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18위 오른 세계경영 대우의 혼 ‘아직 살았다’

글로벌 18위 오른 세계경영 대우의 혼 ‘아직 살았다’
대우 계열사들, 한국경제 동맥 여전…재계 “글로벌 경영 발판 놓았다” 평가

김도현 기자(dhkim@skyedaily.com)

기사입력 2015-08-17 14:39:17

바둑 용어 중 ‘대마불사(大馬不死)’란 말이 있다. ‘큰 돌은 죽지 않는다’로 해석되는 이 말은 큰 집이 위태롭게 보일지언정 결국 살 길이 생겨 죽지 않는다는 바둑계의 유명한 격언 중 하나다. 하지만 실제 바둑에서는 때때로 대마가 패배의 원흉이 되기도 한다. 설마 죽겠느냐는 방심으로 실착 혹은 완착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대마불사란 용어는 경제계에서도 많이 사용되는 용어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대기업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논리로 ‘대마불사’란 용어가 자주 언급된 바 있다. 하지만 이 대마불사를 무색하게 만든 것이 바로 IMF사태다. 1980년대부터 이어진 경제호황의 끝에서 IMF사태를 맞이한 국민들은 처음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대우그룹이 쓰러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 심각성을 점차 인식했다. 또한 재계 전반에서도 대우그룹 해체를 타산지석 삼아 ‘문어발식 경영’을 지양하고 점차 경쟁력 있는 계열사 위주로 사업을 재편한 바 있다. 일찍부터 ‘세계경영’이란 슬로건 아래 해외진출을 활발히 한 대우그룹은 다양한 자구책을 마련해 회생의지를 불태운 바 있으나 1999년 8월 16일 주요 계열사들의 워크아웃 선언으로 해체 수순을 밟았다. 재계 2위까지 올랐던 대우그룹이 이날 사실상 해체를 의미하는 구조조정 방안이 확정되면서 운명의 날을 맞은 것이다. 공교롭게도 광복70주년 다음날인 어제(16일)는 대우그룹 해체가 본격화 된지 16주년 되는 해다. 스카이데일리가 전 세계를 무대삼아 해외에서 대한민국의 이름을 알렸던 대우그룹과 ‘세계경영’ DNA를 물려받은 과거 대우그룹 계열사 등을 통해 역사 속으로 사라진 대우그룹의 의미를 되짚어봤다.

▲ 어제(16일)는 대우그룹이 워크아웃을 선언한지 16주년 되는 날이다. 과거 ‘세계경영’이란 슬로건으로 구 공산권 국가들과 개발도상국 등을 중심으로 활발한 해외진출에 나섰던 대우그룹은 IMF 이후 정부 정책 변화로 급격한 유동성 위기를 맞은 바 있다. 이후 대우그룹은 1999년 8월 16일 구조조정 방안이 확정되고 본격적인 해체 수순을 밟았다. 사진은 대우그룹 본사가 입주했던 서울스퀘어 빌딩. 현재 이곳은 대우인터네셔널이 입주해 있다. ⓒ스카이데일리

‘세계경영’이란 슬로건 하에 전 세계를 누비다 해체를 맞은 대우그룹이 워크아웃을 선언한지 16주년(16일)을 맞았다. 당시 대우그룹을 이끌었던 김우중 회장은 한때 유럽의 주요 기업들까지 인수하면서 ‘동양의 징기즈칸’이라는 별칭까지 얻었을 정도로 주목받았었다.

하지만 해체의 운명을 맞은 대우그룹은 당대의 걸출했던 인물은 사라졌음에도 그 혼을 이은 계열사들은 그대로 남았다. 대우그룹 계열사들 중에는 다른 기업의 계열사로 편입돼 ‘대우’라는 이름을 잃은 곳도 있으나 여전히 ‘대우’라는 사명을 유지하는 업체들이 대단히 많다.

대우그룹은 IMF라는 위기를 맞아 ‘위기가 곧 기회다’며 과감한 투자를 행했지만 이 투자가 역설적으로 부메랑이 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오늘 날 재계 전반에서는 과거 대우그룹의 흥망성쇠 자체가 ‘경영 교과서’로 평가되며 남다르게 의미가 부여되고 있다.

‘해빙모드 냉전’ 발맞춰 동유럽 진출…재계 2위 올라섰던 원동력 ‘세계경영’

대우그룹은 1967년 창립된 대우실업을 모태로 성장했다. 대우는 소위 ‘한강의 기적’으로 일컫는 우리나라의 급속한 경제발전과 발맞춰 성장한 대표적인 기업이었다.

1970년대 봉제품과 섬유제품 등의 수출호조로 급격한 성장을 이뤄낸 대우는 이후 정부와 한 호흡으로 사업 규모를 늘려갔다. 정부가 주도한 경제 정책에 맞춰 잇따라 신사업을 펼친 것이다. 대우그룹의 금융·전자·중공업·자동차 등 계열사는 이 때 세워지거나 인수됐다.

▲ 지난해 10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서울대학교 교수학습개발센터에서 ‘세계경영, 제조업, 지속투자의 중요성’이란 주제로 특강을 하던 모습. 김 전 회장은 대학졸업 후 대우를 창업하고 이후 꾸준한 투자로 대우그룹을 재계 2위로 끌어올린 바 있다. [사진=뉴시스]

다방면의 계열사를 보유하게 되며 그룹으로 성장한 대우는 당시 현대·삼성·럭키금성 등과 함께 국내 4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김우중 회장은 대우의 세가 커질수록 점차 해외로 눈을 돌렸다. 이른바 김우중 특유의 혼이 들어간 ‘세계경영’의 태동이었다.

