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핼러윈과 시부야의 차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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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의 청담유감(有感)

이태원 핼러윈과 시부야의 차이점

같은 대비 기간에도 무감각했던 한국 경찰
당연히 늘려야 할 인원, 작년보다 적게 배치
디테일 갖추지 못하면 선진국 꿈 요원하다

홍찬식 필진페이지 + 입력 2022-11-09 09:24:24

젊은 세대 사이에 핼러윈 열풍이 일어난 것은 아시아 지역에서는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일본은 2013년, 한국은 약간의 시차를 두고 2018년 정도부터 유행이 불붙기 시작했다.

핼러윈 행사라고 해도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어린이를 위한 행사다. 여기엔 아무 문제가 없다. 둘째는 기업의 마케팅 용도다. 도를 넘지 않는 한 이 또한 봐줄만 하다.

셋째가 이번 이태원 참사로 이어진 자연발생 형이다. 핼러윈 당일이나 핼러윈이 낀 주말이 되면 젊은이들의 핫 플레이스로 인파가 몰려든다. 일종의 문화 현상이다. 군중이 밀집하면 늘 사고 위험이 따르지만 핼러윈은 더 아슬아슬하다.

핼러윈 축제는 참가자들이 제2의 캐릭터로 변신하는 가장(假裝)놀이다. 참가자들은 각자 아이디어를 동원해 공포 스토리의 등장인물이 되기도 하고, 영화 속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개개인의 정체성이 감춰지는 만큼 일탈의 여지가 크고, 통제 불능에 빠질 수도 있다.

한국에서 ‘자연발생 형’ 핼러윈이 아직 미약하던 2015년, 일본의 핼러윈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과거 한국의 크리스마스 때처럼 한 달 전부터 상점가에 펌킨 램프 등 관련 장식들이 앞자리를 차지했다. 핼러윈의 시장 규모가 우리 돈으로 1조2000억 원으로 4년 만에 두 배로 늘어났다고 했다. 서양의 낯선 명절을 갖고 왜 저러나 싶을 정도로 생소하고 뜬금없었다.

2015년 10월 31일 늦은 시각. 일본 도쿄 시부야가 가장 뜨겁다고 해서 호기심이 생겼다. 시부야역으로 가는 전철 안에 벌써 별난 복장을 한 젊은이들이 여럿 있었다. 역에서 나오자마자 길이 막히기 시작해 시부야 역 앞의 유명한 ‘스크램블 교차로’를 건너는 데도 꽤 시간이 걸렸다. 길 건너 유흥가에는 더 많은 사람이 운집해 있었다. 수많은 인파, 그것도 혈기 넘친 젊은이들이 한번 제대로 놀아보려고 밤새 판을 벌인다는데 일이 나도 크게 날 것 같았다.

경찰 당국의 대응이 궁금했다. 의외로 치밀하고 철저했다. 교통신호가 바뀌면 경찰관들이 횡단보도 바깥으로 나온 뒤 긴 띠로 폴리스라인을 만들어 인파를 통제했다.

일부 경찰관들은 키 높은 경찰차의 지붕 위에 올라가 상황을 관리했다. 이들은 마이크를 들고 ‘그 자리에 서 있지 말고 계속 이동해 달라’고 외쳤다. 모여드는 군중 속에서 사람들이 멈춰 있는 게 왜 위험한지는 이번 이태원 사고를 통해 실감했다. 일본 경찰의 요구는 일방통행 방식으로 인파의 순환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다른 편 길가에는 경찰버스를 세워놓고 차벽을 만들어놓기도 했다.

이튿날 신문을 보니 폭력·성추행 등의 혼란이 밤새 이어졌다고는 했으나 큰 불상사는 없었다. 올해 핼러윈에도 시부야 관련 영상을 찾아 보니 그때와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일본 경찰은 시부야에 핼러윈 열풍이 발생하고 2,3년 뒤에 이런 대응 태세를 갖췄던 셈이다. 한국에서 이태원이 ‘핼러윈의 성지(聖地)’가 된 것은 이보다 3,4년 뒤다. 한국 경찰에게도 올해까지 비슷한 대비의 시간이 주어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참사를 보면 한국 경찰은 핼러윈이라는 새로운 사회 현상에 무감각했고 그것이 참담한 결과를 빚은 것이다.

문제는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다. 일본의 경우 지진 태풍 등에 상시 노출되어 있는 ‘재난 국가’라는 특징이 있다. 2001년에 아카시라는 도시에서 불꽃놀이 축제 때 인파가 몰려 11명이 압사했던 경험도 갖고 있었다. 그런 점을 감안해도 두 나라의 차이는 너무 확연하다.

경찰이 이태원 참사를 막을 수 있는 기회는 두 번 있었다. 사고 3일 전 유관기관 대책회의와, 사고 당일 112로 잇따라 들어온 “압사 당할 것 같다”는 신고였다. 여기에서 코로나 이후 젊은이들의 분출 욕구가 심상치 않으며, 자칫 하면 대형 사고가 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없었던 것은 납득되지 않는다.

지난해 핼러윈 때 이태원에 배치된 경찰 인력은 215명, 올해는 137명이었다. 이 가운데 방역 담당 등을 제외하고 순수한 질서유지 인력은 지난해가 85명, 올해는 83명이었다. 터무니없이 적은 인력이다. 올해는 당연히 인원을 대폭 늘려야 했다.

이태원 상인회가 ‘경찰 인력의 배치 자제’를 요구했다고는 하지만 경찰이 그걸 순순히 받아들였다는 것은 치명적 위험 앞에 눈을 감았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사고 당일 이태원에는 폴리스라인도 경찰 지휘차량도 보이지 않았다. 현장 책임자들의 태만과 무책임도 크지만 새로운 위기 발생에 대한 감수성의 결여가 결국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는 자부심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과 선진국을 비교할 때, 경제력에서 한 단계 더 들어간 디테일에서는 아직 아니다. 앞으로 이 격차를 줄이는 일이 우리 사회의 중요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번에도 악마는 디테일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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