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 View] 청년층에 상실감만 준 ‘50년 주택담보대출’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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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영 금융부동산부 부장대우 기자페이지 + 입력 2023-10-10 20:54:31

내 집 마련은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의 꿈이다. 그중에서도 새로운 가정을 꾸릴 계획을 가진 청년층에겐 내 집 마련의 꿈은 특히 더욱 간절하다.

그러나 청년층은 물론이고 전 연령층으로 그 범위를 넓혀 봐도 내 집 마련의 꿈은 시대를 불문하고 언제나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벅찬 목표이기도 하다.

부동산 경기가 과열 현상을 보일 때는 물론이고 부동산시장에 찬 바람이 불 때도 집을 사는 건 항상 어려운 일이었다.

수십 년 전 신문을 들춰 봐도 그렇고 몇 백 년 전 조선시대 사료에도 ‘집 장만’의 고됨이 드러나는 대목이 많다. 땅은 좁고 사람은 많은 한반도에서 집을 산다는 건 언제 어느 시대에서건 만만치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은행들이 취급하는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은 일반 국민이 내 집 마련을 하는 데 필수 요소다. 과도한 ‘영끌’ 주담대는 ‘하우스푸어’를 양산하는 지름길이지만 내 상환능력에 맞게 주담대를 받고 이를 바탕으로 자산과 소득을 늘리면서 더 좋은 집으로 갈아탈 수 있다면 적절한 주담대는 그 무엇보다 고마운 자산 증대 수단이 되기도 한다.

주담대는 대출 규모가 워낙 거액이다 보니 빚 상환 기간도 거의 ‘한 세대’의 기간에 해당하는 30년 세월 동안 갚아 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작년부터 부동산시장이 급격히 얼어붙으면서 가계 자산의 대부분을 부동산이 차지하는 우리나라 가계 특성 상 사회 전반적으로 불경기 현상이 심화되자 금융당국이 경기 진작과 부동산시장 활성화를 위해 오랫동안 고정돼 온 ‘30년’ 주담대에 메스를 댔다.

당국은 주택 거래량을 늘리고 국민의 내 집 마련을 수월하게 한다는 취지에서 은행권에 대해 상환기간을 기존의 두 배에 가까운 50년으로 늘린 주담대 상품을 출시하도록 지도했다.

은행들도 수익 증대 측면에서 50년 주담대의 도입은 나쁠 것이 없는 터라 올 7월부터 대부분의 은행들이 앞다퉈 관련 상품들을 선보였다. 하지만 출시 3개월여가 지난 현재, 당국과 은행권이 야심차게 내놓은 50년 주담대 상품의 종착지는 결국 ‘의도는 좋았다’로 귀결되는 분위기다.

처음으로 주담대를 받는 청년층의 첫 보금자리 장만을 수월하게 하려는 당국과 은행의 의도와는 달리 50년 주담대는 기존의 30년 주담대를 받은 차주들이 상환 원리금 경감과 대출 한도 늘리기를 위해 ‘주담대 갈아타기’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은행들이 주요 수혜 대상이 청년층이 돼야 할 50년 주담대 상품에 대해 출시 초기 ‘연령 제한’을 두지 않고 성급하게 출시해 버린 게 문제였다. 모든 연령대가 50년 주담대 진입이 가능해지는 바람에 이미 기존에 주담대를 받아 놓고 장기간 상환을 해 온 50·60대까지도 경쟁적으로 50년 주담대로 갈아타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 결과 최근 2~3개월 사이에 가계 대출이 폭발적으로 불어나 버리자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금융당국이 부랴부랴 은행권으로 하여금 50년 주담대 상품에 제한을 걸도록 지시했다.

은행들이 8월부터 일제히 50년 주담대 신규 취급을 중단하거나 연령 제한을 걸었지만 장년층에게 이미 나간 대출을 회수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상품 출시 초기 한두 달 만에 ‘50년 주담대’라는 달콤한 열매는 기존에 주담대를 받은 장년층 차주들이 홀랑 따 먹고 말았다.

청년층은 소득과 자산이 상대적으로 적은 만큼 은행의 대출 심사를 통과해 주담대를 받는 것이 장년층보다 쉽지 않다. 그렇기에 50년 주담대 출시 초기 청년들 가운데 곧바로 50년 주담대 문턱을 넘은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상당수 청년은 당장 50년 주담대를 받지는 못하지만 50년 주담대를 받을 수 있을 만큼의 기초체력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경제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당국와 은행의 세심하지 못한 행보로 50년 주담대는 한두 달여 만에 신기루가 사라지듯 청년층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청년층의 주택 마련을 위해 도입한 50년 주담대가 기존 주담대 차주들이 주도하는 가계대출 폭증이라는 부작용을 불러오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청년들에게 돌아간 셈이다.

다만 뒤늦게나마 은행들이 50년 주담대 상품 취급 대상자를 ‘만 34세’ 이하로 제한하기로 한 것은 ‘사후약방문’처럼 보이면서도 그나마 청년들에게 다시금 ‘50년 주담대 진입’이라는 희망을 갖게 해 줬다는 측면에서 그래도 환영할 만하다.

비단 50년 주담대 문제뿐만 아니라 상당수 당국의 정책은 원래 좋았던 의도와는 달리 수립 과정에서 치밀함이 부족해 부작용이 발생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특히 경제 정책은 수립 단계에서부터 금융당국과 관련 기관의 면밀한 사전 점검과 깊은 통찰이 병행되어야 국민 가계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당국과 금융기관이 정책 도입 전 ‘한 번 더’ 전방위적으로 주변을 돌아보고 들여다보는 지혜를 발휘하길 바란다.

임진영 금융부동산부 부장대우 jyim@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