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는 인고의 시간과 신의 뜻이 빚습니다”

“도자기는 인고의 시간과 신의 뜻이 빚습니다”
혼불 쏟아 도자기 굽는 도자명장 백산(帛山) 권영배씨(백산도요 대표)

스카이편집팀 기자(skyedaily@skyedaily.com)

기사입력 2014-10-06 00:05:57

도자기를 굽는 것은 모든 과정이 인간의 혼불이 담긴 노력으로 하지만 그 이후의 결과는 신의 뜻이 담긴 자연의 불이 만들어 준다는 철학을 갖고 있는 도자 명장이 있다. 백산(帛山) 권영배씨(백산도요 대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권 명장은 지난 2012년 이천시의 13번째 도자기 명장으로 선정됐다. 그는 지금까지 37년간 전통도자 기능인으로 한 길만을 올곧이 걸어왔다. 권 명장에게 도자기는 인간의 땀과 열정이면서 동시에 우주의 조화이고 지혜다. 흙을 고르고 형태를 만들고 문양을 새겨 넣으며 초벌과 유약을 바르고, 가마에 넣기까지의 작업이 그에게는 길고 긴 인고의 시간이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도자를 가마에 넣은 이후 도자기는 온전히 그의 손과 머리를 떠난다. 신의 조화, 신의 빚음에 맡긴다는 게 권 명장의 철학이다. 결국 불은 그에게 우주의 지혜를 기대하는 신이다. 그래서 권 명장은 노자의 도덕경을 즐겨 읽는다. 없음이 있음을 가능하게 해주는 무위(無爲)가 바로 이 세상 도의 수준과 미의 가치를 좌우하는 탓이다. 모든 일이 저절로 이뤄지도록 내버려두는 내공이 대단히 쉽지 않아 보였다. 주변에서는 그의 작품에 대해 “동양화의 한 획이 지나가듯 자연적인 모습을 담았다. 사계의 아름다운 향기를 즐겁고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다”고 평한다. 상감 속에서 변화되는 묘한 요변(窯變)이 권 명장에게는 중요한 소재다. 이를 통해 그는 자연의 한 어울림을 완성도 높게 구워내고 있었다. 권 명장은 출렁이는 보리밭, 포근하고 고요한 산수문, 위풍당당한 소나무, 잔잔한 우점문(雨點文) 등 양각기법을 즐긴다. 권 명장은 요즈음 세대의 도공들에 대해 ‘제대로 된 도자기 철학’을 갖고 있지 않아 아쉬움을 전했다. 스카이데일리가 자연과 우주의 오묘한 진리를 담아내듯 도자기를 만드는 백산(帛山) 권영배 명장을 만나 그의 작품 속에 담긴 철학과 진리는 무엇인지를 들어 보았다.

▲ 권 명장에게 도자기를 굽는 것은 혼불을 담금질 하는 시간이다. 흙을 고르고 형태를 만들고 문양을 새겨 넣으며 초벌과 유약을 바르고, 가마에 넣기까지의 작업은 그야말로 인고의 시간인 탓이다. 그 후에 그는 “신의 뜻에 맡긴다”고 했다. 어떤 작품이 나올지는 “불이 준다”고도 했다. ⓒ스카이데일리

“흙은 몸, 불은 정신이다. 흙과 불은 거짓이 없다”

[김종우 기자=자유기고가] “가마 앞의 도공(陶工)은 인고(忍苦)의 시간을 심판하는 곳과 같습니다. 도자기는 그 결과물로 태어나는 것이죠. 흙과 불은 거짓이 없습니다. 흙은 몸이고, 불은 정신입니다. 한 줌의 흙이 도공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것이 불이라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그렇지만 수천 점을 만들어도 똑같은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백산(帛山) 권영배 도자(陶瓷) 명장이 도자기라는 작품이 나오기까지의 힘든 과정을 화두(話頭)로 던진다. 그는 이천시의 도자 명장이다.

