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 중 8개가 재벌…적자나도 못버리는 프로야구단

삼성·LG·한화·KT·SK 등 손실보다 홍보 효과 커…히어로즈 유일 자생 구단

김도현 기자(dhkim@skyedaily.com)

기사입력 2015-11-05 12:30:06

▲ 국내 프로야구는 국민들이 사랑하는 스포츠 중 하나다. 축구, 배구, 농구 등에 비해 관중 동원력이 강하지만 구단은 만성적자에 시달리는 상황이다. 현재 10개 구단 중 8개 구단은 대기업이, 1개 구단은 대형게임업체가 주인이다. 나머지 1개 구단만 모기업이 없는 구단이다. 사진은 4일 개장한 한국 최초의 돔구장인 고척스카이돔. ⓒ스카이데일리

영화 ‘미스터 고’는 지난 2013년 개봉했다. 수준 높은 컴퓨터기술(CG)로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됐던 이 영화는 흥행에 있어서는 참패했다.

제작비로 약 300억원이 소요된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누적관객 900만명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누적관객 133만8890명을 기록해 93억3799만원의 매출액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영화는 큰 빚을 남긴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홀로 서커스단을 운영하는 15세 중국소녀 웨이웨이(서교 扮)에게 악명 높은 프로야구 에이전트 성충수(성동일 扮)가 접근하면서 시작된다.

성충수는 서커스단의 야구하는 고릴라 ‘링링’을 한국프로야구에 데뷔시키자고 그녀를 설득하고, 돈이 필요한 그녀는 링링과 함께 황해를 건너 한국으로 왔다. 그라운드에 선 링링은 285kg의 거구에 사람의 20배에 달하는 힘으로 치는 족족 홈런을 치며 일약 프로야구의 스타로 자리 잡는다.

“야구단, 밑지는 장사”…年 700만 관중시대 ‘한국프로야구’ 만성적자

고릴라가 프로야구무대에 선 다는 것은 그야말로 영화적 상상력일 뿐이다. 남성만이 가능하다는 조항은 없지만 동물은커녕 여성조차 설 수 없는 ‘금녀의 무대’가 프로야구 그라운드다.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프로야구의 본고장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극중에서 고릴라를 그라운드에 세우겠다는 위험한 발상의 배경은 ‘돈이 된다’는 것이었다. 야구하는 고릴라를 프로 무대에 데뷔시켜 흥행을 일으키겠다는 영화적 상상력은 ‘프로는 곧 돈이다’는 흔한 명제와 결부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게 된다.

▲ 영화 ‘미스터 고’ 포스터 [사진=쇼박스]

2015년 국내 프로야구는 두산베어스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국내 프로야구는 국내 프로 스포츠 가운데 가장 사랑을 많이 받으며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우리나라 프로야구는 지난 1982년 6개 구단 체제로 출범했다. 당시 연간 관중은 144만명이었다. 하지만 올 해 프로야구는 사상 최초로 10개 구단 체제로 시작했으며 736만명의 관중을 야구장으로 불러들였다. 관중규모만 5배 이상 성장한 것이다.

2012년 류현진(LA다저스), 올해 강정호(피츠버그 파이어리츠) 등 국내프로야구 무대에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하는 선수들을 배출할 만큼 질적인 성장도 이뤄냈다. 양과 질 모두 성장한 국내 프로야구계에서 변하지 않는 고질적인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적자 상태의 야구단 재정이다.

사실 상 국내 프로야구단은 만성적자 상태다. 300억~500억원대 연간 매출을 기록하는 국내 10개 구단들은 수 억원에서 많게는 백억원대의 손실을 매년 기록하고 있다.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정규·한국시리즈 4년 연속 통합우승이라는 기록을 세운 삼성라이온즈는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단 한차례의 흑자만을 기록했다.

2010~2014년 동안 매년 424억원, 503억원, 534억원, 431억원, 511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지만 흑자를 기록한 해는 2011년이 유일하다. 당시 삼성라이온즈가 기록한 당기순이익은 9억8000만원이었다. 지난해 삼성라이온즈가 기록한 영업손실은 176억원, 당기순손실은 171억원이다.

