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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물러가면서 산천의 골격이 제대로 드러나고 있다. 돌과 바위를 구경하기 좋은 계절이다.
암석에는 수억 년 지구의 신비가 살아 숨 쉬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던 유네스코가 지구의 스토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2015년부터 공식적으로 세계지질공원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경상북도 청송은 한국에 단 4곳뿐인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중 하나로 뛰어난 기암 자원을 보유한 곳이다. 주왕산·청송꽃돌·법수도석·탄산약수·공룡발자국·백석탄·얼음골… 이름만 들어도 진기하고 신기하게 느껴지는 장소가 여러 곳이다. 다이아몬드가 암석의 왕이라면 청송은 한반도의 다이아몬드라 부를 만하다.
당신이 선 곳 어디라도 유네스코
‘청송세계지질공원’이라고 해서 무슨 울타리를 막아놓고 입장료를 받는 게 아니다. 청송에서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드넓은 자연이 다 지질공원이다. 아무 데나 차를 세워도 다 명소에 도착한 것이다. 청송에서는 드라이브만으로도 지질관광에 나선 것이다.
계보 있게 돌 구경을 하고 싶다면 청송 지질 트레일을 이용할 수 있다. 이곳 지질 트레일은 크게 세 구역으로 구분된다. 주왕산 방면, 청송자연휴양림 그리고 신성계곡 트레일이 그것이다.
신성계곡 녹색길 트레일의 시작점은 방호정 감입곡류천이다. 민속문화재 ‘방호정’은 조선 중기 학자 조준도 선생이 어머니의 묘가 내려다보이는 신성계곡 절벽 위에 지은 정자다.
방호정이 자리한 절벽은 사선의 줄무늬가 돋보이는 기암으로 바람과 물길의 합작품이다. 이곳은 긴 세월 퇴적물이 쌓이고 쌓여 땅 밑으로 가라앉으면서 기초가 닦였다.
세월이 흘러 갑자기 등장한 지각변동이 지층을 들어 올렸고, 솟아오른 땅은 멋대로 기울다가 비스듬한 기울기로 멈춰 섰다. 그리고 다시 그 위로 수천 수만 세월의 더께가 얹히면서 지금과 같은 절경을 이루었다.
방호정 건너편에는 신성리 공룡 발자국 화석지가 있다. 공룡 발자국은 우연한 기회에 발견됐다. 2003년 태풍 매미로 일대에 산사태가 나면서 단층 하나가 벗겨져 나가는 일이 있었다. 이때 사람들의 눈에 희미한 뭔가가 나타났으니 그 밑에 납작 깔려 있던 공룡 발자국 화석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공룡 발자국은 두 발로 걸었는지 네 발로 걸었는지에 따라 크게 2족과 4족 보행으로 나뉜다. 또 발자국 모양에 따라 새 발자국을 닮은 조각류, 발가락 끝이 삼지창처럼 뾰족하게 갈라진 수각류, 발가락 구조가 보이지 않는 둥근 모양의 용각류로 구분된다.
청송에서는 조각류·수각류·용각류 3종이 다 발견되었다. 오래전 공룡이 지구의 주인이었을 적 청송 일대는 늪이었다. 공룡들은 늪의 진흙 속에 깊은 발자국을 남겼고 그대로 굳은 땅은 세월이 흘러 바위가 되었다. 진흙이 바위로 변한 세월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으랴.
방호정·만안자암·백석탄 잇는 계곡 길
천상의 병풍, 만안자암 단애는 길안천을 따라 형성된 붉은 절벽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이 절벽은 중생대 백악기에 해당하는 1억2000만 년 전에 형성된 퇴적암층이다. 암석에 포함된 철분이 공기 중의 산소와 만나면서 붉은빛을 띠게 되었다고 한다.
이상하다. 퇴적암층이라는데 층리 같은 퇴적암 구조가 관찰되지는 않는다. 이 역시 바람의 조화일 것이다. 자연이 스푸마토 기법으로 연흔을 가리고 층리를 뭉갰으니 더 따지지 말 일이다.
백석탄은 신성계곡 가득 펼쳐진 하얀 돌이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자연이 백묘법으로써 완성한 그림이다. 그림 같은 자연학습장이다. 이곳에서는 포트홀(돌개구멍)이라는 신비한 현상이 관찰된다. 작은 항아리를 닮은 포트홀에 귀를 갖다 대면 자연의 숨소리가 들린다. 계곡은 바다의 고래처럼 이곳을 통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쉰다.
한편 유네스코는 전 세계 46개국 177곳을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하고 있다. 한국은 총 4곳이 지질공원 인증을 받았다. 청송 외에 제주도·무등산·한탄강이 포함되어 있다.
야송 선생의 혼이 살아 있는 군립미술관
2005년 청송군 신촌리에 개관한 청송군립야송미술관은 지역 출신 화가인 야송 이원좌 화백의 그림 수백 점을 소장 전시하고 있다.
청송군 파천면이 고향인 야송 이원좌(1939~2019) 선생은 ‘들판의 소나무’라는 호처럼 수묵산수화 계의 야인으로 통하는 분이다. 선생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올곧게 그림에 정진하여 특유의 미학적 성취를 이뤄냈다.
서울 정도 600년을 기념해 제작된 ‘청량대운도’는 48m가 넘는 대작으로 한 번에 시야에 담기 어려울 만큼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한다. 스케일도 스케일이지만 그림에 담긴 영험한 분위기가 보는 이를 전율케 한다. 이에 좋은 기운을 받기 위해 이 그림을 보러 오는 이가 적지 않다.
한편 군립청송야송미술관은 폐교됐던 신촌초등학교를 개보수하여 미술관으로 재탄생시킨 곳이다. 초대관장을 지낸 야송 선생이 이곳에서 여생을 보내며 작품 활동에 몰두했다.
현재는 지역 화단의 거점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다양한 기획전과 프로그램을 통해 청송 시민의 문화 기지로 거듭나고 있다.
무꾸 한 뚝배기 하실래예?
청정 지역 청송은 좋은 먹거리가 풍성하다. ‘농가맛집 무꾸’는 직접 재배한 식재료를 통해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대를 이어 무시래기 요리를 선보이는 집이다. 무꾸란 무를 가리키는 경북지역 사투리다.
주메뉴는 시래기국과 시래기밥이지만 반찬으로 나오는 섞박지를 빼놓고 이 집 음식을 논할 수 없다. 맛이 시원하고 칼칼한 게 죽은 식욕도 살려낼 기세다. 이 집에서는 시래기를 이용한 요리는 거의 맛볼 수 있는데 심지어 시래기부침개도 상에 오른다.
주류로는 ‘ABC막걸리’와 ‘ABC하이볼’이 있다. ABC란 사과·비트·당근의 영자 머리글자로 보통은 집에서 주스로 만들어 먹는 재료들이다. 몸에 좋은 재료로 만들었으니 술맛도 좋을 터였다. 이때만큼은 술을 먹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안주로는 2시간가량 항아리에서 구운 항아리바베큐 요리가 있다. 잘 구워진 돼지고기를 채소에 싸서 먹는다. 반찬 하나하나가 정갈하고 맛이 깊어 배불리 먹어도 속이 편하다. 다만 시골 동네에 위치하다 보니 식당을 찾아가는 길목이 협소하다. 단체관광 손님을 받기는 어려워 보인다.
청송군은 넓기도 넓지만 명소가 곳곳에 산재해 있어서 대중교통으로 돌아보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딱히 투어버스도 없다 보니 자가용으로 둘러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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