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법 제50조에 따라 입영할 것을 통지합니다”

명령은 단출했다. 아무리 국민의 의무라지만 통지서를 받아들면 으레 짜증이 솟구치기 마련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제대한지 한참이지만 이렇게 명령서가 손에 쥐어지면 정해진 날에 반드시 맞춰 가야한다. 도대체 병역법 50조가 무엇이기에 하는 생각이 또 든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번 찾아봤다. 조항의 내용은 간단했다. 각 지방병무청장은 병력동원소집대상자로 지정된 사람에 대해 병력동원훈련소집을 하며 해당 통지서를 받은 이는 지정된 일시·장소에 입영해야한다는 단순한 원칙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입영’이라는 말이 절대적 명령으로 다가왔다.

기자가 받은 통지서는 동원훈련 통지서다. 동원훈련은 장교·부사관 전역 후 1~6년차, 병사 1~4년차 등을 대상으로 실시된다. 기자는 2013년에 전역해 올해가 전역 4년차다. 그런 게 문제가 아니다. 2박 3일간 입영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사실 못내 싫었다. 장소는 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65사단, 즉 경기도 연천이다.

기자가 거주하는 곳은 경기도 안산시다. 우선 교통편을 고민했다. 병무청에서 제공하는 버스는 무료다. 하지만 안산에는 정차하지 않는다. 인천 계양구 롯데마트 인근 공영주차장으로 7시 30분까지 가야한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대중교통으로 1시간 52분이 걸린다고 돼 있다. 최소 안산역에서 오전 5시 40분 전에 지하철을 타야했다. 하지만 첫차는 오전 6시 1분이다. 불가능했다. 무료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택시를 타고 이동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소집일 당일 기자는 자가용을 타고 연천으로 향했다. 내비게이션은 경수산업도로와 서울외곽순환도로를 거쳐 의정부부터는 계속 북진하는 경로를 안내했다. 최적의 경로였음에도 최악의 교통난은 피할 수 없었다. 더구나 출근시간과 겹쳐 고역이었다.

그렇게 장장 3시간을 달려 훈련장에 도착했다. 포장·비포장도로를 넘나들며 118km를 이동했다. 기름 값만 1만5000원이 소요됐고 통행료로 5300원을 지불했다. 뒤이어 출석확인을 했고 입소식을 통해 2박 3일간의 입영생활이 시작됐다.

입소식을 마치고 생활관에서 쉬고 있는데 현역 병사가 들어왔다. 동원훈련 보상비 명세 확인과 지급계좌번호를 받기 위해서란다. 기자 이름 석 자 옆에 ‘보상금 3만9000원’이란 글자가 적혀 있었다.

일당인가 싶어 물었더니 ‘3일간 총 보상금’이란다. 한참 모자란다 싶어 상세내용을 들춰봤다. △교통비(왕복) 2만3000원 △식비 6000원 △보상비 1만원 등 총 3만9000원이었다. 당최 납득할 수가 없는 그들만의 계산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왕복 기름 값만 3만원인데 지급된 교통비는 2만3000원에 불과했다. 게다가 버스를 탄 예비군들에게는 이마저도 지급되지 않았다. 무료가 아니었던 셈이다. 3일간의 노고를 보상한다는 1만원의 보상비 역시 푼돈에 지나지 않았다. 3일 동안 찬데서 자고 싶을 때 못자고, 씻고 싶을 때 못 씻으며 수고한 대가치곤 너무 작다 싶었다.

“요새 너희 얼마 받니”

결국 현역 병사를 붙잡고 물었다. 병장이었던 그는 21만6000원이 월급이라 했다. 일당으로 계산하면 7200원 꼴이었다. 일과(평일)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1만원 조금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 기자의 질문 한 번에 생활관이 술렁였다. 왕년의 월급을 논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일부는 격앙했다.

예비군 김 모씨(27)는 “법에는 현역에 준해 복무하도록 하면서 왜 급여는 현역병 수준보다도 한참 못 미치느냐”고 볼멘소리를 냈다. 아니 사실 따져 물었다. 최소한 현역병 수준은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의 질문을 받은 현역병도 멋쩍은 미소만을 지을 뿐이었다.

여단장의 안보교육이 첫 훈련과목이었다. 안보관으로 모이라는 공지가 현역병들을 통해 전달됐다. 시간을 명시했지만 이를 제대로 지키는 예비군은 절반 이하에 불과했다. 어쩜 당연했다. 이상하게 예비군훈련장에서 남자들의 발걸음은 천근만근이다.

“여러분, 경제력과 안보는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풍부한 광물자원을 자랑했던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크림반도를 뺏기자 경제가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여단장은 과거 우크라이나 파병경력이 있었다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동시에 이를 바탕으로 철저한 대북태세 및 굳건한 안보의식을 강조했다. 최근 일어난 말레이시아 김정남 독극물테러 등을 지적하며 안보위협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교육내용 자체는 흥미로웠고 알찼다.

하지만 예비군들의 눈은 반쯤 풀려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고개를 속속 떨구기 시작했다. 제법 교육을 경청했던 기자를 이해할 수 없었는지 옆자리의 예비군이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아저씨, 얼마 받지도 못하는데 굳이 열심히 들을 필요 있겠어요?”

그의 눈에선 여단장이 강조한 ‘전투의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땅에 떨어진 예비군들의 의지력이 단순히 3300원에 불과한 일당 때문이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으나 훈련 내내 예비군들은 세상만사가 귀찮은 표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둘째 날 전술훈련 때도 마찬가지였으며 퇴소 때까지 변하지 않았다. 심지어 퇴소 때도 거친 말을 내뱉으며 떠나는 이들까지 보일 정도였다. 예비군들의 전투력유지와 전투준비태세 완비를 위한 훈련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예비군들에겐 동기가 없었다. 훈련이란 ‘어쩔 수 없이 때워야 하는 시간’에 불과했다. 지시를 어기고 담뱃불을 당기기가 일쑤였다. 일부 예비군은 이 같은 모습을 보면서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최 모씨(27)는 “80%의 병력을 예비군으로 채워야 하는 동원사단이 어떻게 전쟁을 하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며 “군은 훈련을 충실히 수행하지 않는 예비군들을 질타하지만 정작 소중한 전투자원이라 하면서도 홀대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고 목청을 높혔다.

어느덧 퇴소 날이 됐다. 물자를 반납하고 짐을 꾸리느라 분주했다. 자연스럽게 귀가방법에 대한 얘기도 나왔다. 지휘관들이 ‘입영할 때처럼 차가 인천에서만 설 것’이라 했다. 예비군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기자와 마찬가지로 안산시에 거주한다는 예비군 조 모씨(27)는 “안산에 사는 사람을 인천에 내리라고 하냐”면서 “이런 식으로 하면 앞으로도 예비군훈련을 기피하거나 어떻게 해서든지 훈련에서 빠지기 위해 기를 쓰게 될 것이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이어 “대한민국 예비군들은 전쟁이 벌어져 동원 영장이 나오면 과연 몇이나 응할지 궁금하다. 아마 나부터도 동원을 피해 도망갈 거 같다. 이런 심정은 다른 예비군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자발적 충성심이 약한 예비군들의 태도가 비단 당사자들의 책임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전쟁이 나면 예비군은 전쟁에 동원되는 상비군이 된다. 이들의 자발적 충성심이 고양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시간 때우기식 훈련을 하는 것 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치열한 고민이 필요한 대목이다. 기자도 자발적으로 꼭 가고 싶은 동원훈련을 하고 싶다. [현장 속으로 / 1인칭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