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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병장 제대를 앞두고 서북 도서에서 훈련한 적이 있다. 한·미연합훈련도 있었고 전군 합동 훈련도 많던 시절이었다. 물안개가 없는 밤에 근무를 서다 보면 아스라한 은하수 별빛이 쏟아진다. 불빛 없는 내륙보다 선명하진 않아도 운 좋게 해안가에서 휘황찬란한 별빛이 제대로 쏟아지는 날이면 밤 근무가 즐거웠다. 저 멀리 드문드문 보이는 북한 해안 마을의 불빛도 이채로웠다. 남쪽으로는 육지와 맞닿은 해안선에 촘촘히 박힌 불빛이 마치 크리스마스트리 같았다.
비교적 별을 좋아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 신문을 돌려 천체망원경을 샀다. 76년 만에 한 번씩 태양계를 찾아오는 핼리혜성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가득 찼을 무렵이다. 당시 3만5000원이나 했던 값비싼 반사 망원경을 사고 보니 혜성의 고도가 이미 10도 아래로 낮아졌다. 지평선 구경하기 어려웠던 도심 변두리여서 꿈을 접어야 했다.
남반구에 갔을 때도 생애 처음으로 남십자성을 눈으로 직접 보겠다는 소박한 꿈이 있었다. 지금도 웬만한 별자리는 외운다. 겨울철에 보이는 오리온자리 삼태성과 베텔·리겔. 그 왼쪽 아래 가장 밝은 별 시리우스. 맨눈으로 관측되는 몇 안 되는 성단인 플레이아데스. 내 유튜브 알고리듬에는 별에 관한 영상이 자주 뜬다. 별에 관해 내가 떠올리는 이미지는 여느 사람들과 다름없이 대체로 좋은 편이었다.
얼마 전 우연히 군 장성에 관한 유튜브 쇼츠를 시청했다. ‘포스타(사성장군)가 되면 벌어지는 엄청난 일들’이라는 제목의 영상은 군에서 장성으로 진급한, 소위 ‘별을 단’ 장군들, 그중에서도 별 4개를 단 대장급 장성에게 주어지는 특혜에 관한 내용이었다. 하늘의 별 못지않게 군인 계급으로서 별은 개인에게 영예이자 국가와 국민에게도 큰 상징성을 갖는다.
그런데 댓글에서 반전이 잇따랐다. 미처 예상 못 한 댓글들이 줄지은 것이다. 공교롭게도 포스타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비리를 숨겼고 상관에게 아첨했겠냐는 댓글들이 꼬리를 물었다. 군인이 아닌 이들이 장성을 바라보는 두 가지 상반된 관점이 단적으로 드러난 사례가 아닐지 짐작하게 했다.
‘ki2***’라는 유저는 ‘이러니 사고 나도 숨길 수밖에 없겠구나. 진급과 생계가 걸려 있으니까’라고 비아냥댔고, 유튜브 유저 ‘isu***’도 ‘군 생활 중 징계받으면 대장 진급은 물 건너가니 무조건 숨기고 조작하고 은폐하는 비리가 생긴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TV-h***’는 ‘무슨 짓을 당해도 숨기려고만 한다’고 했고, ‘yo7***’는 ‘저러니 비리나 사고를 감추려고 한다’, ‘bob***’는 ‘저러니 사건 덮으려는 중대장이 많았구나’라고 꼬집었다.
‘rz2***’는 ‘대장들은 얼마나 많은 군 문제를 숨겨 왔을까’라고 의혹의 활 시위를 당겼고 ‘vh2***’는 ‘별 4개를 다는 동안에 무슨 일이든 다 숨겼을 게 확실하다. 군필이라면 알 것이다. 사건·사고가 단 한 번도 없다? 말이 안 된다. 무조건 은폐한 것이다’고 추정했다. ‘tt7***’도 ‘별 네 개를 만들기 위해 부대 내 사건·사고가 터지면 숨기기 급급한 것부터 잘못됐다’고 일침을 가했다.
