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창촌 줄여봤자…무늬만 성매매 근절

집창촌 줄여봤자…무늬만 성매매 근절
시행 10년 성매매특별법, 신·변종 성매매 확산 단초 제공

김도현기자(dhkim@skyedaily.com)

기사입력 2014-09-25 03:03:49

2000년 일명 ‘쉬파리골목’이라 불리던 전북 군산 대명동 성매매 집결지에서 화재가 났다. 이 화재로 5명의 여성이 목숨을 잃었고, 사망한 여성들이 포주들에 의해 감금생활을 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전 국민의 공분을 샀다. 2년 뒤인 2002년에는 전북 군산 개복동 유흥주점 화재사건으로 또 다시 20명의 성매매 여성들이 감금된 채 화마 앞에 무기력하게 생을 달리 했다. 이 여성들 역시 문밖에 잠금장치가 달려 안에서는 열 수 없는 방에 갇혀 성매매를 강요받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성매매 여성들이 좁은 방안에서 불에 타 숨지는 끔찍한 사건이 계속적으로 발생하자, 성매매에 대한 강력 단속을 요구하는 목소리와 함께 여성 종사자들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국민적 여론이 형성됐다. 이에 정부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단순히 여론 진화에 그치지 않고 아예 성매매를 뿌리 뽑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며 2003년 국무총리실 산하 ‘성매매방지기획단’을 신설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것이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성매매특별법)이다. 2004년 3월 22일 제정돼 같은 해 9월 23일부터 시행된 성매매특별법이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성매매특별법은 지난 10년 동안 전국에 산재해있던 집창촌을 대폭 축소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인 성과에 불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단속을 피해 음지로 숨어든 집창촌 종사자들이 신·변종 업소에 몸을 담으면서 여전히 성매매는 음지에서 활발하게 성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카이데일리가 성매매특별법의 성과와 부작용, 그리고 개선 방안 등을 알아봤다.

▲ 부산광역시에 위치한 ‘해운대690’으로 불리는 집창촌 입구의 전경. 이곳은 최근들어 이용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끊긴 편이라고 한다. ⓒ스카이데일리

성매매를 방지하고, 성매매 피해자 및 성을 파는 행위를 한 자의 보호와 자립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시행된 성매매특별법이 지난 23일로 10년이 됐다.

그러나 오늘날 성매매특별법 효력에는 여러 가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표면적으로 대중들에게 노출돼 있던 집창촌 폐쇄에 상당부분 성과를 올렸지만, 단속이 어려운 다양한 신·변종 성매매 태동의 단초를 제공해 성매매 근절에는 실패했다는 해석이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성매매 ‘삭초제근’(削草制根) 의지는 높이 평가할만하나, 성매매특별법은 성매매의 뿌리를 완전히 뽑지 못했으며 오히려 그 뿌리를 오히려 더 깊고 넓게 퍼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비난의 목소리를 내는 실정이다.

집창촌 감소했으나 반대급부로 신·변종 성매매 성업

지난 10년간 성매매특별법 시행으로 ‘홍등가’, ‘사창가’로 불리는 전국의 집창촌은 확실히 감소했다. 지난 2002년 69개에 달했던 전국 집창촌 수는 2013년 기준 44개로, 1/3 가량인 25개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현재 남아있는 대부분 집창촌도 규모가 크게 축소됐고, 종사자 수 역시 큰 폭으로 줄어 사실상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집창촌 몰락의 반대급부는 더 큰 부작용을 불러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단속을 피한 성매매가 더욱 음성화되면서 일반 주택가나 오피스텔에까지 침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성매매특별법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쪽은 ‘무용론’까지 들먹이고 있다.