2차 세계대전으로 조성된 미국과 소련 중심의 냉전체제가 해빙 무드를 맞이한 1980년대 대우는 동유럽 시장에 뛰어들었다. 잇따라 동유럽 및 공산권 국가에 현지법인을 설립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대우는 1993년 ‘세계경영 우리기술’ 슬로건을 선포한다. 대우는 미국·독일·일본 등 글로벌 업체들이 선점하지 못한 공산권 국가들과 개발도상국 등을 중심으로 사업을 이뤄나갔다. 세계적 경쟁력을 갖고 있는 선진국 기업들과 대등한 경쟁의 깃발을 들어 올린 것이다.

동구권 국가들 역시 자본주의 체제 하에 정착하기 위한 ‘경제활성화’의 일환으로 대우의 투자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현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대우는 급격히 성장해 나갔다. 특히 대우자동차의 경우 내수보다 수출에서 더 큰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 ⓒ스카이데일리

‘빚’으로 사세확장…IMF 맞은 정부 ‘금융기관 회사채 보유 제한’ 대우 몰락의 서막

대우그룹의 세계경영이 시작된 1993년 당시 국내 기업의 해외 현지법인은 150여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대우의 세계경영이 본격화되며 다수의 기업들이 해외 현지법인을 두게 됐고 1998년 11월 기준 국내 기업의 해외 현지법인이 396개로 대폭 증가하게 됐다.

대우의 성장은 차입경영을 바탕으로 했다. 세를 확장하기 위해 대우는 회사채를 발행했고 이를 통해 얻은 자본을 바탕으로 사세를 넓혀 갔다. 그 사세로 다시 차입을 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IMF가 터지자 대우의 경영여건은 급속도로 악화됐다.

대우는 IMF라는 위기가 곧 기회라며 대규모 투자를 감행했다. 1998년 1월 쌍용자동차를 인수하는 등 사세 확장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정부는 IMF를 맞아 5대 그룹의 재무구조 개선 작업에 착수하며 ‘금융기관 회사채 보유 제한’ 정책을 내놓았다.

해당 정책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기업이 바로 대우였다. 회사채를 통해 자금을 마련하고 투자를 계속해 왔던 대우는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봉착했다. 특히 1998년은 대우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투자를 늘리겠다고 공헌한 해였다.

당시 대우는 스페인에 냉장고 공장을 설립했다. 또 우크라이나 현지 대우자동차법인에서는 공장 가동을 시작했다. 매출액만 놓고 봤을 때 대우는 전 세계 기업들 중 18위 규모를 올리며 당시 삽성그룹과 현대그룹까지 제치고 세계순위 500대기업에서 앞서 갔으나 정부의 정책이 발표되면서 자금압박에 시달리게 됐다.

▲ ⓒ스카이데일리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내몰린 대우는 삼성과의 ‘전자·자동차 빅딜’이 포함된 구조조정안을 1998년 11월 발표했다. 대우전자를 삼성에 이양하고 삼성자동차를 가져오는 방식이었다. 이듬해 4월에는 대우조선, 힐튼호텔, 쌍용자동차 등을 매각하는 2차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결국 대우는 악화된 유동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1999년 8월 16일 대우, 대우중공업, 대우전자 등 주력 계열사 12곳의 워크아웃을 일제히 선언했다.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게 된 것이다.

“시장개척 정신, 대우그룹은 경영 교과서”…재계 전반 자리 잡은 깃발 ‘글로벌 경영’

해체된 대우그룹의 계열사들 다수는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대우자동차의 경우 승용차부문이 GM에 매각됐지만 상당기간 고전을 면치 못했다. GM 측은 2011년 쉐보레와의 브랜드 통합흡수를 결의했고 지난 2011년 한국GM를 출범시키며 점차 국내 자동차 업계에 정착했다.

대우그룹의 모기업인 주식회사 대우의 무역·건설사업부는 각각 ‘대우인터네셔널’과 ‘대우건설’로 새롭게 출범됐다. 경영정상화 과정에서 몇 차례 주인이 바뀌기도 했지만 이들 기업은 여전히 대우라는 이름을 잃지 않은 상태다.

▲ 여전히 대우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사진 왼쪽부터)KDB대우증권, 대우조선해양, 대우건설 본사 전경. 전문가들은 여전히 ‘대우’라는 브랜드가 국내·외적으로 높이 평가받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스카이데일리

대우중공업에서 분할 된 대우종합기계는 두산그룹에 편입돼 두산인프라코어로 이름을 바꿔 세계 담수화 플랜트 1위를 기록하는 등 여전히 세계시장을 무대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역시 대우중공업에서 분할 돼 과거 대우 계열사 중 가장 높은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받는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최근 수조원대 적자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수주잔량 기준 세계 3위권을 유지하는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들은 여전히 해체된 대우그룹이 안타깝다고 전했다. 하지만 동시에 국내 기업들에게 유·무형의 자산을 안겨줬다고 평가했다.

재계의 한 CEO는 “대우그룹이 해체를 맞고 그야말로 산산조각 났지만 여전히 대우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곳이 적지 않다”고 지적하며 “이는 대우라는 브랜드가 국내·외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는 뜻이다”고 전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한강의 기적과 태동을 같이한 대우는 우리나라 경제사에 있어 주요한 그룹 중 하나다”고 평가하며 “대우가 다른 기업들에 비해 앞서 세계화에 대한 밑그림을 그렸고 또 대우의 해체 과정을 지켜 본 기업들이 이를 타산지석삼아 한 단계 도약하는 등 그룹사 자체가 하나의 경영교과서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