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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으로 초대형 경제 위기가 예상되면서 주요 금융그룹들이 하반기 경영전략을 수정·발표하며 위기대응에 나섰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 관리와 순익 사수를 위해 기본기 강화를 강조하는 모양새다.
현재 미국은 소비 위축에 따른 ‘R의 공포’가 확산 중이다. 일반적으로 경기 침체(Recession)는 국내총생산(GDP)이 2분기 연속 하락하는 경우를 뜻한다. 치솟은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과감하게 올리며 유동성 긴축으로 대응 중이지만 물가는 잡히지 않고 되레 시장의 변동성만 커져 경기가 빠르게 식고 있어서다.
이 같은 상황에 국내 금융그룹들도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해 보인다. 최고경영자(CEO) 및 은행장들은 전면에 나서 최대 실적을 운운하기보다는 자세를 낮추고 ‘기본에 충실하자’라는 모토로 하반기를 대비하기 위한 경영전략 회의를 개최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하반기 경영전략 키워드 ‘리스크 관리·내부 통제’
KB금융그룹은 1일 서울 그랜드 워커힐에서 윤종규 회장을 비롯한 전체 경영진 270명이 참석한 가운데 그룹의 전략목표와 방향을 논의하는 ‘2022 하반기 그룹 경영전략회의’를 대면 방식으로 개최했다. 2020년 1월 이후 첫 대면 회의였다.
이번 경영전략회의는 그룹 경영진 간 화합과 소통의 장을 마련해 물가상승 및 경기침체 우려 등으로 어려워진 경영환경 속에서 그룹 차원의 새로운 변화를 탐구하는 자리였다. 타운홀 미팅에 나선 윤 회장은 사전에 경영진들로부터 전달받은 ‘CEO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에 하나씩 직접 답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윤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고객의 신뢰를 잃지 않고 경제위기 상황 속에서 든든한 방파제 역할을 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위기가 닥치더라도 고객의 금융자산을 보호하고, 든든한 방파제 역할을 하는 것이 금융회사의 핵심”이라며 “어려운 상황이지만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금융지원과 중소기업에 대한 ESG 컨설팅 등 선두 금융그룹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자”고 강조했다.
윤 회장은 또 “기본으로 돌아가 고객가치 제고를 위해 최선을 다하자”며 “고객을 더 자주 만나고, 정성껏 관리해 드리자”고 주문했다. 각 금융 계열사들이 실적 유지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본업에 집중해 현 상황을 극복해 나가자고 독려한 것이다.
KB금융 관계자는 “경영전략회의가 2년여 만에 대면 방식으로 진행되면서 비대면 방식 때보다 더 활발하고 실질적인 논의가 진행될 수 있었다”며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시점에서 경영진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그룹이 나아갈 방향을 공유하고 구체적인 실행방안들을 머리를 맞대고 도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신한금융그룹은 7일 오전 본사에서 창업 40주년 기념 ‘신한문화포럼’을 열고 그룹의 발전 방향을 모색했다. ‘일류(一流) 신한’과 ‘혁신 DNA’를 조직문화에 안착시키고자 열린 이번 포럼은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과 그룹사 CEO, 임원, 본부장 등이 참여했다.
이날 신한금융은 사회적 책임과 금융혁신의 한 조치로 미래성장 주역인 청년층에 대한 대규모 지원책을 발표했다. 회사 측은 5년간 ‘신한 청년 포텐(Four-Ten)’ 프로젝트를 통해 △주거·생활안정 △자산증대 △일자리 확대 △복지증진 등 4개 부문에 총 14조원 규모의 금융지원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조 회장은 “창업 이후 경험한 IMF·금융위기·팬데믹 등 다양한 위기를 고객·사회·주주의 성원 속에서 극복할 수 있었다”며 “40대 장년이 된 신한이 청년층을 지원하며 고객과 사회에 이바지하겠다”고 다짐했다.
진옥동 신한은행 은행장은 15일 인천 송도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2022 하반기 경영전략회의’에서 △고물가·경기둔화 시기의 고객보호 강화 방안 △내부통제를 통한 리스크 관리 강화 등을 논의하며 “은행 중심으로 외부를 바라보는 ‘인사이드-아웃 싱킹’이 아닌, 은행을 둘러싼 모든 이해관계자 관점에서 우리 내부를 바라보는 ‘아웃사이드-인 싱킹’을 해야한다”고 역설했다.
