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눈가린 경주마가 아니다

박선옥 기자(sobahk@skyedaily.com)

기사입력 2020-07-24 00:02:25

경주마에게 경기에 집중하도록 착용해주는 일종의 가면이 있다. 바로 ‘눈가리개가면’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사실상 얼굴을 감추는 용도가 아니라 가면이라고 하기엔 적절치 않아 거기에 눈가리개라는 용도를 설명한 표현이 덧붙여져 만들어진 용어인 듯하다. 대개는 말이 옆쪽을 못 보도록 가죽으로 만든 눈가리개를 눈 양쪽에 붙이는 식이다. 시야를 가리기는 하되 눈을 가리는 안대와는 달리 시야각을 차단한다는 의미에서 ‘차안대(遮眼帶)’라고 불리기도 한다.

사람은 두 눈이 얼굴 전면에 앞을 향해 붙어있어서 인간의 시야각은 좌우로 180도 정도다. 만일 눈알을 굴려 시야를 넓혀 본다면 양쪽 합쳐서 240도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 말의 경우는 인간과 크게 다르다. 눈이 얼굴 양옆에 달려 있는 까닭에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시야각은 350도에 이른다. 거의 동시에 사방의 상황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말은 체구에 비해 겁이 많고 낯선 상황이나 물체에 공포를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경주마에게 주위 상황으로 인해 산만해지는 것을 막고 앞으로만 질주할 수 있도록 양쪽 시야를 차단해 주는 것이 바로 ‘차안대’이다. 차안대가 없다면 경주마는 경기하는 도중 앞과 좌·우는 물론 뒤에서 따라붙는 다른 말의 모습도 보면서 뛰게 된다. 그런 경우 겁 많은 말들은 주의가 산만해지고 놀라서 다른 쪽으로 도망치려는 행동을 하게 된다고 한다.

재미있는 표현은 영어에서 ‘차안대’의 의미로 쓰이는 ‘blinker’라는 단어다. blinker는 ‘깜빡이다’라는 의미의 ‘blink’에서 파생되어 ‘깜빡이는 것’이란 뜻을 갖는다. 우리가 자동차에서 방향지시등을 ‘깜빡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아서 실제로 방향지시등의 의미로 쓰이는 단어다. 그런데 이 단어가 경주마에게 씌워주는 차안대의 의미로도 쓰이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아마도 좌·우 양옆의 시야를 완벽히 차단하고 오로지 전방을 향해서만 시야각을 좁혀놓았으니 이것이 말이 달려야하는 방향을 가리키는 깜빡이 역할을 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론해볼 수 있다. 차안대를 씌운 경주마가 볼 수 있는 시야는 전방 100도 정도에 불과하다.

최근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유독 우리나라는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홀로 태평한 듯 보인다. 북한이 줄줄이 미사일을 발사해 국제사회가 우려의 목소리를 내도 우리 정부는 예의주시할 뿐이다. 북한은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서 약 20번에 달하는 미사일 발사 실험을 강행했다. 지난 3월 일본 정부는 북한의 도발이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면서 외교 경로를 통해 북한 측에 항의의 뜻을 전달했다.

지난 6월에는 유엔 인권이사회가 북한에서 벌어지는 인권 침해를 규탄하고 책임 규명을 촉구하는 ‘북한 인권결의안’을 채택했다. 북한 인권결의안은 2003년 유엔 인권이사회의 전신인 인권위원회에서 처음 채택된 뒤 올해까지 18년 연속 채택됐다. 47개 회원국이 이 결의안에 합의했다. 인권이사회는 결의에서 “북한의 조직적이고 광범위하며 중대한 인권 침해에 대해 깊이 우려한다”며 “이런 인권 침해 중 많은 사례는 반인권 범죄에 해당한다”고 비판했다. 우리 정부는 합의 채택에는 동참했으나 지난해에 이어 결의안 초안 공동제안국 명단에서는 빠졌다. 외교부는 한반도 정세 등을 고려해서 공동제안국에는 참여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으나 어느 국가보다도 북한 인권에 관심을 가져야 할 한국 정부의 공동제안국 불참은 비난의 소지가 있었다.

특히 인권문제와 관련해 국제적 이슈에 대한 한국 정부의 외면 혹은 무관심은 북한 인권문제 이외에 여러 가지 사안에서도 나타난다.

홍콩 문제만 해도 그렇다. 지난해 6월부터 12월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반중국 민주화 시위를 이어온 홍콩 시위주도 세력이 민주화 투쟁의 선배라면서 한국에 지지를 호소했지만 우리 정부의 눈에는 그들이 보이지 않는 듯 했다. 유엔과 미국·영국 등 서방 국가들이 중국 신장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위구르족 인권탄압 정책에 대해 중국을 비판하고 있으나 이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 정부는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중국은 홍콩보안법을 만들어 7월 1일부터 이를 시행하고 있다. 홍콩은 이제 더 이상 ‘일제양국’이라는 약속 하에 보장됐던 자유로운 도시가 아니다. 이에 따라 홍콩의 인적 자원과 자본이 소위 ‘헥시트(Hong Kong+Exit)’, 즉 탈 홍콩 러시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영국은 벌써부터 홍콩을 탈출하려는 홍콩인들을 위해 문을 열어놓겠다고 공언했다. 22일에는 내년 1월부터 영국해외시민(British National Overseas·BNO) 여권을 가지고 있거나 과거에 보유했던 홍콩인의 이민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아시아 금융허브라는 홍콩의 경제적 지위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싱가포르는 홍콩의 돈을 유치하기 위해 발빠르게 대응해 지난 4월 현재 이미 싱가포르 비거주자 예금이 전년에 비해 44%가 증가했다. 일본은 ‘국제금융도시 도쿄’를 모토로 내세우며 홍콩이 누렸던 지위를 넘보고 있는 중이다.

국제적 상황이 이런 가운데 유독 한국만 조용하다. 양쪽 눈 밖의 시야를 모두 차단한 채 오로지 한쪽만 보고 달리는 말과 같다. 주변의 상황에 무심한 채 우리 정부가 향하고 있는 방향은 어디일까.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