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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사고 피해자의 울분은 단순한 법적 분쟁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풀지 못한 구조적 감정의 고통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환자의 고통은 사과 없이 방치되고 의료인의 형사처벌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제도 밖에서 방황하는 피해자들의 분노가 형사고소로 향하지만 결과는 오히려 피해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이처럼 의료사고를 둘러싼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제도 개선 논의가 국회에서 열렸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12일 국회에서 열린 ‘의료사고 피해자의 울분 해소와 형사고소 최소화 방안’ 토론회에서 “현재의 의료사고 대응 구조는 피해자와 의료인 모두에게 불행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의료사고와 관련된 형사고소는 매년 평균 754건에 달하지만 실형(금고형 또는 징역형) 선고는 연평균 3건 남짓에 불과하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형사고소가 울분을 표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지만 이마저도 제도적으로 보상이나 진실 규명과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건복지부가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에 의뢰해 2025년 8월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간 의료사고 관련 형사 재판에 넘겨진 의사는 총 170명으로 전체 피고인의 88.5%를 차지했다. 이 가운데 68.8%(132명)는 유죄, 28.6%(55명)는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실형이 선고된 사례는 연평균 3.2건에 그쳤다.
반면 피해자와 유족은 대부분 ‘불기소 처분’ 통보를 받는다. 형사고소 결과는 민사소송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피해자에게 이중의 부담이 된다. 안 대표는 “형사고소는 피해자의 울분이 표출되는 창구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민사소송에서조차 불리한 근거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의료사고에 대한 국민적 불신과 감정적 상처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울분은 단순한 분노나 슬픔이 아니라 ‘한’과 억울함, 분노, 서러움이 중첩된 복합 감정”이라며 “이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배신감과 불공정함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의료사고 유가족의 울분을 해소하려면 장기적으로 ‘안전한 의료 문화’가 구축되어야 한다”며 “전제는 환자와 가족, 의료진 간 신뢰에 기반한 ‘열린 책임소통’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의료진이 진정성 있는 사과와 위로 그리고 납득 가능한 설명을 제공할 수 있도록 제도 전반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적 구조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토론자로 참석한 백경희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의료사고에서 민사와 형사는 책임 판단의 기준 자체가 다르다”고 전제했다. 백 교수는 “민사소송에서는 인과관계 입증 책임이 다소 완화되어 환자 측의 승소율이 65~67%에 이르지만 형사소송에서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는’ 수준의 입증이 필요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사의 부담을 덜기 위해 중립적인 의료사고심의위원회를 도입하고 의사와 환자 간 ‘공유의사결정 모델’을 활성화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실제 의료사고 피해자의 유족도 참석해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17세 딸이 척추측만증 교정수술을 받은 후 회복 과정에서 사고를 겪었다는 김주희 양의 어머니는 “딸이 11개월째 의식 없이 누워 있다”며 “의료진은 사고 당시 기도 특이사항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고 적절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그는 “사고 이후 병원은 설명도, 유감 표명도 없이 무책임하게 일관했고 결국 진실을 밝히기 위해 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형사 책임의 엄격한 구조가 오히려 의료사고 피해자들의 울분을 더 깊게 만들고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피해자의 울분을 줄이기 위해서는 처벌 강화가 아닌 ‘사과’와 ‘설명’ 그리고 ‘제도적 조정’이라는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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