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아줌마지만 5천원도 무서워요”

아랑졸, 서초구 방배동 전업주부 골프모임

김진수 기자(jinsuac@skyedaily.com)

기사입력 2011-09-14 00:30:42

▲ 아랑졸 월례회

90년대까지만 해도 골프는 부자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만 즐기는 특별한 운동으로 치부됐다. 골프를 치는 층과 치지 않는 층간에는 막연한 벽이 그래서 있었다. 하지만 골프여제 박세리의 화려한 국제무대 제패와 이어지는 태극 여전사들의 잇따른 미 LPGA 점령은 한국의 골프문화를 대중운동으로 급속하게 확산시켰다. 필드는 못나가도 매일 연습장을 찾는 ‘오니-트레이닝’ 매니아들이 늘어났고, 이에 부응해 스크린 골프가 인기 상종가를 누리면서 전국적인 붐을 탓다.

‘아랑졸’은 서초구 방배동에 사는 전업주부들의 골프모임이다. 언뜻 보기에 부자 아줌마들의 화려한 모임 같지만 검소한 방식으로 운동을 즐기는 평범한 아주머니들만이 모였다. 골프가 대중화 되기 시작하면서 한사람, 두사람 연습장에서 만난 동네 선후배나 친구들이기에 자연스럽게 결성돼 격의 없이 모임을 한다.

모임 이름도 그래서 재미있다. ‘아랑졸띠’는 본래 ‘알아두면 좋은 곳’이라는 제주도 방언이다. 아랑졸띠에서 마지작 ‘띠’자를 빼면 ‘알아두면 좋다’는 의미로 의역이 가능해 진다. 서로 알아두면 좋은 사람들 모임이 바로 아랑졸이다.

총 8명의 아랑졸 회원들은 언니 동생하면서 알아두면 좋은 막역한 사이가 됐다. 한달에 한번 아랑졸 라운딩을 하면서 우의를 돈독히 한다. 라운딩에 목숨 걸기 보다 차를 타고 왕복하는 시간과 라운딩 내내 갖는 시간들 속에서 여유를 갖고자 하는 그녀들이다. 푸짐한 ‘수다상’을 차렸다고나 할까. 이런 저런 구수한 입담과 집안 얘기에 서로가 서로의 스트레스를 확 날려버려 알아두면 꼭 좋은 아랑졸만의 그녀들이 됐다.

최고 연배는 55세이고, 가장 적은 귀염둥이는 45세다. 10년지기는 친구라고 하지만 여성들은 한두살 차이에도 언니 동생이 깍듯해 10년 연하는 언니들에게 귀여움을 떨어야 해서 귀염둥이가 됐다.

하지만 라운딩에 들어가 어드레스를 시작하고 공을 필드에 날릴 순간 만큼은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다. 8명중 5명은 확실한 싱글족(79타 이하)이다. 이중 최저타가 73타를 치는 아랑졸의 골프여제가 라운딩 분위기를 진지하게 압도한다. 그녀들의 집중력은 남자 싱글족 이상으로 멋지면서 차분하다. 폼이 프로못지 않게 근사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3명은 보기 플레이를 간신히 하면서 가끔은 마의 능선인 백개를 넘나들어 골프 스트레스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소위 준 ‘백돌이’다.

아랑졸 회원들은 검소하기 짝이 없다. 누가 잘살건 못살건 철저하게 ‘더치페이’ 방식을 따르기 때문에 부자라고 티냈나가는 혼줄이 난다. 주중회원권들이 있는 6명은 한번 라운딩에 14만원 정도 내면 되고, 없는 회원은 22만원 정도를 내야 한다.

밥을 먹을 때도 철저하다. 골프장 인근 1인분에 5천원 정도 하는 식당만 고집한다. 전업주부들의 알뜰함이 배어 있는 탓이지만 히스토리가 있다. 8명 모두 남편들이 어렵게 고생해가며 자수성가들을 한 가정이어서 선뜻 자기가 쏜다는 말을 하는 회원들이 없다. 이런 면에서 보면 ‘무슨 모임이 그래’라고 할 법한 냉랭함이 묻어난다. 그런데 그것이 더 우정을 깊게 했다고 쌀쌀한 우정을 과시한다.

“모임은 부담이 없어야 지요. 서로가 좋아하면 그만인데, 계산을 정확하게 안하면 그것이 무너질 수 있어요. 골프는 서로를 좋아할 수 있는 운동이지만 돈도 많이 들어가는 운동이다 보니 계산은 냉랭하네요”(웃음)

나이 계급장으로 중간 정도 되는 한 회원의 설명이다. 이 회원은 모임의 여론을 리드할 만큼 사랑방 역할을 곧잘 한다. 그래서 정보통, 안테나라는 별명까지 듣는다. 모임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한다.

아랑졸은 솔직한 더치페이로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다. ‘냉정한 우정’이 더 깊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까 아니면 아주머니들이 지독하네라고 할까. 대분은 후자라고 애기들을 하는데 개의치 않는 범상함들이 있다. 라운딩 당일 운전을 한 회원(1일 기사)에게는 2~3만원을 반드시 챙겨주는 에티켓을 이 모임은 절대적으로 지킨다.

아랑졸 회원들의 골프옷은 화려하다. 하지만 남대문표, 동대문표가 거의 주류를 이룬다. 모임 회원들 대부분이 소위 말하는 강남의 재력가 범주에 들어가지만 알뜰하기로는 흥부도 울고 갈 정도로 가난한 모양새다. 100억대의 재력가 회원도 있지만 그래서 티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회원들은 골프로 뭉쳤지만 이런저런 봉사활동도 많이 해서 좀 특이하다. 지역 주민을 위한 일에 발벗고 나서는 것은 물론이고 환경이나 거리질서 등의 대민봉사와 청소년 교육 등에 관심을 갖고 틈틈이 봉사활동을 한다. 소위 말하는 강남 아줌마들이지만 그런 내색들을 하지 않는 특유의 겸손함들을 모두 지녔다. 마음으로 소통하는 대화들로 서로를 이해하고 잘 위로도 해준다.

최근 아랑졸 모임은 잠시 쉬고 있다. 3명이나 되는 회원의 자녀가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이기 때문이다. 수능이 코앞에 다가와 이들 회원들은 아이들에게 전념해야 하는 ‘전시상황’에 있다. 이들은 하루 24시간이 짧을 정도로 수능정보를 얻기 위해 뛰고 또 뛴다. 3600여가지나 되는 전형정보를 엄선하고 공부하는데 정신이 없어 라운딩은 커녕 연습장도 끊었다. 3명이 이런 전쟁상황에 들어가자 다른 5명은 자기들만 나가도 되지만 잠시 쉬어주는 아량을 베풀어 주고 있다.

가장 하고 싶은 것을 참으면 다른 부대적인 것도 즐거운 법이다. 그래서 그녀들은 라운딩을 참는 것도 인내의 즐거움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내년 4월 오픈시즌에 아랑졸 회원들의 검소하지만 화려한 옷맵시가 골프장을 알록달록 단장할 때 그녀들은 더 즐겁게 운동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라운딩 하는 횟수만큼 봉사횟수도 맞추어 가는 그녀들의 티나지 않는 골프사랑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