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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연패함에 따라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이 와중에 당 혁신의 대상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것이 이른바 팬덤정치여서 그 실체에 대한 궁금증도 커지고 있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이 아닌 경우 때로 도를 넘는 행동을 보이거나 지지하는 정치인에 대해 무비판적 지지에만 함몰되는 것은 둘다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들의 행태는 당내에서 거센 지탄을 받은데 이어 이번 지방선거 패배를 기점으로 자성의 목소리가 하나둘 터져나오는 형국이다.
사실 민주당의 팬덤정치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정권 창출이라는 큰 성과를 일궈내면서 일부 정치인을 중심으로 팬덤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 이후 유사한 팬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며 팬덤정치의 신호탄이 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문파, 이재명 의원의 ‘개딸(개혁의 딸)’까지 모두 같은 맥락의 팬덤으로 분석된다. 특히 민주당의 주요 정치인들은 팬덤의 지지를 기반으로 정치를 펼치기 시작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노사모에서 시작된 민주당 팬덤 정치… 점차 과격해지며 부정적 면모 부각돼
민주당의 팬덤역사는 2000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사모에서 비롯됐다. 2000년 4월 16대 총선에서 노무현 당시 의원은 새천년민주당의 후보로 부산 북구·강서구을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당선이 확실시 됐던 서울 지역구에서의 출마를 포기하고 지역주의 타파를 기치로 내건 그의 선택을 두고 이후 네티즌들은 그를 ‘바보 노무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것이 국내 최초로 정치인 팬덤으로 평가받는 노사모의 출발점이다.
현재는 2019년 노무현재단에 운영비와 서버 등을 기증하고 노사모의 공식 활동을 끝낸 상태다. 노사모에 대해서는 지금도 참여민주주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팬덤에 기초한 국민 간 갈라치기의 시초라는 부정적인 평가가 엇갈리는 상황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며 노사모의 성공을 목도한 정치권은 이후 주요 정치인의 팬클럽이 생겨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 중 하나인 문 전 대통령의 팬덤인 이른바 ‘문빠’는 문 전 대통령의 지지층을 가리키는 멸칭이다. ‘문 전 대통령을 지킨다’는 의미가 담긴 달빛기사단‧문꿀오소리 등으로도 불린다.
이 의원의 정치 팬덤은 현재 팬덤 정치를 비판할 때 주로 언급되는 개딸과 양아들이다. 개딸은 ‘개혁의 딸’이라는 의미이고 남성 지지자를 의미하는 양아들은 ‘양심의 아들’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난 20대 대선 패배 이후 민주당에 약 16만명이 입당했는데, 그중 과반이 넘는 구성이 2030 여성인 것으로 알려진 점도 특이하다.
민주당의 팬덤 정치는 당 안팎에서 지속적인 비판을 받고 있다. 당내에서 팬덤정치를 당 혁신의 대상으로 꼽는 등 당 쇄신을 이끌다 6‧1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직에서 물러난 박지현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최근 계속해서 당내 팬덤정치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박 전 위원장은 지난 24일 자신의 SNS를 통해 특히 문 전 대통령의 팬덤을 꼬집었다. 그는 “문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동료들을 모두 적으로 돌린 극렬 팬덤의 뺄셈정치는 대선 패배의 원인 중 하나”라고 운을 뗐다.
박 전 위원장은 “폭력적 팬덤의 원조는 이른바 ‘극렬 문파’다. 이들은 문 전 대통령의 입장과 조금만 다른 발언을 해도 낙인 찍고 적으로 몰아 응징했다. 폭력적 팬덤은 민주당을 잘못하고도 사과할 줄 모르는 염치없는 정당으로 만들었다. 토론과 대화를 사라지게 하고, 당내민주주의를 병들게 했다”고 비판했다.
문 전 대통령의 팬덤이 문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기자와 기사를 ‘좌표 찍기’ 등으로 공격하고 이미 널리 알려진 ‘우리 이니(문재인) 하고 싶은 거 다 해’라는 구호에서 나타나듯 문파들의 문 전 대통령에 대해 무비판적인 지지성향을 두고 지적한 것이다.
