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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각계에서 일본 상품을 불매하는 ‘노 재팬 운동’이 뜨겁게 일어난 지 어느덧 3년이 지났다. 지금 여행 상품을 필두로 불매 운동의 주요 타깃이던 여러 품목의 매출이 회복세를 보이면서 ‘노 재팬’ 열풍이 잦아드는 모양새다.
對 일본 수입 금액 반등세… 무비자·엔저에 일본 여행 열풍
이달 9일 금요일에 기자는 김포공항을 찾았다. 일본 출국 수속 절차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여행객들이 제법 보였다. 오랜만의 해외여행으로 기대감을 드러내는 한 여행객과 이야기를 나눠봤다.
일본으로 출국한다는 그는 “물가도 싸고 거리도 가까워서 금방 갈 수 있기 때문에 일본을 택했다”며 “주변에는 벌써 일본 여행을 갔다 온 사람들이 더러 있다”고 말했다.
일본정부관광청 자료에 따르면 10월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49만8600명 중 한국인이 12만2900명으로 가장 많았다. 전체 일본 관광객의 약 4분의 1을 차지한 셈이다.
일본 여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일본 관광 관련 상품의 판매량이 늘고 있다. 여행·예약 관련 사이트인 인터파크에 따르면 11월 일본 패키지 상품 예약이 전월 대비 3만3114% 증가했다. 주 요인으로 일본 정부의 무비자 자유 여행 확대와 엔저 현상 등이 꼽힌다.
일본 여행 수요가 확대되며 항공사들도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닛케이 신문 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인천-삿포로 노선과 인천-오키나와 노선을 재개해 전체 일본 노선을 11월 대비 60% 늘렸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일본 노선을 11월 대비 30% 늘렸다. 저비용 항공사인 에어서울·제주항공·진에어 등도 일본 노선을 늘리고 있다.
일본은 한국 사람들이 선호하는 여행지 중 하나였으나 2019년 일본 불매 운동으로 수요가 크게 하락했다. 당시 일본정부관광국 자료에 따르면 2019년 7월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은 전년 동월 대비 7.6% 하락했고 8월에는 무려 48.0%나 줄었다.
여기에 코로나19 유행으로 일본 정부가 단체여행에만 제한적으로 관광비자를 발급하면서 일본을 찾는 관광객 수가 크게 줄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일본 여행 수요의 급격한 상승은 코로나19 방역 완화와 함께 문 정부 시절의 ‘노 재팬’ 운동도 시들해져 가는 징조로 해석된다.
2019년 7월 일본 경제산업성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 핵심 소재의 한국 수출을 제한했다. 일본 정부는 수출 제한 조치가 안보상의 이유라고 주장했으나 대한민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소송 배상 판결 등에 따른 보복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일본에 대한 국내 여론이 안 좋아지면서 일본 제품에 대한 대대적인 불매운동이 일었다. 온라인에서는 ‘노 재팬’ 불매 포스터가 만들어졌고 일본 기업과 제품 목록이 공유됐다. 국가통계포털 자료에 따르면 2018년 546억 달러였던 일본 수입액은 2019년 475억 달러로 줄었고 2020년에도 460억 달러를 기록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일본 불매 운동의 열기도 사그러들면서 일본 제품에 대한 수요도 다시 커지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일본 수입액은 2021년 546억 달러로 반등했으며 2022년 10월까지 누적 수출액 459억 달러를 기록 중이다.
유니클로·일본 맥주 상승세… 일본 자동차 점유율은 제자리
일본 불매 운동의 열기가 사그라들며 숨죽이던 일본 브랜드들도 기지개를 펴고 있다. 유니클로는 ‘노 재팬’ 운동으로 큰 타격을 입은 브랜드 중 하나다. 유니클로는 소비자들이 자주 이용하는 대표적인 일본 브랜드였기에 불매 운동의 타격이 컸다.
