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청년] 국제 개발협력의 감추고 싶은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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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2-13 00:02:59

최근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해외 원조에 들어가는 예산을 동결시키면서, 파격적으로 대외원조 기구인 미국국제개발처(USAID)를 축소 혹은 통폐합하기로 했다. 대표적인 이유로는 USAID의 코로나19 바이러스 질병 관련 투자·하마스 무장테러 단체에 수백억 달러 지원 등 순수한 원조 기관이 아닌 범죄 조직으로 변질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게 비단 USAID만 해당되는 문제일까. 안타깝게도 이미 국제기구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수많은 기관에서 원조 자금을 남용하는 일이 암묵적으로 자행되고 있다. USAID와 유사한 대표적인 기관이 한국에도 있다. 바로 정부 차원의 대외 무상협력사업을 전담하여 실시하는 외교부 산하 준정부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그것이다. 역사적으로 원조 수혜국이었던 대한민국은 1991년 원조 공여국으로 전환되면서 개발도상국가들의 경제·사회 발전 협력을 목적으로 KOICA를 설립해 운영해 왔다.

그러나 그 목적이 이면에서 개도국 정부기관의 비자금 조성이나 정치적 사심을 채우는 용도로 변질된 사례가 속속 밝혀지고 있어 범죄 조직으로 규정된 USAID와 크게 차이가 있을지 의문이다. 근래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해 드러난 국내 부정선거 범죄와 함께 해외 부정선거 사례도 이미 오래전부터 화두가 되었다. 문제는 그러한 부정선거에 사용된 장비가 한국산이라는 것이다.

실례로 2020년 키르기스스탄 총선 당시 KOICA는 선거 역량 강화 사업‧민주화 과정이라는 명목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및 세계선거기관협의회(A-WEB·에이웹)와 공동으로 선거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후 키르기스스탄에선 결과 조작 및 부정선거 논란으로 대통령 사임이라는 사태까지 이어졌다. 한국산 투표 시스템 및 투개표 원칙 등을 교육하고 수백억 원을 여러 개도국에 투자한 결과, 오히려 개도국 정치 및 사회에 치명적 타격을 준 것이다.

KOICA는 환경·성평등·인권 및 평화 등 폭넓은 분야에 걸쳐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중동 등의 국가들을 지원해 오고 있다. 동시에 생선을 먹여 줄 게 아니라 생선 잡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취지하에 ‘지속 가능한 개발’을 외쳐 왔다. 필자는 이 말을 필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말로 바꿔서 표현하고 싶다. ‘지속적으로 의존만 가능한 국가와 정부로 길들이는 개발’이라고 말이다.

역설적이게도 필자는 수년 동안 개도국 개발협력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런 혹평을 하는 것이 제 무덤을 파는 격일 수 있지만, 이 분야에 있으면 있을수록 현실에서 오는 회의감으로 누구보다도 개발협력이 개선되길 바라는 심정이다.

물론 모든 사업과 활동이 잘못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노고와 헌신이 담긴 막대한 세금을 벌써 수십 년째 개도국에 쏟아붓고 있음에도 대부분은 여전히 개도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앞서 본 바와 같이 악용되고 있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필자가 그간 담당했던 KOICA 지원 사업도 분명 투명하게 사업비를 사용했음에도 개도국 고위 관료들을 어르고 달래며 로비하는 명목으로 쓰이는 자금과 현지 파견에 따른 인건비에서 상당한 출혈이 있었다. 예를 들어 고아들을 위한 보건의료 지원 사업에 100만 원이 지원되었다고 가정하면 80~90만 원은 보건 관련 해당 국가의 기관과 관료, 그리고 이를 담당하는 책임자들을 위해 소모되고, 나머지만 수많은 고아들에게 분배되는 게 현실이니 실제로는 고아를 위한 보건 사업이 아닌 현지 보건복지부 혹은 파견 기관의 수익사업이 된다.

‘왜 아프리카 원조는 작동하지 않는가 : 아프리카 개발협력의 혁신적 전략 10가지(‘The Trouble with Africa: Why Foreign Aid Isn't Working)’를 저술한 로버트 칼데리시는 ‘글로벌 공적 원조의 수혜자는 국민이 아니라 정부기관인데, 이는 원조가 그들의 권력을 유지해 주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필자는 오랫동안 세계은행(WB)에 재직하며 개도국에서 발로 뛰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금전적 도움보다는 투명한 정부 시스템과 언론의 자유가 개도국의 성장을 도울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어쩌면 선진국들은 개발협력 및 공적 원조라는 프레임으로 개도국을 평생 누군가에게·무엇인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국가로 길들인 것인지도 모른다.

우후루 케냐타 전 케냐 대통령은 미국 행정부의 최신 행보에 대해 “우리는 미국에 세금을 내고 있지 않다. 그들의 국제원조 동결에 왜 불평하는가? 이제 우리는 스스로를 어떻게 도와야 할지 생각해야 한다”고 소신 발언을 했다. 언제까지 개도국을 걸음마조차 떼지 못하는 아기로 간주할 것인가. 그들에게도 세계 여느 나라와 같이 일어날 수 있고 걸을 수 있으며 뛰고 날 수도 있는 자원과 환경은 동일하게 혹은 더 풍성하게 주어져 왔다.

이번 USAID 사태를 계기로 다른 국제 기구 및 비정부기구(NGO)의 부정한 실상도 더 파헤쳐져 국제 개발이 새롭게 정의되길 바란다. 시작엔 저항이 있기 마련이겠지만 결과적으로 개도국과 선진국 모두에게 윈윈의 결과를 가져오길 소망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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