지난 1977년 도예에 입문한 권 명장은 도원요(陶元窯)에서 지당 박부원 선생으로부터 사사(師事)를 받았다. 또 현암 현무남 선생에게도 사사했다. 이어 지난 1991년 향림재활원 도자기 재활교사로 재직한 뒤 1994년 백산도요(帛山陶窯)를 설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백산은 지난 2012년 이천시의 13번째 도자기 명장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거머쥐었다. 그는 지금까지 37년간 전통도자 기능인으로 길을 올곧이 걸어왔다. 백산의 명장 속에 강한 기운이 느껴졌다.

실제로 주변에서는 ‘동양화의 한 획이 지나가듯 자연적인 모습을 담았다’, ‘사계의 아름다운 향기를 즐겁고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다’는 등의 호평이 이어진다.

“상감 속에서 변화되는 묘한 요변(窯變)은 저에겐 중요한 소재입니다. 출렁이는 보리밭과 포근하고 고요한 산수문, 위풍당당한 소나무, 잔잔한 우점문(雨點文) 등 양각기법은 즐기는 분청기법입니다”

“하지만 흙을 고르고 형태를 만들고 문양을 새겨 넣으며 초벌과 유약을 바르고, 가마에 넣기까지의 작업은 저로서는 인고의 시간입니다. 그 후의 과정은 ‘신의 뜻에 맡긴다’는 표현이 맞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작품이 나올지 어떤 과정이 소홀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불이 주기 때문입니다”

유네스코 세계공예협회 주관 ‘우수 수공예품 인증서’ 획득

▲ 권 명장은 도자기를 빚는 일은 흙부터 시작된다며 도덕경의 핵심사상인 무위(無爲)처럼 모든 일이 저절로 이루어지도록 내버려 두듯이 도자기를 빚고 굽는 것 역시 마찬가지라고 강조한다. ⓒ스카이데일리

최근 유네스코와 세계공예협회(World Crafts Council)가 공동 주관한 ‘우수 수공예품 인증 프로그램’에서 인증서를 획득한 권 명장의 소감은 무엇일까.

“인증서 획득은 이천시가 ‘유네스코 창의 도시’로 지정된 이후 다시 한 번 이천시 공예문화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천지역 내 활동 중인 공예 및 도예작가 중 세 작품만이 인증서를 획득했죠. 제가 제출한 수상작은 ‘분청 잠자리문 화병’입니다. 수상작은 향후 4년간 세계공예협회에서 각종 국제박람회와 전시회를 통해 전시 홍보될 예정입니다”

백산이 ‘분청 잠자리문 화병’을 출품한 이유가 있었다. 가장 한국적인 가을 풍경을 묘사해 보려고 했다는 것이다. 작업은 다른 나라에서 쓰지 않는 공법 즉, 습식공법으로 인화문을 찍고 양각 잠자리 조각을 한 후 상감을 바른 뒤 마감했다.

국내외 도자전 다수 입상…전시회도 수시로 개최

그의 수상경력은 명장의 위치를 말해주듯 화려하다. 백산은 1996년 전승공예대전 수상을 비롯해 대한민국도예대전(1997), 온고을 전통공예대전(1998), 엑스포국제공모전(2001, 2003), 전승공예대전(2003), 디자인공모전(2007), 공예품대전(2008), 인천 현대공예대전(2010), 목포 도자기전국공모전(2011), 김해 분청전국대전(2013) 등의 내로라하는 각종 전시회에서의 모두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 백산도요의 주요 고객인 독일의 한 신부가 도자기를 구입하고 있는 모습(사진 위)과 부인 신수임씨가 백산도요 방명록을 펼쳐 설명하고 있는 모습 ⓒ스카이데일리

백산은 또 러시아 국립박물관 한국전승도자전(1996), 한중일 도예전(1997), 국립박물관 다기전(1998), 이천 도예가회전(1999), 도예작가 6인전(2000), 캐나다 캘거리 합동전(2002),미국 CA머캔탤러 문화원 초대전(2007), 한국전승도예협회 회원전(2008), 대전KBS 도예전(2009), 전주 전통공예대전 초대전(2009, 2011) 등의 많은 전시회를 통해 이천 도자기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적극적으로 알려 왔다.

