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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병상에 누운지 1년이 지나고 이재용 부회장의 후계체제가 밑그림을 완성해 가고 있다. 앞서 오늘의 삼성그룹은 곧 이건희 회장의 거탑으로 동일시 돼 온 만큼 그의 건강이상은 삼성은 물론 한국경제에도 요동을 치게 하는 사건이었다. 다행히 이 부회장의 비공식 바통을 받은 경영행보가 우려 속에서도 큰 무리가 없어 삼성이라는 거함(巨艦)은 아직 순항 중이다.
지난해 5월 10~11일 자정을 전후한 시간에 이건희 회장은 자택에서 인근 순천향대학병원으로 긴급 후송돼 심폐소생술을 받은 뒤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 왔다. 이후 그룹의 공백상태는 이 부회장이 전면에 나서기는 했지만 조심스럽게 챙겨 오는 그림이었다. 부친이 비록 업무는 직접 돌볼 상황은 못됐지만 엄연히 살아있는 그룹 사령탑이기에 이 부회장의 행보는 ‘조력자’의 역할에 그쳐야 했다는 점이다. 그만큼 이 회장의 후광은 아직도 삼성그룹 곳곳에 서려 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이제 경영전면에 본격 나설 것이라는 시그널을 공개적으로 보여 주었다. 부친의 생존과는 상관없이 부친의 중요 직책 두 가지를 이 부회장이 전격적으로 물려 받았기 때문이다. 이 부 회장은 최근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에 선임되면서 이 회장의 자리를 대신하게 됐다.
재계와 주식시장에서는 이들 공익재단과 문화재단이 갖고 있는 그룹 내 주요 계열사에 대한 지분을 감안하면 이 부회장의 지배력이 한층 강화됐다고 보고 ‘공개적인 후계체제’를 돈독히 하는 1단계 그림이 그려졌다고 보고 있다. 두 재단이 갖고 있는 지분을 보면 이는 틀리지 않는다.
실제로 국세청 공익법인 공시와 금감원 전자공시를 보면 삼성생명공익재단은 삼성전자 지배의 핵심인 삼성생명 주식 436만주 2.18%를, 삼성문화재단은 이보다 두 배 이상 많은 936만주에 4.68%를 각각 보유 중이다. 이 부회장은 삼성생명의 주식을 불과 12만주에 0.06%만을 보유 중이어서 지배력이 매우 약하다. 하지만 이 주식과 두 재단의 지분율을 합산하면 6.92%로 대폭 높아진다.
삼성생명은 또 이재용 부회장이 단연 최대주주(3136만9500주, 23.23%)로 있는 그룹의 최고 지배회사 제일모직(구·에버랜드)이 3868만8000주를 보유하고 있어 그 지분율이 19.34%에 이른다. 이들 주식을 모두 합산하면 이 부회장이 삼성생명에 직·간접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분권한은 26.26%에 이른다. 이는 아버지 이건희 회장이 보유 중인 20.76%를 훨씬 앞서는 지분율이다. 여기에 삼성문화재단은 삼성전자(3만7615주, 0.03%)와 제일모직(110만1000주, 0.81%) 주식을 또 직접 보유 중이기도 하다.
이 부회장은 이렇게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전자, 아니 삼성그룹의 옥좌에 올랐다. 주지하다시피 삼성그룹의 기관차인 삼성전자의 최대주주는 바로 삼성생명이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주식을 불과 84만403주만 갖고 있어 지분율이 0.57% 그치지만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주식 1062만2814주(우선주 제외)를 보유해 7.21%의 특수관계인 최대지분을 갖고 있다.
결국 이 부회장은 부친 사후 상속이라는 공식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서도 삼성그룹을 움직일 지휘봉을 거머쥐었다. 이제 이 부회장은 지금까지 그의 지분가치를 높이는 9부 능선을 넘어 또 다른 산으로 올라야 할 과제 두 가지가 남았다. 지분상속으로 보면 부친의 주식을 상속받는 일이 그 하나이고, 그의 친정체제 구축을 위한 그룹 지배구조 개편이 또 하나이다. 두 가지가 완성되면 이재용 시대의 완전한 개막이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부회장이 부친의 주식을 상속받으려면 약 6조원의 천문학적 세금이 투입되는 만큼 아무리 지분가치를 높인 주식이 있더라도 자신의 지배구조에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투명한 개인자금을 확보하기가 아직은 쉽지 않다. 이 대목에서 이건희 부회장은 가깝게는 자식을 위해서 그리고 삼성그룹을 위해서, 나아가 국민경제를 위해서 눈을 쉽게 감아서는 안 될 상황이 됐다.