▲ 성(性) 자체가 인간의 기본 욕구 중 하나이고 성매매인 역시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온 직업 중 하나라는 점에서 근절하기 힘들어 어느정도 이를 인정하는 새로운 방안이 나와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내용과 관계없음. <사진=뉴시스>

이들은 “집창촌 감소의 원인도 성매매특별법의 효과라기보다는 지구단위 계획으로 인한 재개발의 영향이 크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서울의 유명 집창촌 중 한곳인 용산역 집창촌의 경우 일대 재개발 계획으로 사라졌으며,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영등포, 청량리 등지도 역시 재개발 여파로 집창촌이 축소된 상태다.

또 집창촌 종사자의 숫자가 줄어든 것에 대해서도 다른 견해를 내놓고 있다. “종사자 감소의 근본 원인은 분명 성매매특별법이지만, 이들의 자립보다는 단속 위주의 정책을 펼쳐 종사자들이 ‘업종 변경’을 했을 뿐 성매매 자체에서 이탈한 것은 아니다”는 내용이다.

이를 방증이라도 하듯 성매매특별법 시행 직후 새로운 형태의 성매매 업소는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과거 집창촌 종사자들을 추적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 정확한 사실관계는 파악할 수 없지만, 신종·변종·유사 성매매 업소에 진출한 여성들의 상당수가 집창촌 출신일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

‘안마방’, ‘대딸방’, ‘유리방’, ‘오피방’ 등은 이미 등장한 지 오래고 최근 들어서는 ‘립카페’, ‘귀청소방’, ‘전립선마사지방’, ‘리얼돌룸’ 등 각종 퇴폐업소가 하루가 다르게 생겨나는 추세인데 이런 신·변종 성매매가 자리 잡는 데에는 성매매특별법 단속을 피해 집창촌을 나온 성매매인들이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단속 늘었으나 처벌은 솜방망이… ‘공창제’ 도입 목소리 나와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이를 교묘히 빠져나가기 위한 신·변종업소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제도 개선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 과거 미아리 일대 성매매 단속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전 서울 종암경찰서장 김강자씨를 비롯한 일각에서는 생계형 성매매여성들을 인정하고 사회가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진은 영등포 집창촌의 모습 <사진=뉴시스>

미아리 일대 집창촌 단속으로 성매매특별법의 일등공신으로 불렸던 김강자 전 서울 종암경찰서장은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무작정 전체를 단속하기보다 일부 생계형 성매매여성들을 인정해주고 이를 정부차원에서 관리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비 생계형인 ‘음성형 성매매여성’들에 단속은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생계형 성매매여성들을 법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김 전 서장의 논리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몇몇 국가에서 실시하고 있는 ‘공창제도’ 도입에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공창제란 국가차원에서 성매매 자체를 합법화 하는 것으로써 1984년 호주가 최초로 이를 합법화한데 이어 독일, 스위스, 네덜란드 등 유럽국가들 중심으로 합법화가 되는 추세다. 일본처럼 삽입행위를 제외한 성적 행위를 인정하는, 제한적 합법화를 허용한 국가들 역시 증가세에 있다.

시사토론사이트 프로콘(procon.org)에 따르면 전 세계 72개국을 대상으로 성매매 실태에 관해 조사한 결과 54.2%(32개국)는 합법, 12.5%(9개국)는 제한적 합법의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조사돼 반대(24개국, 33.3%)를 크게 앞지르는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한편 각종 이색 성매매업소들의 출현하면서 경찰 단속 역시 증가하는 모습이다. 지난 2010년 2068건에서 지난해 4706건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고, 해외 성매매 적발 역시 2009년 128건에서 2013년 496건으로 4배 가까이 증가하는 등 적발건수가 해마다 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적발 건수는 늘어난데 반해 관계당국의 처벌은 솜방망이나 다름없는 실정이어서 법 제정 취지에 걸 맞는 처벌 강화의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다.

대검이 밝힌 성매매특별법 위반 사범의 구속수사비율은 검거 피의자의 0.5~1% 선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정식 재판에 회부되는 ‘정식재판 청구비율’은 2013년 기준 8.5% 수준이며, 이마저도 40.5%에 해당하는 피의자가 기소유예 처분을 받는 것으로 종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