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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정부의 규제개혁 정책 중 하나인 '플랫폼 자율규제'가 첫발을 뗐다. 플랫폼 산업의 빠른 변화 속도와 입안자와 사업자의 이해도 차이 등을 이유로 꾸준히 자율규제를 요구해왔던 플랫폼 사업자들도 정부와 보조를 맞추고 있다. 이 제도가 정착되면 플랫폼 기업들은 이용자 반응을 확인하기 좋은 업종 특성을 살려 문제가 생길 때마다 빠르고 주도적으로 개선안을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업계 규제 개혁 한 마음… 플랫폼 분야 자율규제 첫 사례 탄생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7개 오픈마켓 사업자(△네이버 △십일번가 △위메프 △인터파크 △지마켓글로벌 △쿠팡 △티몬)의 판매자 이용약관을 심사해 불공정 약관 조항을 시정했다고 밝힌 것이 지난달 29일이다. 사업자들이 온라인 플랫폼 분야 자율규제의 취지에 맞춰 판매자들의 고충과 어려움이 큰 약관 조항에 대해 스스로 시정하기로 했다는 것이 공정위의 설명이다.
이번 불공정 약관 조항 시정은 플랫폼 자율규제의 첫 사례라는 점에서 눈길이 모아지고 있다. 플랫폼 업계가 성장하는 것과 맞물려 규제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도 지속적으로 제기돼왔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카카오의 독과점·골목상권 침해 논란이 일면서 플랫폼 업체 CEO들이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소환되고 ‘플랫폼 공정화법’이 발의되는 등 정치권을 중심으로 플랫폼 규제 논의가 핫이슈로 떠오른바 있다.
플랫폼 규제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과도한 규제가 혁신과 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한걸음 나아가 해외 기업과의 역차별 이슈도 쟁점화됐다. 플랫폼 기업의 경우, 인터넷이 국가의 경계를 넘어 지구촌 개념으로 연결망이 구축돼 있기 때문에 해외 기업들과도 직접적인 경쟁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국내 기업에만 규제의 칼날이 적용되고 국내에서 활발하게 사업을 펼치는 해외 사업자는 비껴간다며 국내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는 구도다. 즉 국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친기업 성향의 윤석열정부가 들어서며 플랫폼 자율규제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주목된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 장관은 지난 6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디지털 플랫폼 업계 간담회’에 참석해 자율규제 관련 정책 방향을 논의하며 물꼬를 텄다.
이종호 과기부 장관은 “혁신과 공정이 조화를 이루는 디지털 플랫폼 정책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이해당사자 간 합의에 기반한 자율규제와 플랫폼 사업자의 성장을 지원하는 진흥정책이 함께 어우러질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며 “관계부처와 함께 민간의 자율규제 노력을 적극 지원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자율규제 지원에 플랫폼 업계는 적극적인 협력 의사를 밝히고 있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정부에서 플랫폼 기업들과 함께 자율규제 방안을 논의하는 것에 대해 환영하며 앞으로 건강한 디지털 생태계를 위해 함께 지혜를 모아가겠다”고 강조했다. 남궁훈 카카오 대표도 “인터넷 업계가 이행하고 있는 자율규제 체계의 고도화를 위한 정부의 관심과 지원을 당부하는 한편 향후 관련 논의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와 업계가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플랫폼 자율규제 추진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지난 7월 ‘제1차 범부처 플랫폼 정책협의체’가 개최된 이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디지털플랫폼 자율기구 법제도 태스크포스’를 발족하며 틀을 갖췄다. 이후 지난달 19일 ‘플랫폼 민간 자율기구’가 출범하면서 플랫폼 자율규제가 본 궤도에 올랐다.