잠실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두산베어스의 경우 삼성보다 나은 편에 속한다. 올 시즌 정규리그 3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국내 구단들 중 가장 많은 누적관중을 기록한 두산베어스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각각 277억원, 326억원, 355억원, 369억원, 371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두산은 2010~2012년 사이 연속 세 차례 흑자를 기록했다. 당기순이익이 각각 13억원, 23억원, 8억3000만원이다. 반면 적자를 기록한 2013년과 지난해에는 각각 1억4000만원, 15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맛봤다.

적자 야구단 33년 버팀목 ‘대기업’…“히어로즈, 국내 야구계 ‘뉴 패러다임’ 제시”

국내 구단의 적자 원인으로 지목되는 요인은 여러 가지다. 야구 관계자들은 200억~300억원 가량의 구단 운영비, 관객수에 비해 저렴한 입장료, 계열사에만 의존하는 광고 수입 등을 꼽았다.

야구계 관계자들은 적자의 구단들로 꾸려진 한국프로야구가 30년 이상 존속할 수 있었던 까닭으로 ‘대기업’을 꼽았다.

국내 프로야구단의 상당수가 대기업이 운영하기 때문에 손실을 입어도 운영을 지속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 10개 구단 중 8개 구단은 대기업이 운영 중이다. 삼성라이온즈, 두산베어스, SK와이번스, 한화이글스, 기아타이거즈, 롯데자이언츠, LG트윈스, KT위즈 등이다.

▲ 자료: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2015년 9월 7일 기준. [도표=최은숙] ⓒ스카이데일리

야구단의 대주주는 통상 모기업의 계열사들이다. 삼성라이온즈의 경우 2.5%의 지분을 소유한 이건희 회장(2.5%)을 필두로 삼성전자·전기·SDI·제일기획 등 삼성그룹 계열사가 70% 지분을 나눠가졌고 범삼성가인 CJ제일제당(15%), 신세계(14.5%)도 지분이 있다.

한화이글스, 롯데자이언츠, KT위즈 등도 이와 비슷한 모습이다. 한화이글스의 경우 김승연 회장(10%)과 한화그룹 계열사 3곳이 대주주다. 롯데자이언츠 역시 롯데쇼핑·롯데제과 등 롯데그룹 계열사가 지분을 보유한 상태다. 두산베어스와 SK와이번스, 기아타이거즈의 경우 각각 두산, SK텔레콤, 기아자동차가 100% 지분을 보유했다.

LG트윈스와 KT위즈의 경우 그룹의 스포츠 계열사를 통해 야구단을 운영 중이다. LG그룹은 지주사 LG가 100%의 지분을 보유한 ‘LG스포츠단’을 통해 LG트윈스와 농구팀을 운영 중이다. KT의 경우 계열사와 함께 지분을 보유한 ‘KT스포츠’를 통해 KT위즈 및 농구·e스포츠·사격·하키 팀을 운영 중이다.

대기업을 모체로 두지 않은 구단은 엔씨다이노스와 히어로즈다. 엔씨다이노스는 국내 굴지의 게임업체 NC소프트(100%)를 모체로 둬서 이 역시 기업이 운영한다. 기업자본이 전무한 구단은 히어로즈가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넥센히어로즈’로 익히 알려진 히어로즈는 지난 2008년 해체된 현대유니콘스의 선수들을 기반으로 창단됐다. 히어로즈는 이장석 대표 외 4인이 지분을 보유한 상태다. 야구단 자체가 곧 하나의 기업이다.

▲ 1982년 시작한 한국프로야구는 올해로 33년을 맞았다. 창립 당시 6개 구단은 현재 10개 구단으로 늘어났다. 프로야구는 대기업의 광고·홍보의 장이자 재벌들의 각축장으로 불리고 있다. 사진은 한국프로야구를 관리하는 한국야구위원회(KBO). ⓒ스카이데일리

히어로즈 앞에 ‘넥센’이 붙은 까닭은 넥센타이어와 체결한 네이밍스폰서십 계약 때문이다. 히어로즈는 지난 2010년 2월 넥센타이어와 메인스폰서 계약을 체결하면서 넥센히어로즈가 됐다. 창단 초기에는 ‘우리담배’가 메인스폰서를 맡아 우리히어로즈로 불렸으며, 메인스폰서를 찾지 못했던 시절에는 서두 없이 ‘히어로즈’라 불린 적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히어로즈가 국내 프로야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KBO 야구발전위원회 위원인 전용배 단국대학교 교수는 “히어로즈는 모기업 없이 야구단만으로 독자생존이 가능함을 보여주며 프로야구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고 추켜세웠다.

