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골절쯤은 애교죠”

박정일 서울바이킹스 감독은 해맑게 이야기했다. 서울바이킹스는 국내 7개뿐인 사회인 미식축구 팀이다.

미식축구는 럭비와 축구를 바탕으로 1870년대 미국에서 독자적으로 만들어진 스포츠 경기다. 공은 럭비공을 사용한다. 구성인원은 축구와 같이 11명이다. 마찬가지로 상대의 골을 공략해 승패를 가린다.

건장한 체구의 선수들이 온 몸을 감싸는 각종 보호구를 착용하고 경기에 나설 만큼 경기는 역동적으로 진행된다. 자연히 부상도 잦다. 골절쯤은 애교라며 웃어 넘겼던 박 감독이었지만 단순히 힘으로만 승부하는 경기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지능적인 경기운용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미식축구가 국내에 전래된 것은 해방 직후인 지난 1946년이다. YMCA에서 조선미식축구협회를 창립한 것이다. 1960년대 고려대·경희대·단국대·서울대·성균관대·중앙대·한양대 등에서 미식축구단이 속속 창설됐다. 현재는 그 수가 35개 대학에 달한다.

하지만 대학팀까지다.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실업구단이나 프로팀 등이 전무한 상황이다. 서울바이킹스는 단순히 대학스포츠에 머물러 있는 미식축구를 클럽화 시키기 위해 지난 2005년 창립됐다.

미식축구가 고안된 미국에서는 ‘풋볼(Football)’이라 부른다. 영국에서 풋볼은 ‘축구’를 의미하지만 미국에서는 미식축구를 의미한다. 축구를 뜻하는 미국식 영어단어는 ‘사커(Soccer)’다. 서울바이킹스에서도 풋볼이라는 단어를 더 즐겨 쓴다.

그나마 창립 초반에는 해양대학교 미식축구 선수 출신 선배들의 후원이 있었다. 소정의 금액이었지만 금전적인 지원과 유니폼 등이 지원받을 수 있었다. 팀 이름이 ‘바이킹스’가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후원이 끊어진 것은 5년 전부터다. 자연히 시간이 지날수록 여건이 어려워졌다. 선수들은 개인 사비를 모아 경기장을 빌렸고 훈련을 이어오고 있다. 선수들은 저마다 직업이 있다. 14년여의 선수생활을 마치고 올 해부터 코치직에 임명된 정인수 코치는 한약재를 수입하는 무역회사에 다니고 있다.

정 코치는 “지난해 열린 미식축구월드컵 경기를 다녀와서 한국의 풋볼을 더 발전시키고 더 좋은 환경을 선수들에게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선수들 자원은 크게 밀리지 않는데 지도자 및 코칭팀이 미국·일본·프랑스 등에 비해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서울바이킹스 선수단은 총 60명이다. 매주 일요일 진행되는 공식훈련에 참석하는 인원은 40여명 안팎이다. 1주일 6일간 직장과 가족·애인 등에게 최선을 다하고 단 하루 온종일을 투자해 미식축구에 몰입한다.

끊임없는 훈련이 성장의 발판이지만 현실적인 시간이 부족한 만큼 훈련시간 선수들의 눈빛은 달라져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고충은 있다. 주말 중 하루를 할애하는 탓에 가족들과 애인들에게 함께 할 수 없음을 설득시켜야 하는 것이다.

박정일 감독은 “집안일을 더 하겠다거나 담배를 끊는다고 하는 등 여러 가지 조건을 거는 대신 일요일마다 훈련에 참여하는 것을 허락받았다”며 “평일에 더 신경을 써야 주말에 운동에 집중하는 것을 (부인이)이해해줄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 중에서도 평일에 가족들이나 여자친구에게 더 신경을 쓰고 잘해주려는 모습을 보인다”고 귀띔했다.

삼성전자 개발직에서 근무하다 현재는 창업을 준비 중이라는 한현섭 씨(38)는 “주중엔 연습에 한계가 있으므로 주말에 호흡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며 “훈련일에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고자 토요일에는 술도 안마시게 되는 등 일요일을 중심으로 생활하게 된다”고 답했다.