하나금융은 경영전략회의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내부적으로 진행한다. ‘함영주 체제’ 4개월째에 접어든 하나금융은 지난달 초 8년 만에 비전 선포식을 열고 지주사 기업문화 부문과 전략 부문의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당시 ‘하나로 연결된 모두의 금융’이란 새로운 비전을 선포하고 고객·사회·혁신 가치에 방점을 둔 중장기 전략목표를 발표한 하나금융은 그룹의 경영 방향으로 혁신·신뢰·플랫폼 3가지를 제시했다. 아울러 이 같은 비전 달성을 위한 전략목표 ‘원 밸류(O.N.E. Value) 2030’을 통해 외형성장이 아닌 가치 중심의 금융그룹으로 탈바꿈하겠다는 목표도 내세웠다.
디지털 시대에 누구나 쉽고 편리하게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사업·채널·조직 등 전 부문에 혁신 의지를 담았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하나금융은 혁신상품 출시를 위해 그룹전략총괄 산하에 신사업전략팀을 신설했다.
함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혁신적 플랫폼을 통해 모두가 마음껏 금융을 즐기고 신뢰에 기반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도록 그룹 모두의 역량을 집중해 함께 비전을 이뤄가자”고 당부했다.
우리금융은 15일 서울 중구 본사에서 손태승 회장과 계열사 대표·임원 등이 참여하는 하반기 전략회의를 개최했다. 이번 경영전략회의에서는 올해 초 세웠던 경영전략을 토대로 상반기 성과를 점검하고 하반기 추진계획 등을 논의했다. 기업 디지털 혁신과 신사업 발굴을 논의하기 위해 MZ세대 직원들도 참여했다. 잇따라 발생한 횡령 등 금융 사고의 영향으로 기본 규율·책무나 내부 통제를 중시하는 메시지도 나왔다.
손 회장은 이날 임직원들에게 “코로나19와 금리 인상으로 어려움을 겪는 취약계층에 대한 금융의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며 “다양한 방안을 강구해달라”고 주문했다. 이어 “상반기에 고객 신뢰에 상처를 입은 아쉬움이 컸다”며 “물이 바다라는 목표를 향해 가다 웅덩이를 만나면 반드시 그 웅덩이를 채우고 다시 흐른다는 맹자의 ‘영과후진(盈科後進)’이라는 고사성어처럼 부족했던 점들을 확실히 재정비하고, 하반기는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다시 출발하자”고 격려했다.
손병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도 15일 경기도 고양시 NH인재원에서 열린 하반기 경영전략회의에서 “하반기 대내외 환경 변화에 따라 기회와 위기가 공존하는 시기가 될 것”이라며 “리스크 관리와 내실 경영에 역량을 집중하며 지속 가능한 경영을 실천해 달라”고 강조했다.
손 회장은 특히 “현재 금융시장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바탕으로 철저한 준비와 대응을 해 농촌과 농업인이 기대하는 농협금융 본연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줄 것”을 주문하며 “내부통제를 강화해 사고를 사전에 방지하고 대고객 신뢰를 유지해 달라”고 당부했다.
복합위기 속 금융권 공적 기능 부각
정부도 예측할 수 없는 하반기 복합 금융위기를 대비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5월 말에 열린 5대 금융지주 회장과의 간담회에서 “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하며 늘어난 유동성이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거시건전성 훼손을 초래하지 않도록 은행 등 금융회사 스스로의 선제적 역할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추 부총리는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비상한 각오로 대응해 나가고 있지만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며 “각 경제주체가 신발 끈도 동여매고 허리띠도 졸라매면서 힘과 지혜를 하나로 모아야 할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우리 경제의 혈맥인 금융 부분도 민생 안정과 경제 활력 회복을 위해 중추적 역할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올해는 하반기 메시지가 예전과 달리 비교적 단출하다”며 “국내외 경제 상황을 고려해 순익과 리스크 측면에서 혹시 모를 퍼펙트 스톰(경제 복합위기)에 대비해 기본에 충실할 것을 강조하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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