전 교수는 “IMF 등 경제위기 속에서 대기업이 뒷받침돼 우리나라 프로야구가 존속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출발부터 대기업의 힘에 기댔기 때문에 현재 프로야구가 재벌 간 자존심싸움과 홍보의 장이라는 인식 역시 공존한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히어로즈 야구단처럼 야구단 스스로 독자적인 성장이 가능할 수 있게 지방자치단체 등 사회전반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며 “특히 경기장을 소유한 지자체의 경우 ‘대기업 특혜 시비’를 이유로 유독 야구단에 무리한 요구와 조례 등을 내세워 인색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야구발전을 저해시키는 요인이다”고 강조했다.

日 대부업 출신 JT금융 손잡은 히어로즈 ‘논란’…“적자운영과 팬 사이 답이란 없어”

최근 히어로즈는 넥센타이어와의 계약을 종료한다고 밝히며 논란이 됐다. 계약 종료 후 일본계 금융회사와 신규 계약 가능성이 일각에서 제기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론이 악화되자 히어로즈는 5일 오전 넥센타이어와 재계약한다고 밝혔다.

히어로즈가 J트러스트와 메인스폰서십 체결을 논의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여론은 차가워졌다. J트러스트는 대부업체를 기반으로 한 일본계 금융회사다. 현재 국내에서도 JT캐피탈, JT친애저축은행, JT저축은행 등을 운영 중이다.

▲ 히어로즈 야구단은 다른 프로야구단과 달리 이장석 대표 외 4인이 지분을 보유하며 대기업 자본이 투입 안된 국내 유일 구단이다. 히어로즈 야구단은 일본계 대부업체와의 메인스폰서 체결 진행에 하려다 팬들의 반발을 샀다. 여론이 악화되자 히어로즈는 5일 넥센타이어와 계약을 연장했다. [사진=뉴시스]

팬들과 여론 일각에서는 JT 측이 현재는 제2금융권 업체지만 얼마 전까지 대부업체였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서민들의 피눈물이 담긴 돈을 받으면서까지 야구를 해야겠냐는 비난도 이어졌다. 여기에 반일감정까지 더해져 히어로즈를 향한 비판과 비난이 현재 극에 달한 상태다.

한국야구위원회(KBO) 관계자는 “히어로즈 구단 입장에서 이 같은 비난과 비판에 상당히 부담을 느끼고 있어 언급하는데 상당히 조심스럽다”며 “결국 JT와의 스폰서십 체결 여부는 구단의 의지가 가장 크게 작용할 것이란 생각에 KBO 측도 관망하는 상태다”고 전했다.

이를 바라보는 야구계는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구단 운영을 위해 자금이 필요한 것이 사실인데 마치 히어로즈가 돈만 밝히는 악덕구단의 대명사로 여겨질 것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전용배 교수는 “스포츠는 내셔널리즘과 지역주의가 개입될 수밖에 없는 특징 탓에 논란이 발생한 것 같다”며 “응원하는 팬들 입장에서 부담스러울 수 있는 메인스폰서는 결국 장기적으로 봤을 때 팬 층이 두텁지 못한 히어로즈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하지만 모기업 없이 야구단을 운영하는 히어로즈 역시 매년 적자를 기록하는 야구단 중 하나다”며 “운영과 팬 배려 등에서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부분이 많다”고 덧붙였다.

팬들과 야구계의 민심이 악화되자 5일 오전 히어로즈는 넥센타이어와 메인스폰서십 연장에 합의해 3년 계약을 체결한다고 밝히며 논란은 일단락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