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의 긴 세월동안 국내 연극무대에서 활동을 해 왔습니다. 마땅한 벌이도 없었기 때문에 공사 현장에도 나가는 등 생계를 이어갔었죠”

 

중견 탤런트로 최근 안방극장과 스크린에서 맹 활약을 펼치고 있는 최일화는 불혹이 넘어서도 주목을 받지 못했었다.

 

그는 연극에 일생을 바쳤지만 변변치 않은 수입으로 생계를 위한 힘든 노동을 해 가며 가장의 책임을 다 해야했다.

 

하지만 그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무대에 서는 것 자체만으로 감사하다는 진솔한 마음을 전했다. 아울러 공연을 통해 관객과의 호흡을 같이 하는 속에서 삶에 대한 존재의 이유를 찾는다고 했다.

 

최근 최일화의 연기가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 ‘오직 열정으로 한 우물만 팠기 때문’이라는 평판이 나온다. 그는 1984년 극단 마당세실에 입단하면서 연극을 시작했고 1980년대 후반부터 10년 동안 소품을 담당하면서 연기자로서 꿈을 키웠다.

 

“같이 입단한 연극 동료들은 조연을 넘어 주연으로 활약을 하던 시절에 저는 공연 포스터를 붙였습니다. 불혹이 넘은 40대에도 붙이고 다녔었죠. 또 각종 연극 소품도 담당하면서 일을 했었고요. 동시에 생계가 어려워 공장과 공사판 등에서 많은 일을 하면서 가정을 꾸려 나갔습니다”

 

 

1959년 전북 고창에서 2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최일화는 넉넉하지 못한 집안형편으로 유년시절부터 고된 일을 했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는 고물을 줍는 일도 했었고, 공사판과 공장 등을 다녔습니다. 힘든 일을 하시던 부모님을 대신해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고자 제 스스로 일을 찾아 돈을 벌었죠. 그래서 인지 일찍부터 친구들과 비교해 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인천으로 이사를 한 그는 4학년때부터 동생과 함께 ‘구두닦기’를 하고 ‘아이스크림’을 팔러 다니는 등 힘든 유년시절을 보냈다.
 
“제가 태어난 시기에는 모두 힘든 시기였기 때문에 고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또 장남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었죠”

 

어려운 집안 형편에도 불구하고 그는 중학교와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공부와 일을 병행했다. 학생으로서 본분을 다 지키며 일을 했다고 그는 회고했다. 

 

“제가 연극에 관심이 있었던 시기는 고교시절이었습니다. 저는 초연을 했던 ‘복부인’이란 연극 대본을 직접 쓰고 주인공으로 열연을 펼쳤었죠. 이 작품에서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어 지금까지 배우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 후 군대에 입대했고 이후 야간대학에 진학하고자 했다. 

 

“집안 형편으로 군 복부를 빨리 마치고 공부도 하면서 일을 하려고 했었습니다. 군대에서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공부를 많이 했었죠. 하지만 전역하기 며칠 전 부친이 중풍으로 쓰러져 대학의 꿈을 접었습니다. 또 어머님은 다리가 불편해 일을 하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죠. 저는 전역 후 바로 생업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최일화는 군 전역을 하자마자 신발공장을 비롯해 공사현장 등을 전전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또 악기 회사도 다니고 각종 전단지도 붙이는 등 가족의 생계를 위해 몸을 불사르며 혼신의 힘을 다해 일을 했다.

 

“힘든 노동을 계속 했었지만 수입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연극을 하면서 돈을 벌고 싶었죠. 한번은 지인을 통해 극단 마당세실을 소개받아 입단했고 각종 허드렛일을 하게 됐습니다”

 

1984년, 20대 중반의 나이에 마당세실에 입단한 그의 일은 포스터 붙이는 작업을 비롯해 무대 뒤에서 다음 장면을 위한 소품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었다.

 

스텝으로 활동을 시작한 최일화는 공연을 위한 홍보도 직접 도맡아 가며 발품을 팔았고, 간간히 연극무대를 직접 보면서 연기자의 꿈을 키워갔다.