승진에서 제외되는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부하를 위하는 군인정신에 대해 언급한 유저들도 제법 많았다.
‘zz9***’는 ‘승승장구하는 대장은 필요 없다. 때로는 실수·감봉당하고 부하를 위해 징계당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오로지 승진 위해 부하들 갈구고(괴롭히고) 상관에게만 잘 보이려 올라간 똥별들이 지금 군대를 망쳤다’고 직격했다. ‘bs3***’는 ‘실수 한 번 안 겪은 장군은 위험하다’고 했고, ‘uo3***’은 ‘상처가 없는 사람이 과연 정상적인가, 이건 장성을 길들이려는 기득권들의 만행’이라고 통탄했다. ‘user***’는 ‘일이 안 나면 좋지만 사람 모인 곳에 사고 났다고 징계 대상 되면 안 된다. 사고가 났을 때 잘 수습하면 감점 요인이 돼선 안 된다’고 거들었다.
흥미로운 댓글들을 유심히 살펴보다 보니 불현듯 우리는 존경할 만한 군인을 얼마나 가졌는지 떠올려 보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결과지상주의 관점에만 매몰돼 계급에만 집착할 뿐 군인의 본분을 간과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진정한 군인정신은 계급과 상관없는데도 말이다.
지난 1년간 5·18 당시 북한이 개입했는지를 추적하는 기사를 쓰면서 장성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뀐 걸 스스로 느낀다. 군인을 계급으로만 평가하는 국민의 무지와 편견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생각했던 시기였다. 장성으로 예편하지 않았어도 변함없는 군인의 기개와 애국정신, 생도 시절 가슴에 새긴 정신을 여전히 간직한 인사들을 보면 감탄과 존경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때로는 진실을 함구하는 고위직 장성 출신 인사들을 만나 실망을 금치 못한 적도 꽤 있었다.
국방부 장관을 지낸 권영해 전 국가안전기획부장(현 국정원장)의 양심선언을 취재·보도한 뒤 한동안 허탈함을 느꼈다. 권 전 장관께 감사한 마음이야 물론 있지만 5·18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뒤바뀌게 할 키를 쥔 더 많은 인사가 그동안 침묵해 온 사실에서 비롯된 허탈함이었다. 그만큼 폭동으로서 5·18의 성격을 감추려 한 이들의 치밀함이 느껴졌고 그들이 거머쥔 헤게모니에 밀려 선뜻 양심 증언에 나서지 못하는 현실이 허탈했다. 최근 권 전 장관이 격려사를 전한 행사장을 다시 찾았다. 권 전 장관의 사모는 기자와 만나 “남편이 없는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닌데…”라고 말끝을 흐리면서도 “더 많은 사람이 (증언에) 나서지 않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 뼈 있는 말을 건넸다.
아직 5·18의 진실을 알고 있는 많은 사람이 곳곳에 숨어 있다. 덮어놓고 민주화운동으로 해석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적지 않게 고심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중에는 별을 달고 예편한 전직 장성들도 꽤 있을 것이다. 이제는 현역 군인이 아니기에 연금만이 소중하다고 일찌감치 결론 내리고 남의 일로 치부하는 인사들도 있다고 본다. 늦었지만 권 전 장관이 용단을 내린 데는 더는 좌편향으로 치달으며 침몰해 가는 대한민국 호(號)를 묵과할 수만은 없었기 때문으로 추정해 본다.
그간 ‘악마’로만 묘사됐던 계엄군의 명예 회복을 위해서라도 5·18 문제를 더는 미룰 수 없다. 그 실타래가 이제 비로소 풀리기 시작했다. 근본적인 성격을 바꿀 중요한 정보를 지닌 더 많은 증언자가 제2·제3의 양심선언에 동참해 주길 간절히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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