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 View] 중국의 선거, 한국의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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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신 국제문화부장·부국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25-03-21 00:02:40

2013년 가을 5분짜리 애니메이션이 하나 온라인에 유포됐다. ‘중국 지도자들은 어떻게 단련되나’. 중국어·영어로 유튜브에도 돌았으니 국내외에 작정하고 뿌려진 것으로 보인다. 미국 대통령·영국 총리 등이 권좌에 도달하기까지 브리튼즈갓탤런트 우승자처럼 ‘깜짝 스타’인 점, 무엇보다 ‘엄청난 체력과 선거 비용 소요’ 측면을 영상은 부각시킨다. 아울러 중국에선 8000만 공산당원 중 뽑히고 뽑혀 도시·지방(오지) 행정을 두루 거쳐 검증된 실력자가 최고 권력에 오른다는 점이 강조된다.

중국 헌법은 각급 의회 격인 인민대표대회에 최고의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 구성의 합리성 개선을 위해 여러 번 선거법이 개정됐으나 공산당의 영도·집권당 위치 유지 수단으로서만 선거가 유의미한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현·향급 인민 대표만 직접선거, 그다음부터 피라미드식 간접선거로 전국인민대표자대회(전인대)에 이른다. 공산당이 짠 틀 안에서 이뤄지므로 인민의 표심 반영을 기대하긴 어렵다.

결국 2016년 상하이의 한 선거구 개표 과정에서 난리가 났었다. 미국 대통령에 처음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일본 성인비디오 여배우 얼굴·이름 등이 담긴 투표용지가 쏟아진 것이다. 트럼프는 상하이 해당 선거구에서 10% 지지를 받았다. 당시 홍콩 일간 명보에 따르면 기권·무효표를 제하면 실제 투표율이 50%에 한참 못 미쳤고, 일련의 상황은 출마자를 엄격히 제한한 당국에게 보여준 일종의 사보타주였다. 물론 이마저 대다수 중국인과는 무관한 일이며 관련 보도 역시 홍콩보안법 이전에나 가능했던 ‘옛날 일’이다.

중국인들 대부분 선거가 뭔지 모르고 사는데 세계선거기구연합(A-Web) 회원국 대부분이 중국 일대일로 정책에 맞물린 국가들과 겹친다. A-Web은 우리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자유롭고 공정·투명한 참여적 선거를 지원함으로써 세계민주주의의 성장에 기여하고자 설립한 국제기구”로 인천에 본부를 두고 있다. A-Web으로부터 투·개표 장비를 지원받은 8개국에서 부정선거 논란이 거센 가운데 중국이 일대일로의 필요에 의해 각국 선거에 함께 관여해 왔다는 의혹이 무성하다. 보통선거에서 한 표가 갖는 무게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중국과 그 동조 세력이라면 못 할 일 아니라고 본다.

보통선거는 인류사 수백년 우여곡절의 성과다. 특히 대통령 직선제엔 다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의 대표가 자동적으로 행정 수반(총리)인 의원내각제에선 맛보기 힘든 감흥이 있다. 빈부·학력·출신 상관 없이 모든 성인 국민 남녀에게 주어진 ‘한 표’는 심오한 철학적·역사적 배경을 지닌다. 인간이란 결코 평등할 수도, 평등해서도 안 되는 존재였던 수천 년의 통념이 500여 년 전 서구의 종교개혁 과정에서 깨지기 시작했다. 사제들만 보던 라틴어 성경이 각국어로 번역돼 모두가 절대자와 직접 소통하게 된 것은 ‘개인’ ‘자유’ ‘인권’의 발견·발전에 결정적이었다. 하나님과 개별 대면하는 자로서의 각성이 ‘개인’ ‘자유’의 성립, 양도·박탈 불가한 천부인권론으로 이어졌다.

반면 지난 2000여 년 중국사를 훑어 보자. 통치 이념의 핵심, 훗날 성리학으로 대변된 유교엔 ‘현자들(엘리트)의 지배’를 중시하는 전통이 강하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질서 체계와 농업 중심 세계관·가치관에는 중산층이 들어설 여지가 없었다. 중산층 없이는 투표권 쟁취나 제도적 개선을 둘러싼 치열한 노력도 불가하다. 중국인들은 역대 왕조의 황제 및 관료 시스템을 이제 더 유능한 공산당이 담당한다고 여긴다.

오랜 절대권력 역사의 관성이라는 게 무섭다. 뛰어난 당 엘리트가 다 알아서 해 줄 텐데 투표권 같은 게 왜 있어야 하냐는 발상이 시진핑의 3연임 또한 순순히 받아들이게 만든다. 다만 ‘민주’를 강조하는 중국 공산당으로선 선거에 관한 한 늘 국제사회에서 체면이 안 선다. 여기서 ‘민주’란 ‘인민민주’이며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현대적 해석이다. 공산사회로 가기 전 과도기로 설정된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이 오늘날 의회(격 기구)를 통해 재현될 수 있다. 대한민국 22대 국회처럼 말이다. 이번 탄핵 사태로 ‘의회 독재’가 증명되지 않았나.

강력한 대통령 리더십으로 달성한 건국과 산업화 시대를 부정하면서 태어난 현행 제6공화국 헌법이다 보니 ‘의회 권력 우위’로 세팅됐다.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로 여기는 사람들이 의석수를 늘리고 국정 전반을 장악하면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한 대통령들은 탄핵되거나 형사범으로 옥살이를 하게 됐다. 여당 내 탄핵 지지자들이 있었기 때문인데, 이들은 87체제의 의회 독재 위험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며 지역 토호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쉬운 내각제에 우호적인 경향을 보인다.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전쟁 중이던 1952년 7월 부산에서 진행된 제2대 대선 때 이승만은 국회 내 적대 세력으로 인해 곤경에 빠져 있었으나 직선제로 위기를 돌파했다. 대통령을 국회에서 뽑도록 돼 있던 제헌 헌법을 ‘발췌 개헌’해 이승만을 향한 민초들의 신뢰와 지지가 대한민국을 보존하게 한 셈이다. 73년 전보다 여러 모로 업그레이드된 평범한 시민들이 요즘 헌법재판소 앞에서 밤낮 없이 탄핵의 부당함을 외치며 헌정질서를 수호하고 있다. 이게 이 나라의 저력이며 이런 시민을 키워내는 게 보통선거의 힘이다. 이를 무너뜨리려는 측에선 선거 공정성 훼손이 최선이라고 여길 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