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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흥부전’을 다 알 것이다. 그러나 막상 ‘흥부전’을 읽어 보았느냐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고개를 젓는다. 여기저기서 대충 들어 개략은 알지만 세세한 내용은 모르는 사람이 다반사다.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흥부는 ‘알바 왕’이었다. 아홉 명의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날품팔이부터 짚신장수까지 다양한 알바를 한다.
하지만 그 많은 자녀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워지자 중대 결심을 한다. 관아에서 모집하는 매품팔이에 도전한다. 돈 깨나 있는 양반 죄수 대신 곤장을 맞고, 맞은 수대로 돈을 버는 그야말로 ‘몸으로 때우는’ 날품팔이 알바다. 특별한 기술이나 자격증이 필요한 것이 아니니 흥부는 흔쾌히 승낙하고 선불까지 다섯 냥이나 받는다.
아뿔싸.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 속담처럼 큰 수익이 보장된 흥부의 매품팔이 알바는 좌절된다. 나라의 큰 경사로 대사면령이 내려져 살인범 빼고는 모두 풀어주라는 어명이 하달된 것. 한마디로 알바거리가 날아간 셈이다. 흥부는 “나는 매를 맞아야만 살 수 있다”고 하소연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를 때리지도 돈을 주지도 않았다.
조선시대 직업 중에 ‘행자곡비(行者哭婢)’도 있다. 장례 때 상제를 따라가던 사내종이 행자이고, 곡을 하며 따라가던 계집종을 곡비라 한다. 곡비는 남의 슬픔을 대신해 “아이고 아이고” 하면서 서글프게 울어주는 알바다. 궁궐에 상이 나면 궁인이, 사대부는 노비 중에 선택했으나 여의치 않을 때는 시전(市廛)의 전문 곡비를 채용해 쓰기도 했다.
현대판 곡비가 나타났다. 유엔난민기구(UNHCR) 친선대사로 활동하는 배우 정우성이 이태원 참사 현장을 찾은 지난달 15일 50대 여성과 10대 아들이 유족이라며 슬피 울어 정우성이 깜빡 속은 사건이 일어났다. 누군가 “유가족인데 손이라도 한 번 잡아주시죠”하고 권하자 정우성은 진짜 유족인 줄 알고 대성통곡하는 이들을 다독인다.
주변에 있던 한 독지가가 이들을 인근 식당에 데려가 식사를 대접하고 옷과 얼마의 현금까지 준 모양이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더니, 모자(母子)는 유족 흉내를 낸 가짜임이 밝혀졌다. 경찰서에서 이들은 “배가 고프고 돈이 없어서 그랬다”고 진술했다. 곡비를 흉내 내 밥 한 끼 얻어먹었다가 경찰 조사까지 받은 이들을 보니 왠지 흥부 신세가 떠오른다. 조정진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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