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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18 당시 내란 혐의로 재판을 받던 판사 출신 이택돈(2012년 작고) 전 신민당 국회의원이 김대중(DJ)의 공산주의 커넥션에 대해 검찰이 제시한 증거를 보고 놀랐으며 “DJ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한 신민당은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법정에서 진술한 사실이 최근 기밀해제된 미국 정부문건에서 드러났다.
지금까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재판 속기록은 모두 공개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다.
미 국무부가 11월20일(현지시간) 추가로 기밀 해제한 5·18 당시 외교전문(80SEOUL 011401)에 따르면 1980년 8월28·29일 2심 재판을 참관한 주한미국대사관 관계자는 “이택돈은 김대중이 그의 이념에 대해 자기에게 거짓말했다고 폭로했다”고 워싱턴에 보고했다.
이 전 의원은 재일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한민통)를 직접 지칭하며 “일부 구성원은 공산주의자들이었음을 알았어야 했다(And should have known that some members of the ‘HANMINTONG’ (two were mentioned by name) were communists)”고 후회하면서 공산주의자 2명의 실명을 법정에서 공개했다고 미 대사관은 본국에 보고했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전문에는 2명의 이름이 기재되지 않았으며 항칠(글씨를 지우거나 가림)한 흔적도 없었다.
미 대사관 관계자는 “이택돈은 김대중이 40년대 중반에 공산주의자들과 명확하게 연결된 증거를 검찰이 제시했을 때 놀랐다고 법정 진술했다”며 이 전 의원의 발언은 이번 재판에서 ‘가장 놀라운 법정 진술(the most surprising testimony)’이라고 기밀 보고서에 의견을 첨언했다.
그러면서 “이택돈은 김대중이 실제로 대통령으로 당선됐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두렵다고 진술했다”며 “신민당은 김대중을 대선 후보로 지명한 것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이 전 의원이 법정에서 요구했다”고 기밀 보고서는 기술했다.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미국대사는 재판에 참관한 미국 직원으로부터 보고받은 내용을 요약본으로 워싱턴에 취합 보고하면서 “이택돈은 김대중의 좌익 커넥션을 알고 나서 놀랐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어 “김대중을 1971년 신민당 후보로 내세운 데 대해서도 당 차원에서 사과해야 한다”고 이 전 의원이 진술했다고 거듭 확인했다.
이와 함께 “8월28일과 29일 법정에 출석한 대부분의 피고인은 김대중과 접촉하고 만난 혐의에 대해 자백했다”고 미 국무부에 보고했다.
또한 공동피고인인 김녹영 전 민주통일당(민통당) 국회의원은 “김대중이 권력을 잡으면(KIM DAE JUNG came to power) 분열된 민통당을 다시 규합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김대중을 도왔다고 실토했다”고 미국 측은 기밀 보고서에 적었다.
이와 함께 김 전 의원은 DJ에게 20만 원(오기로 추정·공소장에는 20만 엔으로 적시)을 건넸으며 이 돈은 일본 중의원 우쓰노미야 도쿠마(Utsunomiya Tokuma·宇都宮徳間)로부터 받았다고 자백했다고도 외교전문에 기재됐다.
우쓰노미야 전 의원은 청년 시절 일본공산당 입당 전력이 있으며 이후 보수당인 자민당으로 옮겨 일본 정계의 거물급으로 성장했으며 방북해 김일성과 만났다. 외교 전문은 김 전 의원이 심장질환으로 추정되는 지병을 앓아 쇠약해 보였다고 했다.
이 밖에도 김대중은 친공산주의자(Pro-communist) 행보와 폭력 선동에 대해 부인했으며, 그의 생각과 사상이 다른 점을 설명하기 위해 한 차례 김일성을 법정에서 언급했다고 외교전문은 기록했다.
한편 미 국무부가 같은 날 추가로 기밀 해제한 5·18 당시 또 다른 외교전문(80SEOUL 010713)에 따르면 미 대사관 관계자는 1980년 8월18일·19일 2심 재판을 참관한 뒤 DJ가 “고문은 없었다(KIM SAID HE HAD NOT BEEN TORTURED)”고 재판에서 말했다고 워싱턴에 긴급 보고했다.
다만 외교전문은 DJ가 “구금된 60일간 한 지하실에 발가벗겨진 채로 하루 15시간씩 조사받았다(BUT HAD BEEN HELD NAKED IN AN UNDERGROUND ROOM WHILE BEING INTERROGATED 15 HOURS A DAY FOR 60 DAYS)”고 법정에서 주장했다고 적시했다.
국제 인권을 중시했던 미국 민주당의 카터 정권은 재판 기간 DJ의 처우에 대한 우려를 지속해서 한국 정부에 전달했지만 이번에 공개된 외교전문 중 ‘고문’에 관한 언급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이하 앰네스티)는 “가끔 알몸으로 조사받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He is reported to have said, "Sometimes I was stripped of my clothes…)”고 실제 고문이 자행됐는지 단정 짓지 않고 에둘러 표현하면서도, “고문을 당할 상황(지경)에 이르렀다(brought to the very point of torture)”는 표현을 게재한 월간 소식지(12월호)를 유엔 인권위원회 43개 회원국 정부에 보냄으로써, 전 세계적인 DJ 구명 운동에 기름을 끼얹은 것으로 관측된다.
정작 앰네스티 관계자는 한국 정부로부터 비자 발급을 거부당해 재판 참관은커녕 국내에 입국하지 못한 사실도 미 외교전문을 통해 확인됐다. 당시 인권 옹호 기조를 여러 문건에서 선명하게 드러낸 미국 측은 앰네스티 입국이 거절되자 본국과 대사관이 긴박하게 전문을 주고받았다.
DJ 아들 김홍걸은 2020년 5월18일 YTN 라디오에 출연해 “저희 아버님은 고문까지는 안 당하셨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아주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며 김대중의 고문 사실을 부인했다.
1995년 서울지검의 12·12-5·18 재수사 기록을 근거로 한 월간조선 2019년 7월호 보도에서도 피고인 12명은 검찰관이 억압 또는 폭행하거나 강요한 일이 있는지 묻자 “그런 사실이 없었다”고 고문 일체를 부인했다.
이들이 고문 사실을 검찰에서 부인했던 무렵은 5·18이 폭동에서 민주화운동으로 바뀌던 김영삼정부 때였다. 1980년 사형 또는 중형선고를 받은 이들에게 우호적인 검찰 수사였다는 건 익히 알려진 점이다.
지금까지 검찰 수사 기록과 판결문은 모두 공개됐지만 공판 속기록은 일부만 공개됐다.
2019년 심재철-유시민의 공개 논쟁 당시 심재철 전 국회부의장은 DJ 사형선고에서 증거로 판시된 진술을 했다는 유시민에게 “유씨도 하루빨리 재판 속기록 공개에 동의해 한 점 의혹 없이 풀어야 한다”고 요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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