 

“마당세실에 입단하면서 출연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습니다. 그 시절 배우 김갑수와 이영혜 등이 출연한 ‘님의 침묵’이란 공연에 행인으로서 출연했었죠. 저는 대사 한마디 없었지만 결코 잊지 못할 작품입니다”

 

“이후 다른 극단을 옮기며 한 두 마디의 대사가 있었지만 비중은 없었습니다. 저 보다 늦게 입단한 후배들도 조연을 넘어 주연급으로 성장을 하고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크게 부러워하지는 않았습니다. 저 역시 ‘언젠가는 기회가 있을 것’이란 긍정적인 생각으로 열심히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공연을 마치면 유흥업소 쓰레기를 치우기도 했으며 공연일이 없는 날에는 공사판에서 막노동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갔다고 한다.

 

또 잠을 줄이기 위해 하루에 커피를 20~30잔씩을 마시며 쪽잠을 자는 등 그의 20대 생활만큼은 혹독한 시련이 그의 어깨를 사정없이 짓눌렀다. 

 

“젊은 시절에 평생 마셔야 할 커피를 다 마신 듯합니다. 저는 잠을 줄이기 위해 카페인 섭취를 많이 했었지만 지금은 커피를 전혀 마시지 못합니다”

 

 

그의 인생 변환기를 맞이한 것은 30대 후반이었다.

 

1989년 극단 ‘신시’에 입단한 최일화는 연기를 통해 본격적인 연기자로 활동을 하고자 했었다.

 

하지만 무대 경험이 많지 않았던 그는 미숙한 연기로 인해 주위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저는 연기를 못했습니다. 악착같이 옆에서 많이 지켜만 보았지, 한 두 마디의 대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었죠. 생활비도 없는 상황에서 연기 학원을 다닌다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저는 옆에서 선·후배들의 공연을 지켜보는 것이 다 였죠”

  

그는 극단 신시에서 약 10년 동안을 단역으로 출연했지만 포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의 변환기는 1995년 아내와의 결혼과 함께 인생의 꽃을 피울 수 있었다고 한다.

 

“솔직히 많은 일을 하면서 결혼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의 아내는 공연과 관련된 일을 했었고 저와 12살 차이가 납니다. 저는 저를 믿어준 아내에게 프러포즈를 하면서 승낙을 받을 수 있었고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됐죠”

 

“좋은 만남으로 인연이 돼 결혼을 했지만 당시에는 나이 차이와 함께 번번한 직업이 없었기 때문에 처가에서 많은 반대를 했었죠”

 

그는 지인에게 돈을 빌려 소박한 결혼식을 올렸고 아내의 적극적인 내조로 지금의 최일화가 될 수 있었다고 했다.

 

“아내가 많은 내조를 해 주었습니다. 저는 더 많은 책임감을 느끼며 일을 더 열심히 하기 위해 극단을 찾아 돌아다녔지만 나이가 많고 개성이 없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기 일쑤였죠”

 

“한번은 극단을 전전하는 중에 연출가 한태숙 선생님으로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분은 ‘나, 김수임’이란 작품에 비중 있는 조연 역할을 주었습니다”

 

“저는 아이도 조금씩 커가는 상황이었고 빚은 늘어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작품을 위해 혼신의 연기를 펼쳐 활동범위를 넓혀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대사가 없는 배역만을 대부분 맡았기 때문에 비중 있는 역할의 연기력은 부족한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그의 연기는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오히려 주변에서 포기를 권했다고 한다.

 

“한태숙 선생님은 저의 연기력을 보고 많은 실망을 했습니다. ‘무대가 아닌, 다른 곳에서 너를 보았으면 좋겠다’라고 하셨죠. 제가 10년 넘게 생활을 해왔던 무대였는데, 연출을 하신분에게 그런 말을 직접 들으니 충격이 컸습니다”

 

“저는 더 독하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가정이 있는 40대이기도 했기에 젊은 시절 못지않은 열정으로 노력을 더 했었죠. 가정이 있었기 때문에 성공에 대한 갈망이 더 절실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무대 공연을 비롯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을 해 왔던 최일화는 원로배우인 박정자씨가 다시 손을 내 밀었고 40대를 맞이해 꽃을 피우게 된 것이었다. 