서울대학교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대학원생 최성훈 씨(28) 역시 “학교 다니면서 받은 스트레스를 운동장에서 풀게 된다”며 “평소에 웨이트 운동을 통해 체력을 단련하고 있으며 운동을 하는 자체만으로도 삶의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바이킹스 선수들 대부분은 대부분 대학교 재학시절 미식축구선수로 활동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간혹 비선수 출신의 단원들이 입단하기도 하지만 체력적 한계를 버티지 못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물리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장택진씨(28)는 “대학 시절 처음 미식축구를 시작했을 때 대부분의 선수들이 체육관련 전공이었기 때문에 체력적인 부분에서 많은 한계가 느껴졌었다”며 “하지만 이후에 연습을 통해서 결국 대등해 질 때까지 운동에 빠져 살았다”고 과거의 경험을 전했다.

한협섭 씨도 큰 부상의 경험이 있다. 그는 “2008년 고대전에서 당시 89kg이었는데 120kg의 선수에게 깔려서 왼쪽어깨가 심하게 다친 경험이 있다”며 “경기를 하다보면 상당히 고통스러울 때도 많지만 또 경기에 열중하다보면 통증이 잊혀진다”고 전했다.

경기는 선수들을 쾌감에 젖게 한다. 특히 승리로 경기를 마친 후에는 고통도 기분이 좋을 정도다. 학창시절 선수로서 그라운드를 누볐던 그 시절의 감정이 되살아나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른 순간에도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그리고 그 고통이 쾌감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야 말로 진정한 미식축구의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회사원 오지석씨(38)는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간혹 내 자신을 잃고 살아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며 “하지만 나보다 한참 어린 친구들과의 경기에서 이길 때 얻는 승리의 쾌감은 더 크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미국에서 슈퍼볼을 따냈을 때 얻는 선수들의 쾌감을 우리는 변방의 슈퍼볼이지만 작은 경기를 통해서도 투영할 수 있다”며 “조직에서 하나의 나사부품이 돼 돌아간다는 느낌에서 살아있다는 활력을 경기를 통해 얻는다”고 고백했다.

서울바이킹스는 국내 사회인 미식축구팀대회에서 매년 우승을 차지할 만큼 강팀이다. 하지만 매년 열리는 한일교류전 ‘프라이드볼’에서는 번번이 고배를 마셔야 했다. 우리보다 인프라가 잘 갖춰진 일본팀의 문턱은 높기만 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지난 6월 서울대학교 대운동장에서 진행된 ‘2016 프라이드볼’에서 교류전 시작 10년만에 첫 승리를 따 낸 것이다. 상대는 일본 사회인미식축구 1부 리그 J-스타즈였다.

박빙으로 진행된 경기 막판 승기를 잡는 터치다운에 성공했고 실점을 허용할 위기에서 수비에 성공하며 9전 10기의 신화를 쓰게 됐다. 구름떼 같은 관중들이 몰린 것은 아니지만 관중석을 지켰던 미식축구팬들에게 드라마틱한 경기를 선사했다.

오지석 씨는 이 경기와 함께 3년전 열린 ‘광개토볼 사회인클럽 결승전’을 가장 인상깊은 경기로 꼽았다. 골든이글스는 같은 서울을 연고로 하는 사회인 팀이다. 프로야구로 따지면 LG트윈스와 두산베어스 같이 라이벌 관계인 팀이다.

그는 “3대1로 경기를 리드하다 동점까지 따라잡혀 경기는 연장전까지 가게 됐고 종료 직전 극적인 터치다운을 통해 결국 우승하게 됐다”며 “온 힘을 경기장에서 쏟은 후 선수들 모두가 그라운드에 쓰려졌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서울바이킹스 선수들은 ‘아시아 탑10’을 목표로 했다. 국내 최고 팀에 머무르지 않고 아시아 최고를 향해 달려가겠다는 포부를 지녔다. 선수 개개인의 실력이 향상되면서 팀 전력도 상승하고 있어 승산이 있다는 것이 박정일 감독의 분석이다. 다만 후원이 뒷받침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감독은 “현재 중국이 미식축구 육성을 위해 투자를 계속하는 분위기다”며 “한·중·일 교류전을 추진 중인데, 서울바이킹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되고 또 도전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편 서울바이킹스팀은 오는 28일 ‘KNFL(Korea National Football League) 사회인리그 광개토볼 ’ 대회에 참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