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레로’의 탄생지 시브르는 라벨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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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최남단 시브르, 스페인 문명이 넘나드는 곳
당대 최고 무용수를 위해 작곡한 발레곡 볼레로

최인숙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1-04 09:43:15

스타워즈. 은하계 최강의 기사단 제다이는 악마 시스를 무찌르고 백성을 구출한다. 라이트세이버, 염력 등을 등장시켜 우리의 혼을 빼앗는 이 SF영화에 조지 루카스 감독은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 몇 조각을 넣어 극적 반전을 꾀했다. 그 음악은 바로 볼레로다.

딴 따다다다 따다다다~ 딴딴 따다다다~~ 드럼이 조심스럽게 장단을 치며 들어가면 플루트가 마법의 소리를 내며 합류한다. 환상적 듀엣의 하모니는 반복적으로 계속된다. 첼로와 바순, 클라리넷은 혹여나 지루할까 끼어든다. 드럼은 한 치의 흐트럼 없이 첫 동작을 계속해 반복하고 플루트는 톤을 높여 재등장한다. 하프, 기타, 바이올린, 트럼펫, 피콜로, 트럼본, 심벌즈... 이 세상의 온갖 악기가 하나씩 합세하며 오케스트라는 환상의 절정으로 치닫는다.

기존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지극히 단순한 템포와 리듬의 반복. 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리드미컬하고 몽환적이다. 라디오 프랑스의 발표에 따르면 이 클래식 곡은 베토벤 교향곡 9번, 그리그의 ‘솔베이그의 노래’와 함께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곡이다.

우리 한국인들 중에도 이 곡조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기성세대는 80년대 한국 극장가를 휩쓴 클로르 를루슈 감독의 영화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를 봤을 테고, 젊은 세대는 은색 드레스의 김연아 선수가 은반 위를 누비며 우아하고 매혹적인 춤을 출 때 흘러나온 환상적인 음악을 기억할 것이다.

볼레로. 모리스 라벨이 스페인 안달루시아 춤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곡이다. 1927년 당대를 풍미하던 세계 최고의 러시아 무용수 이다 루빈스테인은 파리 오페라 공연을 위해 라벨에게 스페인 풍의 발레곡을 주문했다. 라벨은 고심 끝에 이삭 알베니스의 ‘이베리아’에서 여섯 조각을 발췌했다. 그러나 곧 저작권 시비가 벌어졌다. 라벨은 “이베리아의 법은 엉터리다. 1분이 채 안 되는 주선율을 나는 18분간 되풀이 할 것이다”라고 반박했다. 볼레로는 결국 이렇게 세상에 나왔다.

작곡가 모리스 라벨은 서정성과 마법의 대가였다. 쿠프랭·라모의 영향을 받았고 재즈음악의 색채와 리듬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쳤다. 그의 과감한 스타일은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에 혁명을 일으켰다.

라벨의 재능은 음악적 조예가 깊은 부모님의 덕

그는 1875년 3월7일 프랑스 남단 시브르의 니벨 부두에 있는 에스테바니아 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사브아-스위스 태생으로 자동차회사 엔지니어였고 틈만 나면 음악을 즐기는 음악 애호가였다. 어머니는 시브르에서 17세기부터 살고 있는 르누아르 가문의 딸로 노래와 춤을 좋아했다.

친절하고 교양 있고 예술에 조예가 깊은 부모님 덕에 라벨은 일찍 음악 교육을 받았다. 여섯 살 때 훌륭한 선생 앙리 기스와 샤를르 르네, 에밀 드꽁브를 만나 피아노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열네 살 때는 파리음악원에 입학해 피아니스트 샤를르 드 베리오의 제자가 됐고, 거기서 스페인 출신 젊은 피아니스트 리카르도 비네스를 만났다. 비네스는 모리스와 영원한 우정을 맺고 친구 음악의 해설사가 됐다.

1900년대 초 프랑스에 러시아 발레가 도착하자 라벨은 이를 깊이 탐구했다. 그러나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애국심에 불타 공군에 입대해 프랑스 부상병을 실어나르는 운전병으로 복무했다. 포탄이 쏟아지는 전선에서 인간의 극한 상황을 목격한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다시 작곡 활동으로 돌아온 그는 ‘왼손을 위한 피아노 콘체르토’와 ‘볼레로’를 작곡해 유명해졌다. 전자는 피아니스트 폴 비트겐슈타인의 주문으로 작곡된 것이다. 이 피아니스트는 전쟁에서 오른쪽 팔을 잃었다.

볼레로의 작곡지는 프랑스 서남단 시브르

볼레로가 탄생한 시브르. 파리에서 759km 떨어진 서남단에 있는 아주 예쁜 마을이다. 프랑스의 끝이자 스페인의 시작 지점이다. 우뚝 솟은 피레네산 자락과 대서양 연안 가스코뉴 만으로 둘러싸여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마주 보이는 생장드뤼즈 마을은 가슴 절이도록 매력적이다. 라벨은 태어나자마자 가족과 함께 파리 떠났지만 고향의 친척들과 평생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다. 20대부터는 생장드뤼즈를 정기적으로 찾아와 파도소리를 들으며 작곡 활동을 했다. 볼레로는 여기서 작곡한 것이다.

바스크 언어가 통하는 시부르와 생장드뤼즈. 시부르는 바스크말로 지뷔뤼(Ziburu), 다리머리라는 뜻이다. 생장드뤼즈와는 다리가 놓여 지금은 한 마을이나 마찬가지다. 이 연육교는 아름답기로 명성이 높다. 바다와 산으로 둘러싸인 이 두 마을. 천혜자원도 모자라 신은 중세의 유적지까지 고스란히 안겨 주셨다.

은빛 모래가 반짝이는 소코아 해변에 어우러진 한 폭의 요새, 시부르와 생장드뤼즈의 고색창연한 성당, 하늘을 찌르는 고딕식 생-마리 대성당. 거기에 라벨 메종까지. 라벨 메종은 매우 독특한 양식의 집으로 17세기 시부르 출신 선주였던 에스테방이 지은 네덜란드식 건물이다. 이 선주는 1630년경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집들을 보고 경탄한 나머지 시부르에 이 집을 지었다. 여기에 마자랭 추기경이 한 때 머물러 더욱 유명해졌다. 이 모두는 프랑스가 이곳을 예술과 역사의 고장으로 지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라벨의 음악세계를 알고 싶다면 시부르와 생장드뤼즈를 한번쯤 찾아 파도소리를 꼭 들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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