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12.6º
미세먼지 좋음
강릉 15.2º
미세먼지 보통
)
전국 거리거리에 각 정당의 현수막이 무차별적으로 내걸리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허가나 신고 없이 정당 명의 현수막을 설치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된 탓이다. 간판과 신호등을 가리고, 지나가는 행인은 현수막에 목이 걸려 부상을 입는다. 민원이 폭주하지만 정당들은 묵묵부답이다. 이들 현수막은 국민 돈으로 설치되고 있다.
원래 현수막은 지자체 허가를 거쳐 지정된 곳에만 걸 수 있었다. 하지만 작년 12월11일 지자체 허가나 신고 없이 정당 명의 현수막을 설치할 수 있도록 옥외광고물법이 개정됐다. 통상적인 정당 활동을 보장한다는 취지였다. 법 개정으로 정당의 현수막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전국 거리 곳곳에 내걸리고 있다. 이미 집회 현장 주변마다 각종 욕설·비방 현수막이 대거 내걸려 ‘현수막 공화국’이란 말이 나온 지 오래다. 여기에 정당 현수막까지 판을 치게 됐으니 공해가 따로 없다.
전국 지자체에는 불편하다는 시민의 민원이 쏟아진다. 안전사고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인천에서는 정당 현수막으로 사고가 터졌다. 인천광역시 연수구에서 전동킥보드를 타던 20대 여성 A씨는 정당 현수막 끈에 목이 걸려 넘어졌다. 나무에 연결된 현수막 끈이 성인 목 높이 정도에 설치돼 A씨가 미처 보지 못해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현수막은 가게의 간판이나 횡단보도 신호등도 가린다. 광주광역시 월계동에서는 현수막이 가린 신호등의 신호를 제때 못 보고 파란불이 깜빡거릴 때 급하게 뛰어가는 학생들의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대구 달서구청에는 “가게 간판을 가린다”는 민원이 많이 들어온다. 달서구에는 법이 개정된 지난해 12월부터 지난달까지 현수막 관련 신고가 915건에 달했다. 전년 같은 기간 신고건수 631건에 비해 45%가량 늘어난 수치다.
하지만 정당들은 꿈쩍 않는다. 오히려 전쟁하듯 현수막 내걸기에 나서고 있다. 현수막 내용도 정책 홍보는 적고, 통상적인 정당 활동으로 보기 어려운 것들이 대부분이다. 신문·방송과 여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대 정당에 대한 언짢은 비방전이 길거리에서 그대로 재연되고 있다. 지역 국회의원 홍보가 대부분이다.
실제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국회 앞에 내건 현수막들은 ‘불체포특권 폐지, 민주당은 빼고?’ ‘50억 클럽 즉각 특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현수막이 왜 이렇게 많아야 하는지, 상대 정당 비방이나 하라고 법까지 개정한 건지, 국민을 불편하게 하는 정치 현수막을 꼭 내 걸어야 하는지 도대체 모를 일이다. 이런 현수막은 결코 통상적인 정당 활동이 아니다.
마땅한 단속 근거가 없어 속수무책인 지자체들에서는 옥외광고물법을 다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정부를 상대로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서울시는 이달 중에 정당 현수막과 관련한 자체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현수막 개수와 금지 장소 등을 구체화하는 시행령 개정을 건의하기로 했다고 한다. 인천 군수·구청장협의회도 현수막의 규격·수량·위치 등 세부 기준을 마련해 달라고 행정안전부에 요구하는 내용의 공동건의문을 채택하기도 했다.
행정안전부는 이들 의견을 취합해 신호등과 방범카메라·어린이보호구역 등 교통안전과 이용자 통행 안전을 해칠 우려가 있는 위치에는 현수막 설치를 금지하고, 높이 2~3m 이상 위치에 설치하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은 강제 사항이 아니다. 안 지켜도 그만이다.
결국 법을 바꿔야 한다. 하지만 선거 때 외에는 국민을 의식 않는 국회의원들이 법을 바꿀 가능성은 적다. 옥외광고물법 개정은 정당 활동 보장이 취지지만 국민은 현수막 때문에 “복창 터진다”고 울분을 토하고 있다. 놀랍게도 현수막 설치에는 국민이 후원한 돈이나 세금인 국고보조금이 들어간다. 결코 정상이 아니다.
후원하기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
추천해요0
좋아요0
감동이에요0
화나요0
슬퍼요0
연재기획 ‘반대세의 비밀’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기사제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