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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급여 재정에 ‘비상등’이 켜졌다. 재정수지(수입-지출)는 마이너스로 돌아섰고 적립금은 거의 고갈 상태에 직면했다. 최저임금의 80%인 높은 구직급여 하한선과 반복 수급 등 도덕적 해이가 실업급여 재정을 악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코로나19 당시 경기침체에 따른 신청자 증가와 단기 고용이 많은 한국 노동시장 여건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17일 고용노동부·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작년 실업급여 계정 재정수지는 -5650억 원으로 전년(4003억 원) 대비 적자 전환했다. 지출이 14조4183억 원에서 14조1325억 원으로 줄어들긴 했지만 수입이 14조8141억 원에서 13조5675억 원으로 크게 줄어든 결과다.
실업급여 계정 적립금은 3조6953억 원이다. 2017년(5조7958억 원) 대비 36.2% 쪼그라들었다. 여기에 공공자금관리기금에서 차입한 7조7000억 원을 빼면 사실상 고갈 상태다. 지출액에서 적립금을 나눈 적립배율도 0.26배로 법정적립배율(1.5~2.0배)에 못 미치고 있다.
높은 구직급여 하한선이 실업급여 재정 악화를 초래한 요인으로 꼽힌다. 정부는 2019년 ‘실업급여 보장성 강화’를 시행하면서 구직급여 지급 수준을 평균 임금의 50%에서 60%로 상향하고 지급 기간을 90~240일에서 10~270일로 연장한 바 있다. 이에 따라 2017년 5조 원이던 구직급여 지출액은 2022년 10조9000억 원으로 5년 만에 두 배 이상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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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박서현 기자] ⓒ스카이데일리 |
문제는 많은 구직급여액이 취업 의지를 떨어뜨려 제도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구직급여는 퇴직 전 3개월간 평균 임금의 60%를 지급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 금액이 최저임금보다 낮으면 최저임금의 80%를 준다. 현재 최저임금은 월 201만580원이다. 이를 계산하면 구직급여 하한액은 184만7040원인데 세후 기준 최저임금(179만9800원)보다 많다. 구직급여 수급자 중 하한액 적용자 비중은 2019년부터 70~80%대 수준을 이어 가고 있다.
느슨한 수급 요건도 재정 악화에 한몫했다. 실직 전 180일 이상(약 7개월) 고용보험료를 납부했다면 구직급여를 받을 수 있다. 이는 일본(12개월)·독일(12개월) 등 OECD 주요국보다 짧은 수준이다. 우리나라보다 기여기간이 짧은 OECD 회원국은 33개국 중 5개국 정도다.
반복 수급이 늘어나고 있는 점도 실업급여 적립금을 갉아먹는 요인이다. 고용부에 따르면 5년간 3회 이상 구직급여 반복수급자 수는 2018년 8만2000명·2019년 8만6000명·2020년 9만3000명·2021년 10만 명·2022년 10만2000명 등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실업급여 수급 자격 인정률도 99%에 달해 신청하기만 하면 대부분 수급 자격을 인정받는 실정이다.
제도 허점을 악용하는 외국인도 늘어나고 있다. 이주환 국민의힘 의원이 고용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3회 이상 실업급여를 반복 수령한 외국인 근로자는 지난해 229명에 달했다. 2018년 105명을 시작으로 2019년 129명·2020년 164명·2021년 188명 등으로 매년 증가하는 양상이다.
이들이 받은 실업급여액도 작년 10억6700만 원으로 2018년(3억100만 원)보다 세 배 이상 급증했다. 1인당 평균 급여는 이 기간 287만 원에서 466만 원으로 불어났다.
“실업급여 적자, 일시적인지 장기적인지 따져 봐야”
정부도 실업급여 문제에 팔을 걷어붙였다.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하루 3시간 이하’로 일하는 단시간 근로자의 실업급여를 대폭 축소하는 내용의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1일 소정근로시간이 3시간 이하인 단시간 근로자에 대해서도 근로시간을 4시간으로 간주해 임금일액을 계산하는 산식을 실 근로시간으로 산정해 실업급여로 지급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이달 5일 열린 ‘실업급여 제도 개선 방향 등에 대한 전문가 간담회’에선 현재 추진 중인 실업급여 개편에 관해 정부와 여당이 직접 당위성을 강조했다.
이날 이성희 고용부 차관은 “실업급여를 반복 수급하는 관행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고용보험기금의 재정건전성은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악화됐다”며 “실업급여 제도를 노동시장 참여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개선해 실직자의 자립을 지원하고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높여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높은 구직급여 하한선이 최저임금 급등과 맞물리면서 실업급여 재정수지를 악화했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실업급여 재정은 경제상황에 따라 흑자 또는 적자가 날 수 있으므로 일시적·장기적 요인을 구분하면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박철성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코로나19 불경기로 실업급여 신청자가 늘어나고 최근 몇 년간 최저임금이 계속 올라 구직급여 하한액이 늘어나면서 재정수지가 악화됐다”며 “우리나라 구직급여 하한액은 평균임금의 44% 정도로 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은데 구직급여 하한액이 높다 보니까 수급자들이 구직하려는 의욕을 꺾을 위험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재정지출을 줄이려면 하한액을 낮춰야 한다. 최저임금의 80%는 너무 높다. 우리나라 최저임금이 워낙 높기 때문이다.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중은 OECD 회원국에서 최상위권”이라며 “(구직급여 하한액을) 최저임금의 60% 정도로 낮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남재욱 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반복 수급에 따른 도덕적 해이로 실업급여 재정지출이 늘어났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2018년 이래로 최근 5년간 전체 수급자에서 반복 수급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6% 내외를 유지했다는 점에서다. 코로나19에 따른 실업 등의 여파로 구직급여 수급자가 늘면서 자연스레 반복 수급자도 늘었다는 얘기다.
남 교수는 “실업급여 재정은 항상 수지균형을 유지하는 것보다 경기가 좋을 때는 흑자·경기가 나쁠 때는 적자가 나서 평균적으로 수지균형을 유지하는 게 제일 바람직하다”며 “적자가 났다면 일시적인 것인지 장기적인 것인지를 봐야 하고 장기적인 적자라면 도덕적 해이 때문인지 아니면 재정 조달 문제인지 등을 다 검토해야 하는데 모든 검토 과정을 다 생략한 채 적자가 난 이유를 도덕적 해이로 보는 것은 지나치게 성급한 결론”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남 교수는 “구직급여를 받기 위한 가입기간은 국제적으로 비교하면 관대한 편이지만 우리나라는 사람들이 한 직장에서 평균적으로 근속하는 기간은 OECD에서 가장 짧다”며 “워낙 단기적인 고용이 많아 실업급여가 거기에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런 것에 대한 고려를 생략하고 무조건 다 엄격히 하겠다는 개혁에는 동의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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