최근 팬덤 정치 비판의 중심부로 떠오른 대상은 바로 이재명 의원을 지지하는 개딸들이다. 과격한 행동으로 반감까지 사면서 일각에서는 민주당의 ‘태극기 부대(강성 보수 지지층)’라는 지적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개딸들은 친문계(친 문재인계) 홍영표 민주당 의원이 대선과 지방선거 패배에 대해 ‘이재명 책임론’을 언급하자 홍 의원에게 문자폭탄에 이어 지역 사무실에 ‘치매’ 대자보를 붙이는 극단적인 정치 팬덤 행보를 보인바 있다.
홍영표 민주당 의원은 6일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와의 인터뷰에서 6·1 지방선거 참패의 원인으로 이재명 의원과 송영길 전 대표의 출마를 겨냥해 “많은 당내 사람들이 반대했었다”고 밝힌 바 있다. 홍 의원은 “선거가 코앞에 있기 때문에 그동안 문제 제기를 못했지만 평가를 하게 되면 책임을 지는 것 아니냐”며 연일 강도 높게 ‘이재명 책임론’을 거론하고 있다.
홍 의원의 주장에 개딸들이 붙인 홍 의원 지역구 사무실의 대자보는 출입문과 복도를 연결해 관계자의 출입을 막도록 붙어 있었다. 아울러 공휴일인 현충일을 틈 타 상당 시간 개재돼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붙인 3m 남짓 길이의 대자보에는 “우리 의원님보고 있으니 치매가 아닌지 걱정되고 중증 애정결핍 증상이 심각한 것 같다”는 글귀도 눈에 띄었다.
대자보는 또한 “우리 홍 의원님은 평생을 선거에서 이겨도 바로 다음 선거에 이길 생각만 하고 너무 짠하고 불쌍하게 4선 해와서 선거 지고도 사랑‧지지‧응원 받는 걸 전혀 이해 못 하는 게 슬프다”는 내용도 있었다.
점차 과격해지는 정치 팬덤, 내부에서도 우려 나와… 정치인이 브레이크 밟아야
개딸들의 이같은 과격 행보에 이재명 의원이 자신의 SNS에 자제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비호감 지지 활동은 저는 물론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은 커녕 해가 된다”며 자제를 당부했다. 그는 18일 지지자들과 만나서는 “표현을 포지티브(긍정적)하게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대구 가톨릭대 특임교수는 민주당의 팬덤정치와 관련해 “팬덤 정치와 강경파에 휘둘리는 민주당이 망하는 길로 가고 있다. 국민의 버림을 받을 것”이라며 “(계파 전쟁을 벌이는) 의원들이 팬덤 정치를 이용하고 있다. (팬덤 정치가) 민주당의 리스크가 됐다”고 지적했다.
장성철 교수는 “대선과 지선에서 진 정당의 (내홍은) 어쩔 수 없긴 하나 정도가 심하다”며 “전당대회가 코앞이니 컨트롤이 안 된다. 당권을 잡아 공천하는 게 주요 목표가 되어 이젠 죽기 살기로 싸울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이원욱 민주당 의원도 당내 팬덤정치를 비판했다. 이 의원은 “정치 훌리건(과격한 팬덤) 문제도 그렇다. 훌리건을 방치해 오랜 시간 호가호위를 누려온 친문부터 반성해야 한다”며 “친명 또한 현재 폭력적 언어를 내뱉는 정치 훌리건이 민주당을 위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임을 명심하고, 정치 문화를 바로잡기 위해 앞장서야 한다”고 경고했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팬덤정치가 부정적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정치인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 의원은 “자신의 지지자들이 다른 정치인을 공격하거나 상처 주고 과격한 행동을 할 때 ‘이러시면 안 된다’ ‘이건 틀렸다’ 라고 얘기하는 게 정치인의 책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며 “팬덤이 나쁜 길로 가지 않게 막을 책임은 누구보다도 그 팬덤의 애정 대상인 정치인한테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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