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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거상 임상옥은 최인호의 소설 ‘상도’를 통해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다(財上平如水)”는 명언을 남겼다. 뛰어난 상재(商才)로 조선 제일의 부를 쌓은 임상옥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궁핍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향해 아낌없이 그의 재물을 흘려보냈다. 자신의 재능을 무엇을 위해 사용하느냐에 따라 수만 명의 생명을 살릴 수도 있고 고통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교훈이 담긴 말이다.
한귀석 월드샤프 기획이사 겸 버터플라이 대표는 감히 임상옥과 같은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음악대학을 졸업한 뛰어난 음악가이며 한 기업을 일궈낸 유능한 사업가라는 세간의 명성에 연연치 않고 그는 오늘도 자신의 재능과 재물을 소외된 이웃과 빈민국의 아이들을 향해 흘려보내고 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음대 출신 촉망받는 음악가…출세보단 봉사하는 삶 선택
연말연시 구세군 종소리가 한창인 지난 23일 서울 신도림동에 위치한 쉐라톤 서울 디큐브시티 호텔 커피숍에서 한귀석 지휘자를 만났다. 흔쾌히 인터뷰를 수락해준 한 지휘자는 독일의 천재음악가인 베토벤의 외모를 닮아 첫 눈에도 음악가임을 짐작케 했다. 그의 말투에는 세상의 명성과 성공에 대한 욕심이 없었으며 그의 눈빛에는 ‘음악과 봉사’라는 자신의 사명감만 배어있었다.
“성공의 목적에 대해 저는 다른 사람들과 생각이 달랐던 것 같아요. 제가 신앙인이다 보니 하나님이 보시는 기준에 조금이라도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나 생각했죠. 스스로 담금질을 하다 보니 아직도 부족하지만 제 인생의 방향이 설정된 것 같아요.”
“젊었을 때는 몸으로 때우는 봉사활동을 많이 했어요. 제가 가진 것의 전부였으니까요. 어릴 때부터 복지사업이나 봉사활동에 대한 꿈이 있었죠. 제대로 하려면 ‘돈이 필요하겠다’ 싶어 사업을 시작했어요. 1.5평짜리 가게부터 시작해 지금은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추게 됐죠. NGO단체에 경제적 후원을 하다가 ‘직접 나서서 해야겠다’는 생각에 월드샤프에서 활동가 겸 후원자로 일하게 됐어요.”
한 지휘자는 9살 무렵 동네 형을 따라 우연히 교회 갔다가 교회 선생님이 들려준 ‘로빈훗’ 이야기에 푹 빠졌다고 한다. 그때부터 매주 교회에 나가게 됐고 교회에서 접하게 된 음악은 그를 매료시켰다. 신앙과 음악이 그의 마음에 함께 자리잡은 것이다. 학창시절 음악에 재능을 보였던 그는 음대 진학을 결심했지만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혔다.
그는 자존심이 강한 학생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레슨을 받으며 음대 진학을 준비했고 음악하는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귀동냥으로 음악이론을 배웠다. 그리고 1986년 연세대학교 성악과에 입학했다.
성악가에서 지휘자로 변신…오페라 기획·지휘·작곡·편곡 다방면 재능 발휘
“본격적으로 성악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한 건 고등학교 때였어요. 그 전에는 피아노를 배우기도 했지만 당시 우리 사회는 남자가 음악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것을 꺼렸던 분위기였죠. 하지만 지금 음악을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어요. 부모님이 반대하셨기 때문에 레슨비를 부모님에게 손 벌리지 않고 혼자 해결하려고 했죠.”
성악과 1학년생이던 때 그는 또 한번 중대결심을 했다. 음악의 본고장에서 제대로 배워보자는 생각에 1학년도 채 마치기 전 독일행(行)을 선택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기는 커녕 연줄 하나 없었던 20살 청년은 무작정 비행기에 올랐다.
“나름 신중한 고민 끝에 독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독일어학과에 다니는 친구 누나를 통해 독일어를 배우기 시작했죠. 독일 학교의 학비가 무료라는 점도 독일행을 자극했어요. 학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도 무척 많이 했어요. 접시닦이도 하고 레슨도 하고 피아노 조율을 배워둔 덕분에 조율 아르바이트도 했죠.”
한 지휘자는 독일의 명문 음대인 하이델베르크음악대학 성악과에 면접관 만장일치로 당당히 합격했다. 음대 졸업 후 베를린오페라단 오디션에서 수석으로 합격하면서 한 지휘자는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벨기에·노르웨이를 포함한 국내외 각종 국제콩쿠르에서 입상했고, 베를린오페라단 수석 솔리스트로 활동했다.
6년 여의 독일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그는 성악가에서 지휘자로 음악 행로를 바뀠다. 학창시절부터 쉴 틈 없이 혹사시킨 성대에 이상이 온 것이다.
