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이상의 중장년층은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라는 광고계의 전무후무한 카피를 잊지 못한다.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金星社, Goldstar)가 만든 전자제품들은 광고카피처럼 과거 국민들 사이에 튼튼하고 오래쓰기로 정평이 나 있는 품목들이 즐비했다.

 

전자제품은 곧 금성이라고 할 만큼 삼성전자는 당시 경쟁에서 한참 밀리기도 했다. 금성사는 이처럼 한국 전자업계의 간판업체로 굳건히 자리매김했다. 전자업계의 대표주자 답게 금성사는 ‘국내 최초’ 제품을 무던히도 많이 쏟아냈다. 진공관 라디오, 선풍기, 냉장고, 흑백 텔레비전, 에어컨 등에서 국산 첫 작품의 브랜드는 단연 골드스타였다. 전자산업의 역사는 곧 금성사의 역사와 궤를 같이해 왔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금성사는 1995년 통신기기 생산업체인 금성통신(주)과 통합해 LG전자(주)로 오늘의 닻을 올린다. 이후 LG전자는 골드스타의 역사에 걸맞게 그 브랜드를 전 세계에 알리는 전자와 IT업체 역사를 새롭게 써 왔다.

 

한국형 디지털TV, 세계 최초 동기·비동기 겸용 IMT-2000 휴대폰, 193cm(76inch) PDP TV, 미국 CDMA 휴대폰 시장 점유율 1위, 세계 최대 일체형 140cm(55inch) LCD TV, 세계 최초 지상파 DMB폰과 DMB 노트북, 259cm(102inch) PDP TV, ‘월드폰’ 단독 공급업체, 드럼세탁기 판매 부문(5년 연속) 1위, 세계 첫 핸드폰용 블루투스 헤드셋 등이 LG전자의 최근 영광들이다.

 

이런 LG전자가 요즈음 여의도증권가를 가히 광풍이 몰아치듯 뒤흔들고 있다. 이른바 대규모 유상증자 후폭풍에 따른 소용돌이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패닉상황까지 연출되고 있을 정도로 충격이 만만치 않다.

 

유상증자 규모가 무려 1조621억원에 달해 온갖 추측이 여의도 증권가에서 난무하고 있다. 실제로 유동자금 1조원을 수혈하고자 하는 것 자체로 회사가 심상치 않은 상황임을 웅변하고 말았다. 스마트폰 실적 부진과 경기불황에 따른 TV 수요 감소가 가장 큰 위기의 원인으로 진단되고 있다.

 

특히 휴대전화가 문제다. LG전자의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4분기 -7.7%, 올 1분기 -3.5%, 2분기 -1.7%로 적자상태에서 조금씩 개선되는 추세를 보여 왔으나 올 3분기 -5%로 다시 반전했다. 주력 사업인 휴대전화 부문에서 현금이 들어오지 않음에 따라 재무건전성에 영향을 주는 상황이다.

 

결국 회사채 수혈 카드가 만만치 않자 끝내 천문학적 유상증자 카드가 나왔다. 증자발표  당일 LG전자 1조4180억원 등 그룹 전 계열사의 시가총액이 하루 만에 무려 4조3750억원이나 증발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3일 LG전자 주가는 13.73%(9800원) 급락한 6만1600원으로 마감했다. 시가총액이 이날 하루 동안 10조3280억 원에서 8조9100억 원으로 쪼그라든 것이다. 4일에도 LG전자 주가는 코스피가 58.45포인트(3.13%) 폭등한 것과는 달리 역주행 했다. 전날보다 0.81%(500원) 내린 6만1100원에 거래를 마쳤다. 52주 최고가 12만6500원 보다 51.70% 이상 빠진 주가라는 점에서 투자자들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또한  LG전자의 신용등급은 3대 국제 신용기관에서 모두 하향 조정됐다. 가장 먼저 무디스가 ‘Baa2 안정적’에서 ‘Baa2 부정적’으로 낮췄고, 이어 S&P가 장기신용등급을 ‘BBB’에서 ‘BBB-’로 하향 조정했다. 영국 신용평가사 피치는 LG전자의 외국환과 자국환 표시 회사채 신용등급 전망을 ‘BBB 안정적’에서 ‘BBB 부정적’으로 떨어뜨렸다.

 

LG전자가 이번 유상증자를 통해 스마트폰 등 사업부진을 털고 과거의 전자업계 영광을 재현할 수 있다면 지금의 위기는 기회요인이다. 하지만 그것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데 우려가 앞선다.

 

특히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절대강자 내지 1위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는 2진법만이 통한다. 2등과 3등은 ‘무의미한 성적표’라는 것이며, 생존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결국 글로벌 1위로 도약하고 있는 삼성전자와의 스마트폰 대회전에서 승리하지 않으면 LG전자의 미래는 안타깝게도 가늠하기 어렵다.

 

애널리스트들은 대체로 내년 2분기를 고비(휴대전화 흑자전환)로 보고 있다. 전체 휴대전화 판매량 중 스마트폰 비중이 30%를 넘어서는 시점과 분기당 스마트폰 판매 대수가 700만~800만대에 진입하는 시기가 내년 2분기라는 것이다. 4~6개월 남짓한 기간에 LG전자의 미래가 엇갈리게 됐다.

 

유럽여행을 하다보면 프랑스, 이탈리아 등 주요 국가의 아파트에는 LG에어컨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LG는 이미 글로벌 브랜드가 됐다. 루브르박물관에도 대형에어콘이 LG제품이다. LG브랜드는 이처럼 한국인들의 자긍심과 함께 숨을 쉬고 있다.

 

금성사 시절에는 문명의 이기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남겼고, 최근에는 글로벌 한국상표라는 자긍심을 심어 준 LG의 미래가 위험하게 방치돼서는 안 될 듯 싶다. 이는 특정 기업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삼성전자와의 물러설 수 없는 한판승부를 벌인다고 해도 양사가 함께 건재해 대한민국 브랜드를 호령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