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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체육진흥회 회장은 특유의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
“걷기 운동은 자연과 교감을 이루는 운동입니다. 이름 모를 뭇 풀벌레의 소리를 들으며 자연 속에서 영혼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지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건강한 몸과 마음, 이웃을 사랑하라는 깨달음에 도달하죠. 걷기는 돈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고급 스포츠예요.”
선상규(77) 한국체육진흥회 회장은 반평생 해 온 걷기 운동을 예찬했다. 그는 우리나라 걷기 운동의 선구자로 체육인들 사이에서 유명한 인물이다. 선 회장은 40여 년간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걷기 좋은 길을 찾아내 세상에 알리는 일에 앞장섰다. 곳곳에 조성된 둘레길 걷기 같은 운동 프로그램이 대중화될 수 있었던 건 선 회장이 앞서 뿌린 씨앗들의 결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걷기 운동의 선구자
경남 김해시 진영이 고향인 선 회장은 형님이 출가하는 등 대대로 불교를 믿는 집안에서 5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어머니 나이 45세에 출산한 늦둥이였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당시 유행하던 천연두에 걸려 죽을 뻔한 고비를 이웃들의 도움으로 운 좋게 무사히 넘겼다고 했다.
“우리 집안이 대대로 불가 집안이라 믿음과 배려하는 마음으로 동네 분들과 어울리며 살았죠. 당시 나무지게도 들어갈 수 없을 정도의 시골에서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이웃 분들의 도움이 컸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제가 태어난 직후 가세가 기울기 시작해 학창시절에는 어려움이 많았어요. 학창 시절 낭만이나 아름다운 추억 대신에 등록금을 못 내서 담임선생에게 빗자루 몽둥이로 얻어맞고 교실 밖으로 쫓겨났던 것만 생각나죠.”
선 회장은 어린 시절 부처님 말씀을 자주 들으며 자연 속에서 성장한 덕분에 성품이 올곧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당시 다들 궁핍해 살기 힘든 시절이라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는 그 자체가 행복이고 행운이었죠. 마침 태어난 곳이 절이었고, 부처님 말씀을 자주 전해 들으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정신적 고향은 불교요, 대자연이라 생각해요.”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동창으로 한동네에 사는 친구였다. 대통령의 고향 친구라는 게 세간에 알려지면서 어이없는 일도 겪었다고 한다.
“동국대 총장 비서실장으로 일을 할 때 신정아 사건이 있었는데 언론에서 근거 없는 추측성 보도를 하는 바람에 청와대 감찰 기관에서 조사를 받는 등 어려움을 겪었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머리가 좋은 친구였어요. 그 집 큰 형님이 고시 공부를 했었죠. 아마 그 영향을 받아 사법고시 공부를 한 것 같아요.”
선 회장은 1965년 동국대 응용생물학과에 입학했고, 1972년 졸업한 뒤 대학 교직원으로 학교에 남았다. 어린 시절부터 태권도를 배우며 정신적인 수련을 했던 그는 무슨 일을 하며 살면 좋을까를 고민하다가 누군가를 위해 보탬이 되는 인생을 살자는 마음으로 생활체육 운동에 뛰어들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40년 가량 남산의 동악 언덕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살았어요. 동국대는 불교 정신의 바탕 위에 세워진 학교라 그 정신과 사상이 내 삶의 가치를 형성하는 데 많은 영향을 끼쳤죠. 제 성이 희성인 ‘베풀 선 ’자입니다. 이름이 말하듯 자연스럽게 베푸는 마음을 갖게 되어 사회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그는 30대 중반이던 1982년 사회 구성원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면 우리 사회가 더 밝아질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사재를 털어 한국체육진흥회의 전신인 한국선(禪)체육회를 만들었다.
“선수를 양성하는 엘리트 체육에서 벗어나 보다 많은 사람이 육체적 움직임을 통해 정신적 성숙을 찾을 수 있게 하고자 만든 단체가 한국선체육회였어요. 우리 사회가 더 밝아지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더 건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죠. 방황하는 청소년들과 생활고에 시달리는 서민들에게 가장 도움이 될 만한 운동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그게 바로 걷기였어요.”
걷기 운동은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든 무료로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운동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걷기를 좀 더 진지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일반인들이 운동의 수단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보급하자는 목표를 갖게 되었다.
걷기 운동은 선 회장 자신이 겪은 불행을 이겨내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됐다. 태권도 공인 5단이었던 그에게 사실 걷기는 운동이 아니었지만 1988년 1월 큰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심신을 회복하기 위해 걷기 운동에 더 매진했다.
“동국대 정문 비탈길을 내려오던 승용차에 치이는 큰 사고를 당했어요. 몸이 공중을 날아 떨어졌고 왼쪽 다리를 심하게 다쳤죠. 3년에 걸쳐 철심 박는 대수술을 받아야만 했어요. 고통스러운 나날이었죠. 퇴원한 뒤에는 걷기 운동으로 자활을 했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혼자 서겠다고 다짐했죠.”
그의 결심은 ‘문경새재 트레킹’에 목발을 짚고 참여해 632m 정상에 오를 정도로 확고했다. 그는 그때 자신감을 얻어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이후 네덜란드·영국·일본·중국 등에서 열리는 국제 걷기대회에 열심히 참가하며 걷기 운동의 가치와 효용성을 확인한 뒤 걷기를 스포츠로 분류해 홍보하는 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걷기 운동에 대한 주변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걷기는 운동이라는 인식이 없던 시절이었다.