공정위는 “플랫폼 분야 자율규제는 다양하고 급변하는 플랫폼 분야에 대한 새로운 시장규율 거버넌스를 정립하는 것으로 자율기구를 기반으로 한 이해관계자 간 적극적인 소통·협력과 인센티브 제공 등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을 통해 실질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업계 변화 속도·현실에 규제 뒤떨어져… 빠르고 현실에 맞춘 자율규제 필요
플랫폼 자율규제가 필요한 이유로는 플랫폼 산업의 빠른 변화 속도가 우선 꼽힌다. 기술의 발전속도가 빨라지고 산업 환경의 변화에도 속도가 붙는 바람에 규제가 이를 따라오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 산업의 발전 속도만큼이나 빠른 구도 변화도 이유로 꼽히고 있다.
플랫폼 업계 한 관계자는 “플랫폼 업계의 변화가 빠르다는 것은 업계의 발전도 있지만 관련 업체들의 점유율이나 구도 변화도 의미한다”며 “어떤 업체가 독과점 우려가 있어서 규제하려고 했더니 규제가 다 만들어지고 나면 자연스럽게 경쟁자가 치고 올라오면서 해결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규제 입안자와 시장행위자 사이의 이해도 문제도 플랫폼 자율규제의 주된 근거 중 하나다. 지난해 공정위는 ‘온라인플랫폼 중개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내놓으며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의 성장 저하를 막기 위해 매출액 100억원 또는 중개거래액 1000억원 이상인 플랫폼을 대상으로 규정했지만 기준에 해당하는 기업이 너무 많아 기준을 10배로 확대한 바 있다. 이처럼 규제와 현실이 동떨어진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업계에서 자율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오히려 효율적이라는 얘기다.
플랫폼 산업 특성상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거론되고 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산하 디지털 연구소는 ‘플랫폼 산업에는 자율규제가 필요하다’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이용자가 증가할수록 힘을 갖게 되는 플랫폼 기업의 특성상 이용자의 반응에 민감하게 반응할 유인이 크다”며 “따라서 정부의 강제보다 이용자의 반응에 따른 자생 노력이 더 바람직한 방향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이어 “인터넷 환경에서는 이용자의 평가가 더 직접적으로 이뤄지며 자체적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주도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체계를 구축해 정부가 규율하기에 앞서 민첩하게 개선안을 제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한편 플랫폼 업계 자율규제가 이뤄지면서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분출되고 있다. 자율규제만으로는 플랫폼 업계가 독점적·지배적인 위치를 사용해 불공정 행위를 할 경우 방지하기가 사실상 어렵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민주노총, 참여연대, 전국가맹점주 협의회, 민변 등이 구성한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를 위한 전국네트워크’는 이달 1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소한의 기본적 규제 원칙을 담은 법률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를 위한 전국네트워크는 “현재 온라인 플랫폼 기업들의 다종다양한 불공정거래행위는 현재진행형”이라며 “자율규제로는 온라인 플랫폼 기업의 불공정거래행위를 막는 것이 불가능하며 관련 법 미비 및 정책 실종으로 규제 사각지대에 놓인 중소상인 및 자영업자, 플랫폼 노동자, 소비자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어 “윤석열정부가 주장하는 플랫폼 자율규제가 공정한 시장경쟁을 위해 어떠한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며 이는 플랫폼 기업의 이익만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플랫폼 업종의 특수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지만, 자율규제를 통해 불필요한 규제를 개혁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견해가 일치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플랫폼과 기존 산업의 차이점은 공장을 짓거나 원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훨씬 낮다는 것”이라며 “흔히 말하는 ‘갑질’ 문제에서도 갑이 여러 곳 존재하고 을이 이동하기 쉬운 구조이기 때문에 자율규제로도 불공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최승노 자유기업원장은 “모든 업종에 업종 고유의 특수성이 있고 불필요한 규제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아 플랫폼 업계만 특별히 고려해야 한다는 충분한 근거는 되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일반론적으로 보면 규제가 적을수록 경제에 이득이 되기 때문에 자율규제를 통해 규제를 개선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강조했다. 최 원장은 이어 “다만 플랫폼 업종에 대해서만 다른 규제방식을 적용한다면 형평성 논란이 일 수 있기 때문에 이번에 자율규제를 도입한다면 다른 업종에 대해서도 적용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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