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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박선옥·김진강 부장, 이한빛·배태용 기자] 올해는 일제로부터 해방을 기원했던 만세운동인 3·1운동이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이에 국민들도 우리나라의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는 근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여전히 남아 있는 일제 흔적 역시 관심사 중 하나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관광지 제주도에 일제 흔적이 무방비로 방치돼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제주도에는 태평양전쟁 당시 일제가 도민들을 강제동원해 만든 진지, 벙커, 비행장 등의 군사시설 등이 남아있다. 특히 제주도 곳곳에 존재하는 동굴진지는 붕괴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재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아 논란이 더해지고 있다.
세계적 관광지 아름다운 섬 제주도, 화려함 이면에 남겨진 일제 침략의 흔적
돌과 여자, 바람이 많아 ‘삼다도’라 불리는 제주도는 우리나라는 대표하는 글로벌 관광지 중 한곳이다. 제주도에는 한라산, 섭지코지, 우도, 성산일출봉 등 수많은 명소들이 즐비하다. 해마다 국내·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화려한 제주도의 이면에는 여전히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이에 대한 조치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게 일고 있다. 일례로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일대에 위치한 ‘알뜨르비행장’의 경우 일제가 제주도민을 강제동원해 지은 군용 비행장이다. ‘알뜨르’는 ‘아랫쪽’을 뜻하는 제주어 ‘알’과 ‘넓은 들판’을 뜻하는 제주어 ‘드르’가 합쳐진 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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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 김해인 기자] ⓒ스카이데일리 |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직후 알뜨르비행장은 본격적으로 일제의 전초기지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군은 약 700km 떨어진 중국의 도시 난징을 폭격하기 위한 오무라 해군항공대의 전초기지로 알뜨르비행장을 택했다. 전쟁 중에는 제주도민들을 강제동원해 2차 공사를 진행했다. 1938년 11월 일본군이 상하이를 점령한 후 오무라 해군항공대는 중국본토로 옮겼고 알뜨르비행장은 연습 비행장으로 활용됐다.
1942년 일본이 미군의 해군기지를 공격한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면서 알뜨르비행장은 또 다시 전쟁 전초기지로 사용됐다. 1944년 10월 일제는 또 다시 제주도민들을 강제동원해 3차 공사를 단행했다. 당시 레이다 진지와 각종 지하 진지들을 건설했다. 전쟁의 막바지에는 점차 패색이 짙어가는 일본이 감행한 ‘가미카제’ 훈련도 이곳에서 이뤄진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알뜨르비행장에는 기괴하게 생긴 콘크리트 건축물인 격납고가 19곳이나 남아있다. 비행기나 비행선을 넣어두거나 정비하는 비행장용 군사시설인 격납고는 일본군의 자살공격에 동원 됐던 비행기 ‘제로센’을 숨기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알뜨르비행장에서 주변으로는 전쟁당시 제주도민들의 강제동원해 건설한 다른 군사시설도 여러 곳 존재한다. 자동차 기준 10분 거리에 위치한 ‘모슬포 알뜨르비행장 일제 지하벙커’도 그 중 하나다.
지하벙커 역시 활주로와 격납고가 조성하던 시기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지하벙커는 태평양 전쟁 말기 일제가 비행대내탄식지휘소 또는 통신시설로 이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는 평시에는 지상의 지휘소에서 비행대를 지휘하다 미군기 폭격 등이 예상되면 지하벙커로 지휘소를 옮겨 지휘업무를 수행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지하벙커에서 차로 약 10분 정도 이동하면 1943년 일본군이 구축한 동굴모양의 군사진지인 ‘셋알오름 동굴진지’가 자리하고 있다. 2006년 12월 등록문화제 301호로 지정된 이 동굴은 격자 미로형 형태로 길이는 1220m에 달한다. 제주에서 가장 길다.
이 동굴진지는 태평양전쟁 말기 해전에서 패전을 거듭하며 수세에 몰린 일본이 미국의 공격에 대비해 제주도를 방어진지로 삼고자 도민들을 강제동원해 만들어졌다. 연약한 지층에 굴을 파서 만들어져 현재 일부는 함몰 된 상태며 이에 붕괴위험까지 있다.
자동차 기준 약 20분 거리인 한경면 청수리에는 ‘제주 가마오름 일제 동굴진지’가 있다. 이 동굴 역시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이 구축한 인공동굴 군사시설로 2006년 12월 등록문화재 308호로 지정됐다. 현재 이곳은 제주전쟁역사평화박물관 이영근 관장이 박물관 관광시설로 구축해 놓은 상태다. 동굴 내부는 거미줄처럼 파헤쳐 뚫어 다층의 미로형 구조로 만들었으며 넓은 곳과 좁은 곳을 서로 교차시켜 적으로부터 쉽게 발각되지 않도록 돼 있다.
