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장기계의 고수들이 모여 만든 ‘한국기도원’으로 장기협회는 태동했다. 이듬해 손도심 국회의원이 2대 협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서울신문사에서 국수전 및 프로입단 대회를 최초로 개최했다. 국내 장기 대회의 효시였던 이 대회를 계기로 장기협회는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게 됐다.

세월이 흘러 협회장이 여러 번 바뀌고 명칭은 한국기도원에서 한국장기원으로, 한국장기원에서 한국장기협회로 바뀌었다. 현재는 지난해 9월 취임한 전만황(48) 한국장기협회장이 협회를 이끌고 있다. 전만황 협회장은 현재 장기 협회에 소속된 프로기사는 180명이고, 프로 구단은 25명이며, 협회 추산 장기 인구는 1200만명이라고 밝혔다.

전만황 회장은 장기보급 활성화를 위해 자체 개발한 ‘훈민정음 장기알’을 특허출원 신청을 했다. 전 회장이 새롭게 고안한 장기 알에는 한자어 대신 순수 우리나라 훈민정음을 새겨 넣었다. ‘초’와 ‘한’을 뜻하는 왕의 자리에는 천지인을 뜻하는 ‘삼태극’, 고구려 시조새인 ‘삼족오’를 넣었다.

그는 시중에 나와 있는 장기 서적이 대부분 어른용이어서 어린이들이 쉽게 접할 수 없다는 점이 안타까워 어린이 눈높이에 맞는 책을 출간할 예정이다. 이 입문서에는 어린이들이 장기와 장기판에 친숙할 수 있도록 장기 기물을 이용한 알까기나 탑쌓기 등의 내용도 들어있다.

전만황 협회장은 이번 구정에 열릴 제7회 KBS 장기왕전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했다. 이 와중에도 장기의 보급을 위해서 서울시장배, 경남도지사배, 인천시장배 장기 대회를 추진하고 있었다. 그는 대한장기협회가 주최하는 장기 대회 이외에도 전국 지부에서 각자 지자체나 기업의 후원을 받아 대회를 개최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전만황 회장은 “세상 만물에는 각자 고유의 역할이 있듯, 장기 기물 역시 각자 역할이 있다”며 “장기는 기물과 기물을 조합해 운영하는 게임으로, 이는 회사를 운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고 했다.

전 회장은 “장기는 왕 하나를 살리기 위한 게임이다”며 “왕을 지키는 마음을 보면 장기를 통해 희생·봉사·애국정신 등을 함양할 수 있는 정신강화 스포츠다”고 말했다.

장기는 왕이라는 기물 하나를 지키기 위해 서로 몸을 던지며 서로 싸우는 게임인데, ‘왕’이라 불리는 기물은 나라나 부모로 대입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전 회장은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서 들려오는 군부대 자살소식에 우려를 표하며 장기가 이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는 “왕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장기를 두다보면 자연스럽게 군인들의 얼과 기상이 높아질 수 있다”며 “이렇게 정신력이 강화되면 군부대 자살 문제가 해결될 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에서 일어나는 자살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스카이데일리가 장기협회를 찾아 갔을 때, 장기 프로 9단 2명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 ‘장기병에 걸린 사람’, ‘장기에 미친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취미로 시작한 장기의 매력에 빠져 장기인의 길을 가고 있었다. 현재 이들은 협회일을 도우며 프로활동을 하고 있다.

“바둑이 정적인 게임이라고 한다면 장기는 동적인 게임입니다. 바둑돌은 판 위에 놓는 순간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장기 기물은 살아서 움직입니다. 옮기면 옮길수록 생명력이 강해집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장기를 접한 장기프로 9단 최성우(69) 씨는 중학교생 시절부터 문지방이 닳도록 장기협회를 드나들었다. 그는 1973년 프로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장기인의 길을 걸었다. 그는 장기에 빠져 동양 3국의 장기를 모두 배웠다. 말 그대로 살아있는 ‘장기 중독자’였다.

“동양 3국의 장기는 각자 자기나라의 특성에 맞게 발전했습니다. 중국장기판에는 실제 중국에 흐르는 장강을 뜻하는 강이 있습니다. 일본 장기는 내가 상대의 기물을 먹으면 그것을 다시 재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 장기를 다 둬봤지만 우리 고유의 장기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최 씨는 현재 프로로 활동 중이며, 이전에는 협회에서 일을 했었다. 간간히 지도교육을 하며 후진을 양성한 적도 있었지만, 환갑을 넘은 후로는 프로 활동에만 전념중이라고 했다.

“장기는 상대방과 앉을 때부터 싸움이 시작된다고 봅니다. 앉은 후 각자 포상을 구상하면 이미 전투가 시작되는 겁니다. 포상이 아주 중요합니다. 장기는 자칫 실수해 하나의 기물을 날려버리면 그걸로 승부는 끝이 납니다. 물론 가끔씩 중요한 말을 잃고도 승리를 할 때도 있습니다. 비록 실수를 하더라도 그것을 헤쳐 나가는 것은 진정한 장기의 매력입니다”

바둑은 각자 집을 지키면서 둘 수도 있다. 그러나 장기는 두는 순간 무조건 싸움이 시작되는 게임이다. 그가 한 평생 장기에만 몰두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장기의 매력 때문이었다. 장기를 두다보면 승부의 세계는 냉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로는 인내력을 키우고 두뇌 개발을 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박동현(59) 9단도 이 씨의 말에 공감했다. 스스로를 장기 병에 걸린 사람이라는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장기를 배웠다. 어린 시절 영특했던 그는 장기에서도 곧 두각을 나타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장기인의 길을 걷게 됐다.

“아버지가 장기를 많이 좋아했습니다. 어릴 때 형제들을 모아놓고 기물의 움직임이나 전법·기수 등을 설명해줬습니다. 그때는 제가 장기인의 길을 걸을지 몰랐습니다. 저보다 공부를 못했던 친구들은 대기업에 들어가고 판·검사가 됐습니다. 비록 저는 장기에 빠져 이 길을 걷고 있지만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후회는 없습니다”

그는 서울지회장과 대한장기협회 고문이라는 두 가지 직책을 맡고 있었다. 그는 장기의 대중화를 위해 초등학교 방과후활동에 참여해 아이들에게 장기를 가르쳤다. 그는 어린이들에게 장기가 예상 외로 반응이 좋다고 했다. 컴퓨터 게임에 빠져있는 아이들도 금방 관심을 표하며 즐겁게 참여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