1993년 귀국한 그는 주변의 예상과 달리 ‘출세의 사다리’인 국내 유명 오페라단이나 대학의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합창단원과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모으기 시작했고 독자적인 음악활동에 나섰다. 오페라와 콘서트 기획부터 단원모집·홍보·후원기업 섭외는 물론 편곡·각색·음악감독까지 1인 10역의 역할을 소화했다. 공연단원들과 함께 육교에 올라가 홍보포스터를 붙이는 일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정해진 삶의 기준이 부질없는 것은 아니죠. 누군가에겐 살아가는 목적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아요. ‘어쩌면 진짜 거품일 수 있는데 거품인지도 모르고 계속 좇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무엇보다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할 수 있는지가 최우선 기준이고.”
“직접 합창단을 만들고 공연 포스터를 붙였어요. 많을 때는 한번에 8개 합창단을 지휘하기도 했어요. 뮤지컬이나 오페라는 스폰서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 했죠. KBS홀에서 창작 뮤지컬 ‘살로메’를 3일 정도 공연한 적이 있었는데, 전 좌석 매진을 기록했어요. 특정 한 두곳이 아닌 수백 명에게서 후원을 받기도 했어요.”
봉사활동 자금마련 위해 사업 시작…월드샤프 기획·재정지원 나서
△코리아뮤페라 컴퍼니 음악감독 △연극 ‘여자는 왜 여자라 하는가’외 연극음악 작곡 △뮤지컬 ‘빨강머리앤’ 외 뮤지컬 음악 작곡 △가가호호콘서트 시리즈 기획·연주 △전주시립교향악단 쇼스타코비치 숲의노래 초연 협연 △창작팝페라극 white love 각색 음악감독 지휘 △창작 오페라 ‘예수’ 각색 음악 감독 △애음아카데미 음악감독 △YWCA기독여성합창단 지휘자 △코리아뮤페라컴퍼니 음악감독 △산자부·교육부 장관상 콩쿠르 심사위원장 등 그는 기획·지휘·작곡·편곡 등 다방면의 재능을 발휘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활동 중에도 봉사활동은 쉬지 않았어요. 신앙을 통해 얻게 된 저의 사명이었죠. 전국의 정신병원, 교도소, 요양원 등을 찾아 연주한 횟수도 수백 번은 될 거에요. 음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상처 입은 마음이 치유되는 변화가 일어나길 기도했죠. 내게 주어진 재능이 이렇게 쓰인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죠.”
“복지사업을 본격적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하니 돈이 필요했어요. 처음에는 1.3평짜리 매장 쇼케이스를 얻어 직원 한명 뽑고 해서 쥬얼리 판매를 시작했죠. 첫 달 매출이 400만원 나오더군요. 한 건물에 쥬얼리 매장이 13개쯤 있었는데 규모면에선 우리보다 4배 이상 컸어요. 그래서 직원하고 작전을 짰죠. ‘우리가 장사 하려고 하지 말고, 하루에 고객 한사람과 친구를 만들어 보자’고 했죠. 마음이 통하면 많은 사람이 필요치 않아요. 그렇게 한사람씩 마음이 통하는 고객을 만들었고, 이후 사업은 후퇴하지 않고 계속 전진했던 것 같아요.”
한귀석 지휘자는 현재 쥬얼리·악세사리 제조·판매기업 ‘버터플라이’ 대표이사다. 보유중인 디자인만 1만여 종으로 동종업계의 최고를 자랑한다. 운영 중인 매장은 전국 50여 곳에 달한다. 베트남과 대만에도 진출하는 등 해외사업도 한창이다.
한 지휘자는 지난 2016년 아프리카·아시아의 가난과 질병퇴치를 위한 해외봉사단체 ‘월드샤프’의 기획이사로 참여하면서 재정적 지원도 아끼지 않고 있다. 월드샤프는 △음악교육과 연주활동 △빈민가 생활개선 △의료지원 △교육지원(한글·영어교육, 장학금지급) 등의 사업을 펼치는 비영리민간단체다. 특히 극빈의 삶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할 수 있도록 현지 합창단을 조직·운영하고 있다.
현재 인도 학생들로 구성된 ‘바나나합창단’이 한국을 방문해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인도 합창단 아이들에게는 엄청난 자극제가 되는 거죠. 합창, 어울림, 한국, 공연 등 일련의 과정을 통해 아이들에겐 꿈이 생기죠.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면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이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되고 변화가 일어나게 되죠.”
국내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시즌별로 △가족과 청소년을 위한 ‘歌가好호 음악회’ △수지여성합창단의 ‘평화콘서트’ △지휘자 한귀석과 함께하는 ‘가을뜨락 음악회’ △‘사랑나눔 콘서트’ 등 자선음악회를 열고 있다. 모아진 돈은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
“성경에 ‘땅에는 평화’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들은 이 땅에서 평화와 평안을 충분히 누릴 수 있어야 하죠. 평화와 사랑은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해요. 말로만 외치는 평화가 아닌 진정한 평화가 이 땅에 정착될 수 있도록 제가 가진 부족한 재능을 통해 작은 일들을 하고 싶어요. 저의 재능을 어느 곳에 써야 하는지 늘 자문하고 기도하며 살죠.”
[김진강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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