‘모슬봉 일제군사시설’, ‘송악산 해안 일제 동굴진지’ 등도 제주도에 자리한 일제의 흔적들이다. 대정읍 상모리 모슬봉 일제군사시설은 1945년경에 구축한 콘크리트 구조의 군사시설이다. 현재 등록문화재 314호로 지정돼 있다. 일제는 이 역시 제주도민들을 강제동원해 조성했다. 전체적으로 Y자형을 이루며 탄약고나 발전소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현재 이곳의 내부는 볼 수 없게 돼 있다.
송악산 해안 일제동굴진지는 송악산 해안절벽을 인위적으로 뚫어낸 군사진지다. 제주도민들을 강제동원해 만든 이 동굴진지는 1945년 일본의 패망이 거의 확실시 됐을 무렵 만들어졌다. 현재 등록문화재 313호로 지정돼 있다. 용도는 해상에서 상륙해오는 미군 상륙정을 목표로 잠수정, 작은 목조 보트 등에 폭탄을 싣고 자살공격을 감행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시설은 일본 해군 특공부대 가운데 교룡, 해룡, 회천대 중 1개 부대가 배치될 예정이었으나 종전으로 인해 실제 배치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동굴의 길이는 5m~40m까지 다양하다. 현재 제주 송악산 해안 일제 동굴 진지는 자연적인 요인에 의해 빠른 속도로 훼손·파괴되고 있다.
지자체 무관심에 무방비로 방치된 일제 침탈의 흔적…안타까움과 슬픔은 국민 몫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관광지인 제주도에 역사적 아픔을 간직한 일제 흔적들이 여럿 남아 있음에도 지자체는 사실상 방치나 다름없이 관리하고 있어 여론의 따가운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개인이 땅을 사들여 박물관으로 만든 제주가마오름 일제동굴진지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제주시 산하 제주세계문화유산센터에서 관리하고 있다.
셋알오름 동굴진지의 경우 지반이 약해 붕괴 위험까지 있지만 동굴 입구에 위험 표지판만 있을 뿐 누구나 들어갈 수 있게 돼 있다. 동굴 내부는 조명시설이 구축 돼 있지 않아 인명사고 가능성도 높게 평가된다. 나머지 일제의 흔적들은 안내 푯말만 구축 해 놓은 상태다. 관광지로 제대로 개발을 하지도 그렇다고 없애지도 않는 애매한 상황이다.
알뜨르비행장에서 만난 관광객 이진원(30·남) 씨는 “회사 워크샵으로 이곳을 방문했는데 관광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허술한 측면이 많아 크게 실망했다”며 “관광지로 제대로 개발을 해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제의 잔재 없앤 것도 아닌 애매한 곳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김영삼 정부는 일제의 잔재를 없애고자 조선총독부를 철거하기 까지 했다”며 “그런데 제주도민들의 피와 한이 맺혀 있는 흉측한 군사시설을 그대로 방치해둔 현실이 씁쓸하다”고 덧붙였다.
관광객 이주현(27·남) 씨는 “셋알오름 동굴진지는 붕괴위험 푯말이 붙어 있는데 누구나 들어가 볼 수 있게 해둔 것이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며 “그래도 궁금해서 안쪽으로 들어가 봤는데 조명도 설치 돼 있지 않아 상당히 위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호기심이 있는 사람들은 동굴 깊숙이 들어가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인명사고로 이어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제주도민 김희자(56·여·가명) 씨는 “과거 아버지가 강제동원 돼 동굴진지를 파셨는데 동굴진지를 파내며 생긴 사고로 평생 후유증에 시달리다 돌아가셨다”며 “아버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픈데 이러한 제주도민들의 마음을 지자체가 안다면 서둘러 철거를 했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제주세계문화유산센터 관계자는 “일본의 흔적이라고 해서 역사적으로 아픈 장소인데 이를 잘 활용하지 못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있었다”며 “이에 제주세계문화유산센터는 지난해부터 다크투어리즘 안내표지를 걸어두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붕괴 위험이 있는 일제동굴의 경우 아직 문화재청에서 폐쇄 조치가 나오지 않아 붕괴 위험 푯말만 세워둔 상태다”며 “각 일제의 흔적들은 모두 등록문화재로 돼 있어 폐쇄조치를 하기는 쉽지 않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 방치 돼 오고 있다는 지적에 다크투어리즘 운영 등의 조치를 취한 만큼 향후 더욱 호응이 좋고 활성화가 된다면 개발사업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검토 중이다”고 강조했다.
[배태용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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