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P 사주 베이조스 “反자유·反시장 견해 글 우리 신문에 못 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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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담당자 반발 사직… 언론시장 균형 이룰 새 편집인 찾겠다”
2024 대선 때 민주당 후보 지지표명 관행 철폐… 비판 봇물에도 꿋꿋

임명신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5-02-27 17:10:39

▲ 아마존 창업자이자 워싱턴포스트 사주인 제프 베이조스가 26일(현지시간) '개인의 자유' '자유 시장'에 배치된 견해를 논조에서 배제하겠다고 밝혀 주목된다. 이날 그는 오피니언 섹션 편집인이 반발해 사직했다는 소식도 전했다. 작년 미 대선 때 1976년 이래 관행이던 민주당 후보 지지 표명을 막은 이래 사실상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 기조와 함께 갈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보인다. 스카이데일리=연합뉴스

▲ 2017년 이래 워싱턴포스트와 표어 "민주주의는 어둠 속에 죽는다." 연합뉴스

1990년대 소련·동구권 공산체제 몰락 이후 전 세계 유서 깊은 정론지들이 ‘진보’의 이름으로 점차 좌경화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현실정치에선 실패했으나 이념적 지향이 언론·학술·교육의 장에서 오히려 더욱 강력하고 진지하게 진행된 결과다. 이런 가운데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사실상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와 함께 갈 것으로 짐작되는 기조를 천명해 주목된다.

WP 사주인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는 26일(현지시간)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 계정 글에서 “우리 WP 오피니언 페이지에 변화가 있을 것임을 알리기 위해 이 글을 쓴다”며 이런 방침을 밝혔다. 베이조스는 “WP에선 앞으로 매일 ‘개인의 자유’와 ‘자유 시장’, 이 두 가지 기본 원칙을 지지 옹호하는 글을 낼 예정”이라며 “다른 주제도 다루겠지만 이 두 가지 원칙에 반대하는 견해는 다른 매체가 발행하도록 할 것”이라고 썼다. 여기서 언급된 두 가지 원칙이란 보수 진영이 추구해온 핵심 가치라는 점에서 WP의 논조가 크게 달라질 것임을 예고한 셈이다.

베이조스는 “신문, 특히 지역 독점 신문이란 모든 견해를 다룬 광범위한 오피니언 섹션을 매일 아침 독자들 집 앞에 배달해주는 서비스로 간주되던 때가 있었다”며 “그렇지만 이제 그 역할을 인터넷이 한다”고 짚었다. 이어 “난 미국인이며 미국을 위해 일하는 것을 자랑스게 여긴다”며 “우리나라는 전형적인 방식으로 여기까지 오지 않았다. 미국이 성공한 배경의 큰 부분은 경제 영역과 그 외 모든 영역에서 누려 온 자유였다. 자유는 윤리적이다. 강압을 최소화한다. 또한 실용적이다. 창의·발명·번영을 촉진한다”고 강조했다.

베이조스는 “오늘 오전 이 글을 WP팀과 공유했다”면서 자신의 방침에 오피니언 섹션 편집인 데이비드 시플리가 반발해 사직했다는 소식도 알렸다. “매우 존경하는 시플리 편집인에게 이 새로운 시기를 이끌 (편집 방향) 기회를 제안하면서 ‘물론이죠’든 ‘아니오’든 답해 줄 것을 요청했다”며 “신중한 고려 끝에 그가 물러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이 중요한 변화, 쉽지 않을 것이며 100% 헌신이 요구된다. 새 오피니언 편집인을 찾겠다”고 말했다. 이어 “자유 시장과 개인의 자유가 미국에 꼭 필요하다. 이런 관점이 현 뉴스 시장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믿음이 내겐 있다”고 짚었다.

베이조스는 작년 대선 때부터 WP 논조에 입김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승리를 내다본 것으로 보인다. 1976년 이래 1988년 대선을 제외한 모든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공개 지지해 온 WP가 지난 대선에서도 민주당 후보였던 카멀라 해리스 당시 부통령을 지지하는 사설 초안을 작성했지만 베이조스의 반대로 발행되지 못했다. 유명 언론인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으며 아마존닷컴 불매운동, 구독자의 10%인 25만 명이 구독해지 보이콧을 진행해 위기를 맞았으나 물러서지 않았다.

미국에선 선거 때 매체가 특정 후보 지지 선언을 한다. 거의 모든 주류 언론이 민주당을 지지하며 각종 노동조합이나 대중연예인도 민주당 지지를 밝히는 게 일반적이다. 입장을 드러내지 않으면 공화당 지지자로 오해받거나 핍박 받을 수 있다.

지난달엔 퓰리처상 수상자인 WP의 유명 만평 작가가 자신이 제작한 만평이 부당하게 거부당했다고 주장하며 사직하기도 했다. 베이조스와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 샘 올트먼 오픈AI CEO 등이 트럼프 취임식에 각각 100만 달러를 기부한 것을 비꼰 해당 만평엔 이들이 트럼프 동상 앞에 무릎을 꿇고 돈다발 담긴 가방을 바치는 장면이 담겼다.

WP는 1877년 수도인 워싱턴DC에서 스틸슨 허친슨이 설립해 미국의 대표적인 정론지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정통 일간지답게 정치·경제·국제·예술 등에 대해 폭넓게 다루지만 미국정치 기사가 돋보인다. 리차드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취재해 신문의 권위를 높혔다. WP의 퓰리처상 수상 기록 47회는 1위인 뉴욕타임스 성적에 다음간다.

한때 미 전역에서 발행부수 상위 5위권을 벗어난 적 없었으나 종이신문의 추락과 2007~2009년 경제위기로 경영난에 빠져 결국 25년간 이어진 전미 발행을 2009년 8월 중단했다. 미 동부 특히 워싱턴DC 수도권 지역 발행에만 집중하게 됐으나, 그마저 힘들어져 2013년 8월 아마존의 베이조스가 헐값에 가까운 2억5000만 달러에 인수한다. 이후 WP는 디지털 기업으로 변신했다고 평가된다. 엔지니어를 대거 고용해 온라인 컨텐츠를 대대적으로 강화한 덕분에 2년 만에 웹사이트 방문자가 3배 증가했다고 한다.

임명신 기자 imms@skyedaily.com 기자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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