“걷기 운동을 홍보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어요. 반응이 싸늘했죠. 미친놈 소리까지 들었으니까요. 걷기 운동을 좀 더 진지한 스포츠로 받아들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민하다가 당시 문화체육부를 찾아가 걷기 운동을 설명했어요. 그런데 담당 공무원이 ‘걷기가 무슨 운동이냐, 보리밭이나 밟으면 되지’라고 말하더군요.”
걷기 통해 공존 모색하는 ‘평화의 길’ 만들 것
시간이 지나면서 선 회장의 선견지명은 보란 듯이 증명됐다. 1995년 경주를 시작으로 서울·원주·서귀포 등 전국에서 각종 걷기대회가 봇물 터지듯 열렸다. 걷기 운동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180도 달라졌다. 이제는 걷기대회를 한다고 했을 때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그에게 걷기 운동이 우리 사회에 빠른 속도로 퍼질 수 있었던 비결, 걷기 운동의 매력이 무엇인지 물었다.
“걷기 운동은 특별한 장비나 기술이 필요치 않고 장소나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으니 가장 간편하고 안전한 운동이에요. 즐거운 마음으로 꾸준히 할 수 있어 중독성도 있죠. 걷기 운동의 가장 큰 장점은 걷는 이들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제가 교통사고로 재활 치료를 하면서 걷기 운동의 효과를 톡톡히 봤죠. 지금 생각해 보면 물리적인 효과 이상으로 심신의 안정을 찾는 데에 엄청난 효과를 본 것 같아요. 걸으면 마음이 아주 편안해지잖아요.”
하지만 그는 걷기 운동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라고 말한다. 근력 운동을 함께 해 줘야 운동 효과를 더 높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작 운동을 한다고 걷기에만 집중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근육을 강화하는 운동을 하지 않고 유산소운동만 하는 셈이죠. 아령 들기·계단 오르기 등 근력 운동을 병행해야 운동 효과가 더 커요.”
선 회장은 걷기 운동에서 평화 운동의 씨앗을 봤다. 특히 2007년부터 한‧일 우정 걷기대회를 개최하면서 걷기 운동을 통한 국제 교류에 열정을 쏟고 있다. 한국체육진흥회가 일본걷기협회와 함께 총 12회 실시하기로 한 ‘조선통신사 옛길’을 걷는 행사는 2년마다 열리는데 올해로 벌써 9회째를 맞았다.
이번 한‧일 우정 걷기대회 참가자 60명(한국 28명·일본 32명)은 1일 오전 서울 경복궁을 출발해 부산을 향해 걷고 있다. 다음 달 23일 일본 도쿄의 중심인 히비야 공원에서 여정을 마무리한다.
선 회장은 서울에서 도쿄에 이르는 길을 온갖 고통과 아픔을 참아 가며 14년에 걸쳐 일곱 번이나 완주하면서 우리의 국토가 무엇인지, 삶이 무엇인지, 나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를 어렴풋하게나마 인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런 행사를 통해 서로의 나라를 오가면서 함께 걷다 보면 그 나라 사람과 생각을 나누고 문화를 경험하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혀 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도쿄까지 육로로 1158km 구간을 걸어요. 해로까지 포함하면 2000km가 넘는 코스죠. 매일 30km 이상 걷는데 서울에서 부산까지 18일이 걸려요. 일본 구간은 대마도를 거쳐 도쿄까지 31일이 걸리죠. 누구의 도움없이 전액 자비 부담으로 행사를 치르고 있어요. 민간외교 사절단으로서 책임을 다해 과거의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는 ‘평화의길’을 만드는 게 꿈이죠.”
끝으로 선 회장은 여러 차례 조선통신사 옛길을 완주하면서 인상적이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젊은 세대를 위한 조언을 남겼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한양까지 오는 데 20일이 채 안 걸렸다고 해요. 아무도 막은 사람이 없었다는 뜻이에요. 왜군이 조선을 침략하면서 한양까지 아무런 방해 없이 들어올 수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목도했을 때 충격적이었죠. 행사 참가자 중에 재일동포가 몇 명 있었는데 일본에서 태어나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고 해요. 항상 자신을 ‘태평양에 떠 있는 존재’로 생각하며 살아 왔다더군요. 그분이 한국에서 걷던 어느 날 ‘부모님이 그토록 오고 싶어했던 곳’이라고 눈물을 글썽일 때 모두 함께 울었던 기억이 나요.”
“동국대에서 학생부처장을 하면서 느꼈죠. 많은 학생이 자신이 무얼 하고 싶은 건지 잘 모르더군요. 젊을 때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목표를 명확하게 설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 주고 싶어요. 실패한다 하더라도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한번 가 본다면 그것만으로도 성취감이 생기거든요. 그리고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한 삶을 이어가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프로필= △1946년 경남 진영 출생 △1965년 동국대 응용생물학과 입학 △1970년 동국대 태권도부 부장 △1972년 동국대 응용생물학과 졸업 △1974년 한국 해군UDT 태권도 코치 △1977년 동국대 대학원 농학과 졸업(농학석사) △1981년 세종대 대학원 체육과 졸업(체육학석사) △1984년 사단법인 한국체육진흥회 회장 △1994년 대한민국체육상 수상(대통령상) △1996년 동국대 학생부처장 △1997년 국제걷기연맹(I.M.L). K.M.L 회장 △1998년 대한적십자사 총재 표창(헌혈운동 공로) △2003년 계명대 대학원 체육학과(이학박사) △2010년 AVV(아시아시민스포츠연맹)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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