이 부회장이 그동안 경영수업을 받아온 것은 사실이지만 이건희 회장의 막강한 영향력이 아들의 행보에는 음지로 작용해 온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대중들이 늘 이건희 회장과 이 부회장을 비교해 온 것이 그것을 반증한다. 그런 점에서 이 부회장은 한동안 ‘물가에 내놓은 아이’로까지 비유되기도 해 이 회장 사후 삼성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컸다.
따라서 부친이 경영에서 손을 놓은 지난 1년여의 시간은 이 부회장에게 남다른 고통과 성숙의 시기였다고 보여진다. 다만 아직도 완벽한 경영수업을 쌓기에는 이르다. 아버지의 막강한 영향력 아래 있었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 이 부회장의 독립행보를 위한 준비시간은 더 길어야 한다.
이 부회장이 친정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지배구조 개편도 그런 점에서 절대 서두르면 안 된다. 부친이 오래 살아있기를 소망하는 것은 이 부회장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를 걱정하는 국민들의 마음이기도 한 만큼 이 부회장은 지배구조 개편에 무리한 행보를 하면 예상치 못한 치명적 부메랑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을 늘 곱씹어야 한다.
지배구조 개편은 수많은 시나리오가 있지만 결국 지배체제를 단순화 하면서 이 부회장의 입지를 강화하는 지주회사로 압축된다. 지주회사는 정부도 권고사항으로 하고 있는 만큼 이 부회장 체제의 삼성그룹도 가지 않을 수 없는 시스템이다. 이 과정에서 이 부회장은 불가피하게 인적청산 내지 물갈이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 부친 중심의 인의 장막에서 이 부회장 중심의 사람들로 병풍을 치는 과정은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연스럽게 그려진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 부회장의 경영능력을 이 부분에서 우려스럽게 보고 있다. 아무리 업무능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구조조정이나 인적청산 문제는 대단히 예민하고 고도의 경영적 판단력과 결단력이 요구되는 사안이다. 이를 잘못하게 되면 한순간 삼성그룹 전체가 요동치고 위기로 빠질 수 있다. 이를 무리 없이 해내는 능력은 결코 하루아침에 쌓이는 노하우가 아니다.
그래서 이 부회장에게 주문하고 싶다. 부친의 건강을 정말 정성을 다해 돌보면서 부친의 사람들도 쉽게 쳐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의 합리적이고 온순한 성품은 자신의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는 과정에서 닥칠 역풍을 쉽게 잠재우기 어렵다고 보여진다. 그 해결의 첫 행보는 할아버지 창업주의 초심으로 돌아가 그룹의 뿌리를 이 부회장이 다시 심는다는 역경을 스스로 안아야 하는데 있다.
이 부회장은 지분승계나 지배구조 보다 더 혹독하고 무서운 승계과정이 남았다는 것이다. 바로 수십만명의 임직원을 거느린 사령탑이기에 자신과의 격렬하고 처절한 싸움이 먼저다. 매일 더 강하지 않은 초심이나 배려는 그룹을 오히려 위기로 몰아넣는 최악의 악수라는 것을 새겨야 한다. 이 부회장은 더 강한게 무엇이고, 그 강함이 전제될 때 초심도 배려도 진심이 될 수 있다는 진실을 부여잡고 있어야 냉철하고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한 자신의 지배체제 정립이 지분승계나 지배구조 개편보다 훨씬 힘들고 무서워 때로는 숱하게 도망가고 싶을 수 있다. 삼성그룹을 창업주와 이건희 회장이 만든 것 이상으로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계속해서 반석위에 놓으려면 이 부회장에게 숙명처럼 내려온 자신과의 극한 싸움이라는 난제를 반드시 이겨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죽음의 문턱까지 계속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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