와 계양전기는 각각 1월3일, 2월16일부터 거래가 중단됐다. 이로써 소액주주 등 개인투자자는 꼼짝없이 자금이 묶여 버렸다. 두 회사의 소액주주 수는 작년 말 기준 각각 4만2964명(99.99%)과 1만4374명(99.93%)이었다. 이들이 보유한 주식가치는 각각 1조2685억원, 542억원에 달했다.
상장폐지가 결정될 경우 피해는 더 커질 전망이다. 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5년 간 실질심사법인 210곳 중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한 기업은 총 38곳으로 드러났다. 코스피 2개사, 코스닥 36개사 등이다. 오스템임플란트, 신라젠 등 96곳은 기업심사위원회·상장공시위원회·거래소 등에서 상장유지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상장폐지 사유 중 1위는 ‘횡령·배임 사실 확인’(11곳)으로 집계됐다. 이어 ‘주된 영업의 정지’(7곳), ‘회계처리위반’(6곳), ‘불성실공시관련’(6곳), ‘관리종목·투자주의환기종목 관련 사유’(6곳), ‘내부회계관리제도 비적정’(3곳) 순이었다. 상장폐지 여부를 판단할 때 횡령·배임과 내부통제시스템을 중점적으로 들여다봤다는 얘기다.
이러한 영향 때문인지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시장을 떠나는 추세다. 금감원에 따르면 외국인은 지난달 국내 주식 4조8660억원을 순매도한 것을 비롯해 석 달 연속 순매도세를 보이고 있다.
김재은 NH투자증권 연구원은 “ESG 경영이 강화된 분위기 속에서 경영진 및 기업의 부정과 관련한 이슈는 기업 가치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요소”라며 “횡령, 상장폐지 심사, 분식회계, 내부자 거래 혐의, 코인 ‘먹튀’, 물적분할 등 여러 의혹이 불거지는 등 도덕적 해이 이슈가 코스닥 전체로 번지며 시장 신뢰도 문제로 연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횡령죄 형량 예측가능성 높여 위반 동기 원천적 억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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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오동훈 기자] ⓒ스카이데일리 |
전문가들은 횡령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내부통제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상장사 대규모 횡령 사태와 내부회계관리제도의 시사점’ 보고서에서 “내부회계관리제도의 인증 수준을 높여 설계·운영의 효과성에 대한 감사를 의무화하더라도 최고경영진의 의지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내부회계관리제도는 형식에 불과한 허상으로 남는다”고 분석했다.
그는 “문서화된 증빙자료를 통해 내부회계관리제도의 유효성을 입증하고 적정 의견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며 “경영진의 확고한 의지를 바탕으로 기업 내부에서부터 독립적인 감독과 전사적 지원이 수반돼야만 내부회계관리제도의 구축·인증에 투입하는 자원이 헛된 비용으로 낭비되지 않고 위험을 예방하고 운영효율성을 높이는 투자가 된다”고 진단했다.
내부회계관리제도 적용 대상을 늘리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내부회계관리제도에 대한 감사는 2019년 자산규모 2조원 이상 기업부터 단계적으로 적용됐다. 코스피·코스닥시장 상장기업의 횡령·배임 사건 발생 건수는 2019년을 기점으로 크게 줄었다. 2019년 93건, 2020년 79건, 2021년 55건이다.
특히 자산규모 2조원 기업이 많이 포진한 코스피 상장사를 중심으로 감소추세가 먼저 나타났다. 횡령·배임 사건의 전체 발생 건수에서 자산규모 2조원 이상의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도를 기점으로 47% 감소했다.
이 연구위원은 “작년까지 내부회계관리제도에 대한 감사를 받지 않은 자산규모 5000억원 미만 기업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는 내부회계관리제도의 인증 수준 상향이 내부통제를 고도화해 부정을 예방하는 데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고 말했다.
또한 횡령·배임죄의 형량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높여 위반 동기를 원천적으로 억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횡령·배임죄에 대한 권고형량 기준은 2009년 시행안에 머문 상태다. 범죄 이득액이 300억원 이상으로 권고형량이 가장 높은 제5유형에 해당해도 기본 형량기준은 5~8년에 해당한다. 범행수법이 불량하고 심각한 피해를 야기한 경우로 형량이 가중돼도 권고형량은 7~11년이다.
그는 “범죄 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일 때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적용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 가능하고 범죄 이득액 이하에 상당하는 벌금을 병과할 수 있다”면서도 “신뢰도 하락으로 인한 주가 폭락, 상당수 주주의 피해를 야기하는 상장사의 횡령·배임죄에 대해 어느 정도의 형량이 합리적일지에 대해선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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