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 일병’의 어머니와 한국의 유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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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문의 영화세상]

정권 전복시키더니 선동이 최대 무기라는 사실 실감했나
타인의 죽음 정치 볼모로 삼으려는 세력 달라지지 않았다

조희문 필진페이지 + 입력 2022-12-08 11:13:08

이태원 압사 사고 사망자 유가족 일부는 지난달 22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철저한 책임 규명’을 촉구했다. 이 자리에는 ‘사망자 유가족’이라고만 해 마치 전체가 참석한 것처럼 보이게 했지만 사진으로 보아 참석한 사람이 스무 명 남짓할 뿐이었다. 158명의 사망자 유가족 중 7분의 1 정도 참가한 셈이다.

그나마도 이를 정치이슈화하려는 민변의 주도 아래 민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는 점에서 순수성이나 대표성을 곧이곧대로 인정하기는 어렵다. 일부 언론은 인터뷰에 참여한 유족의 울분에 찬 외침을 여과 없이 내보냈다. 장례식장까지 들어가 유가족의 절규를 그대로 내보내던 예전 방식 그대로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는 전장에서 숨진 라이언 형제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4형제는 각각 전투에 투입되지만 형들은 모두 숨지고 막내만 유럽 전선 어디에선가 전투를 벌이고 있다. 전쟁에서 4형제가 모두 숨지게 할 수 없다며 미군 지휘부는 마지막 남은 라이언을 구하기 위해 특공대를 투입한다.

영화에서 눈길을 끄는 또 다른 대목은 라이언 형제들의 전사통지서를 받아 든 어머니의 반응이다. 전장에 나간 4형제 중 세 아들이 전사했다는 비보를 받고 절망하는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미국 정부를 향해 ‘내 아들 살려 내라’고 원망하지는 않는다. 가슴이 찢어지지만 전쟁터에 자식을 내보낸 부모의 숙명으로 받아들일 뿐이었다. 유족회 같은 단체를 만들지도 않았다.

영화 속 어머니 같은 반응을 ‘9.11’ 테러라는 현실 상황에서도 보았다. 2001년 9월11일,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인 오사마 빈 라덴과 그가 이끄는 무장조직 알 카에다는 항공기 납치를 통해 미국 뉴욕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 D.C.의 국방부 청사 건물인 펜타곤을 공격했다. 3000명에 가까운 사망자와 최소 600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사건 희생자들 가운데 국가를 향해 ‘정부가 안보를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희생당했으니 책임지라’는 주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집단적으로 슬픔을 터뜨리지도 않았다.

▲ 10월31일 서울 용산구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핼러윈 압사 사고’ 희생자 추모 공간이 마련됐다. [사진=남충수 기자] ⓒ스카이데일리

비슷한 사고는 세계 곳곳에서 일어났다. 1985년 8월12일 오후 6시57분경 도쿄 하네다 공항을 출발하여 오사카로 향하던 일본항공 소속 보잉 747 여객기가 도쿄에서 100km 떨어진 군마현 부근의 타카마가하라 산 능선에 추락하여 탑승 인원 524명 가운데 520명이 숨지는 대형 사고가 터졌다. 단일 항공기 사고로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항공 사고였다.

2011년 3월11일에 일어난 동일본대지진은 일본 지진 관측 역사상 최고 규모인 진도 9.1을 기록했으며 이후에도 약 한 달간의 대규모 여진이 계속됐다. 사망자만 1만9668명, 실종 2526명, 부상 6242명, 재해민 약 47만 명, 주택 40만2699채·선박 2만8612척·항구 319개소 파손,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 등 추산 16조 엔~25조 엔의 재산피해를 냈다. 하지만 두 사건의 유족들은 일본 정부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

2005년 10월 경북 상주시에서 일어난 공연장 압사사고는 사망자 11명, 500여 명의 부상자를 냈지만 유족들은 정부나 지자체에 어떠한 책임이나 보상도 요구하지 않았다. 사고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 보상 협상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장례도 치르지 않겠다고 우기는 일이 밥 먹듯 벌어지던 것과는 달리 사고 사망자 유족들은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은 채 각자 장례를 치렀다.

자연스러운 모습이기는 했지만 비슷한 다른 사건에 비해 유가족들의 태도가 너무도 담담해서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더 놀랐다. 지금도 그때 보여준 상주 시민들의 의연함은 비슷한 사고가 날 때마다 회자되고 있다.

유독 우리 사회는 사고를 정치적 선동의 수단으로 몰고 가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세월호 침몰 사고는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던 교통사고 같은 것이었지만 좌파세력들은 온갖 괴담을 만들어 정권까지 무너뜨렸다. 정권에 최대한 타격을 주려던 좌파조차도 놀랐을 정도로 허술하게 무너지는 정권을 보면서 선동이야말로 최대의 무기라는 사실을 실감했던 듯하다.

이태원 사고는 말 그대로 사고였지만 좌파 세력들은 유가족들을 자극해 제2의 세월호 사건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유가족보다 야당이 더 열을 올린다. 왜 가만있느냐고 부추기기까지 한다. 우리 사회가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하지만 다른 사람의 죽음을 정치의 볼모로 삼으려는 정략은 달라진 것이 없다. 다만 정치의 볼모가 되지 않겠다는 유가족이 더 많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조희문 필진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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