여기에 유니클로의 모기업인 패스트클리어링의 오카자키 타케시 최고재무책임자(CFO)가 “한국에서 불매 움직임이 판매에 일정한 영향을 주고 있다”며 “영향이 있더라도 장기적으로 계속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발언한 것이 알려지며 유니클로는 ‘노 재팬’ 운동의 대표적인 타깃으로 지목됐다.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유니클로의 한국 법인인 에프알엘코리아는 2018년 9월1일부터 2019년 8월31일까지 매출 1조3780억 원, 영업이익 1994억 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2019년 8월부터 시작된 노 재팬 운동의 영향으로 2019년 9월1일부터 2020년 8월31일까지의 매출은 6297억 원으로 절반 아래로 떨어졌고 883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유니클로는 수익성 개선을 위한 국내 영업 매장을 대거 정리했다. 2020년에만 30개 매장을 정리했으며 2019년 190곳이었던 유니클로 매장은 올해 상반기까지 약 120개로 줄었다. 이 결과 2020년 9월1일부터 2021년 8월31일까지 에프알엘코리아는 매출 5824억 원, 영업이익 529억 원을 기록했다. 적자를 탈출한 것은 긍정적이지만 매출 규모가 크게 떨어졌다.
그러나 ‘노 재팬’ 운동으로부터 시간이 지나자 유니클로의 실적은 다시 상승하고 있다. 2021년 9월1일부터 2022년 8월31일까지의 유니클로의 매출은 7042억 원, 영업이익은 1147억 원으로 다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 불매 운동으로 자취를 감췄던 일본 맥주 역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 맥주는 한국 시장에서 가정용과 업소용 모두 사랑받았던 제품이었지만 널리 알려진 일본산 제품이라는 점과 혐한 성향 작가 다케다 츠네야스가 “한국 사람은 일본 맥주를 못 마시면 발광한다” 등의 발언을 한 것이 알려지며 기록적인 판매량 하락을 보였다.
통계청 국가무역포털 품목별·국가별 수출입 실적에 따르면 일본 맥주 수입액은 2019년 3975만 달러에서 2020년 566만 달러로 크게 줄었고 2021년에도 687만 달러에 머물렀다. 그러나 2022년 1월부터 10월까지의 맥주 수입액은 1155만 달러로 크게 증가했다. 불매 운동 이전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지만 2020년과 2021년과 비교하면 상당히 올랐다.
전문가들은 ‘노 재팬’ 운동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소비자들의 일본 불매 운동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을 원인으로 꼽았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일본 불매 운동은 일본이 싫으니까 시작된 운동인데 중국이 역사 왜곡 등의 문제를 일으키면서 감정이 분산된 감이 있다”며 “여기에 불매 운동이 지속돼 개인의 소비에 정치·외교적 문제가 섞이는 것에 소비자들이 성찰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소비자들이 물건을 고르는 데에 정치적인 이유보다는 당장 싸고 좋은 물건을 더 고려하게 되는 것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일본 불매 운동의 열기가 사그라들어도 일본 자동차는 한국 시장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의 렉서스 판매량은 6534대로 전년 동기 대비 27.4% 하락했다. 혼다 역시 전년 동월 대비 27.0% 떨어진 2962대에 그쳤다.
전체 수입차 시장 일본 자동차 점유율은 11월 기준 6%에 불과했다. 미국차가 9%를 차지했으며 유럽차가 85%로 압도적인 위상을 차지했다. 일본 자동차 부진의 원인으로는 ‘노 재팬’ 이후 일본 자동차 업계가 신차 출시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은 것이 지목된다.
혼다코리아가 내년 상반기부터 혼다 어코드와 CR-V를 대거 투입하는 등 한국 시장 점유율 확대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미 메르데세스-벤츠·BMW·제네시스 등이 고급화 전략을 내세우고 있고 1억 원대 이하 시장에서는 볼보·테슬라·폴스타·폭스바겐 등이 경합하고 있는 만큼 확실한 포지션을 잡지 못할 경우 위상 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일본차가 잔고장이 없고 튼튼하다는 점은 알지만 높아진 한국 소비자들의 눈높이가 성장한 만큼 그에 맞추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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