백산 권영배 명장 약력

△전주 태생

△명지대 산업대학원 도자기 기술학과 수료

△1977년=도예 입문. 도원요 지당 박부원 선생 사사

△1980년=전승도예협회 회원

△1984년=백산도요 설립

△2001년=타임캡슐 도자기 기증

△2007년=미 CA머캔탤러 박물관 작품기증

△2009년=전북 공예인협 회원/전주 역사박물관 도판 기증/전주 전통공예대전 초대작가

△2012년=이천시도자기명장인증패 수여

△2014년=경기도 명품점포 선정/우수수공예품인증서 취득(유네스코 및 세계공예협회)/ 산업인력관리공단 우수기능인 선정

권 명장은 지당 박부원 선생(도원요)과 현암 현무남 선생(현암요) 문하에서 경지에 오른 도예 기술을 갖춘 장인으로 평가받는다. 그가 빚은 백자와 분청, 진사 등은 도자 예술의 결정판이라는 호평을 듣고 있다.

백자의 도자를 접한 사람들은 “가슴으로 다가가면 ‘생명(生命)의 도자’, 눈으로 바라보면 ‘기품(氣品)의 도자’, 영혼으로 품어보면 ‘은혜(恩惠)의 도자’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앞으로는 백자 보다 분청을 더 많이 빚겠습니다”

“분청보다 백자를 더 많이 빚어 왔지만 앞으로는 분청을 중점적으로 빚을 것입니다. 중성소성을 사용하는 분청사기는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의 약칭이죠. 분청은 청자나 백자에서는 볼 수 없는 자유분방하고 활력에 넘치는 실용적인 형태와 다양한 분장기법 그리고 의미와 특성을 살리면서도 때로는 대담하게 생략, 변형시켜 재구성한 무늬가 마음에 듭니다. 깊이가 있는 도자입니다”

환원소성의 백자는 고려 초기부터 청자와 함께 일부가 만들어졌다. 그 수법은 계속 이어져 조선시대 자기의 주류를 이루었다. 무늬를 표현하는 수법과 물감(안료)의 종류에 따라 순백자, 청화백자, 진사백자 등으로 구분된다.

백자는 단순한 형태와 흰색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 좋다고 한다. 특히 이런 백자의 아름다움은 한국 예술의 독특한 분위기를 잘 나타낸 것으로 손꼽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없음이 있음을 좌우하는 미의 완성도 추구…“도자철학 아쉽다”

전통적인 가마가 열 손실이 심하고 외부로부터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 한편 가마 밑에서 습기가 올라오는 단점이 있다고 한다. 백산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도자기 소성용 장작 가마’라는 특허를 출원했다.

“도자기를 빚는 일은 흙부터 시작됩니다. 도자기는 90%가 경험과 실전입니다. 개인적으로 노자의 도덕경을 틈나는 대로 그래서 읽습니다. 도덕경의 핵심사상은 무위(無爲)이죠. 이는 모든 일이 저절로 이루어지도록 내버려 두라는 것입니다. 도자기를 빚고 굽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도공들의 ‘제대로 된 도자기 철학’이 아쉬운 요즈음 도덕경이 주장하는 ‘텅 빔과 무(無)의 가치’를 후배들은 올바르게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권 명장은 백산도요 설립 이후 명지대 이병하 교수(정년 퇴임)의 물레 성형을 해야만 하는 당위성에 물레를 하게 됐다. 이를 통해 제2의 도자 인생을 열게 됐다고 전한다.

“이천시 도자기 문화의 융성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준 조병돈 이천시장과 사업가 권후원 권사 그리고 항상 저를 아껴주는 친구 박영근씨, 인터넷 카페 백사모(백산을 사랑하는 모임)의 김덕심 회장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