 

그는 2003년 연극 ‘추적’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다시 맡아 소화해 냈고 관객들에게 좋은 평을 받은 것이다.

 

“‘추적’이란 작품으로 동아 연극상을 수상했고 이듬해인 2004년 ‘삼류배우’란 작품에서 첫 주연을 맡아 공연을 했습니다.

 

그의 주연은 데뷔 20년이 넘어서야 맡은 것이었기에 남다르게 기억되는 역할이다. 삼류배우란 작품을 마치면서 그는 수많은 갈채와 관객들의 관심을 받았고, 그것을 계기로 연기에 대한 열정과 욕심이 더 커지게 됐다고 한다.

 

 

수많은 단역으로 활동하고 무대 뒤에서 열심히 활동 해 왔던 최일화는 20년을 연극계에 몸을 담고서야 빛을 발하게 됐다.

 

이어 그는 이어 2005년 SBS의 ‘패션 70s’이란 드라마의 주인공인 주진모(김동영 역) 아버지 역할로 출연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또 2007년 MBC 드라마 ‘히트’에도 명품급의 연기를 보여줘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이후  ‘제빵왕 김탁구’, ‘드림하이’ 등을 비롯해 최근 ‘감격시대’, ‘백년의 신부’ 등에 출연하며 절정의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아울러 영화로는 ‘이재수의 난’, ‘베사메무쵸’ 등의 영화에 출연했고 2002년 ‘케이티’란 작품에서는 주연을 맡기도 했다. 또 와일드 카드, 왕의 남자, 한반도, 우아한 세계, 애자, 이태원 살인사건 등에도 출연을 했었다. 최근에는 지난해 개봉한 박수건달, 신세계 등에 출연해 활동 역량을 넓히고 있다.     

 

그는 40세를 넘기면서 인생의 황금기를 맞이했고 무명의 설움을 떨칠 수 있었던 것이다.

 

 

최일화는 연극에 반평생의 인생을 투자했고 한 우물을 파면서 성장을 해 왔다.

 

그는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무명의 힘든 상황을 알고 있기 때문에 후배양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연극을 전공한 후배들이 1년에 약 9000여명이 쏟아집니다. 이들이 무명을 벗어나려면 열정과 끼,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운도 따라야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연극을 통해 관객과의 호흡을 하면서 연기력을 인정받아야 합니다 ”

 

 

 

“저는 후배들을 위해 3년 전 ‘극단 혜화 최일화 스튜디오’라는 이름으로 혜화역 인근의 소극장을 장기 임대해 후배들이 열연을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저의 경험으로 보면 무대에 설수 있는 자리가 많아야 하고 경험이 많아야 연기력이 늘어나며 모든 배역을 잘 소화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기회조차 없는 후배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는 실천 경험이 없는 후배들을 위해 자비를 들여 지금의 연습실을 대관하고 있다. 

 

“후배들이 단역으로 생계를 이어가기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저는 후배들에게 ‘이 무대를 발판으로 TV, 영화에서 컨택받지 못하면 연극하지 마라’고 지도를 합니다. 그만큼 죽기 살기로 하자는 저의 강한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극단 혜화는 창작극 발굴 프로젝트 일환으로 진행되는 공연으로 2011년 ‘한여름 밤의 미니스커트’란 작품을 초연으로 공연을 펼쳤다.

 

현재는 ‘엄마의 다락방’이란 작품으로 지난 3월 11에서 16일까지 진행됐고,  다시 내달 12일부터 20일까지 공연이 진행될 예정이다.

 

“정부에서도 지원이 필요합니다. 정부는 뮤지컬이나 오페라 등 무대가 큰 곳을 지원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실제적으로 지원이 필요한 곳은 한류를 선도할 어린 후배들입니다”

 

“저는 무대에 설수 있는 자리도 없고 동시에 생계수단도 막막해지는 등 이중고의 고통을 겪고 있는 후배 양성을 위해 작은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양지의 옥토를 일궈 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