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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의약품(OTC) 활성화를 위한 논의는 새로울 것이 없다. 2000년 의약분업 시행 이후 25년 동안 꾸준히 반복된 주제다.
전체 의약품시장에서 일반약의 생산 비중은 분업 전 30~40%대에서 분업이후 13~14%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성장율은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줄곧 정체돼 있고 가격인상이 매출 외형 성장의 실질적 배경이다.
활성화 논의에도 실제 정책 변화 역시 없었다. 꼽을 수 있는 유일한 큰 변화라면 안전상비의약품이 편의점에 판매가 2012년 시작된 정도다.
일반약 4천여 품목중 13품목이 상비약으로 허용됐고 시장 규모는 800억 원대다. 연간 4조 원의 일반약 시장규모를 고려하면 약 2% 정도되는 시장 변화다.
가장 최근인 11월 초 이개호 의원과 김윤 의원이 공동 주최한 일반의약품 활성화 포럼을 비롯 전문가 포럼, 직능단체 토론, 정부의 점검 보고서가 이어졌지만, 일반약 시장은 여전히 정체돼 있고, 산업적 성장동력으로서의 역할도 미미하다.
이 장기간의 정체는 단순한 제도 미비가 아니라, 일반의약품을 바라보는 국가정책의 방향 부재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다.
보건당국은 일반약 시장이 자가치료(self-medication)의 핵심 매개가 되고, 약사의 전문적 상담이 국민 건강관리의 첫 단계가 될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25년이 지난 지금, 이 기대는 실현되지 않았다. 병원 접근성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아졌고, 경증 질환조차 전문약 처방에 의존하는 구조가 굳어졌다. OTC는 ‘있으나 마나 한 시장’이 되었고, 산업의 무게 중심은 보험의 보호막 아래 성장한 전문약에 쏠렸다.
문제의 출발점은 정책 목표의 모호함이다. 일반약 시장을 키운다는 명분은 있었지만, 그것이 공공의료 차원의 건강관리 강화인지, 제약산업 성장전략인지, 소비자 선택권 확대인지에 대한 합의가 없었다.
명확한 목표 없이 규제 완화만 거론되다 보니, 제도는 늘 직능 갈등에 부딪혀 멈추곤 했다. 가장 민감한 사안인 판매 채널을 어디까지 허용할지 이와 연관돼 온라인 유통은 어떤 방향으로 관리할지, 광고 규제를 어떻게 정비할지 같은 핵심 질문은 20년 가까이 유보된 채 남아 있다. 제도가 움직이지 않으니 산업도 선택지를 갖지 못했다.
약국은 조제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일반약 판매는 약국의 부차적 기능으로 작동한다. 약국 활성화에 초점을 맞춰 일반약보다 건강기능식품에 눈길을 돌렸다.
최근 등장하는 일반약 전문 대형약국 현상 역시 구조적 왜곡의 부산물이다. 온라인 판매가 불가능하고 드럭스토어 모델이 제도적으로 막힌 환경에서, 일반약 시장의 확대 수요는 약국 내부에서 비정형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이는 정책의 방향 부재가 불러온 필연적 현상이다.
참고로 J의 효자로 등극하고 K-뷰티의 성지가 된 올리브영의 지난해 매출은 4조 7900억 원. 전체 일반약 생산규모를 넘는다. 올리브영의 당초 모델이 드럭스토어였다는 점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가 발표한 올해 건강기능식품 시장의 규모도 5.9조원에 달해 오래 전에 일반약 시장 규모를 뛰어 넘었다. 일반약이 전문약과 건강기능식품 사이에서 정체성을 잃었다.
일반약은 경증 질환에 대한 셀프메디케이션의 시작점이자 건강보험 재정을 보호하기 위한 기능을 갖는다. 또한 제약산업 성장에 기반이되는 하나의 축이자 약사가 수행하는 1차 의료의 관문 역할이 부여돼 있다.
유통채널을 넓히기 위해 일본의 사례처럼 일반약을 세분화할 것인가. 미국 등 영미권처럼 OTC(Over The Counter) 개념에서 더해 BTC(Behind The Counter) 개념을 논의할 것인지 검토나 대화는 완전한 금기사항이다.
만약 일반약을 ‘자가치료의 중심’으로 본다면, 일본처럼 위험도 기반 분류와 판매채널 다변화가 필요하다. 산업적 성장축으로 본다면, 표준제조기준을 합리화하고 광고·표시 규제를 현대화해 기업의 제품개발 인센티브를 높여야 한다.
약사 중심의 1차 의료 강화를 목표로 한다면, 약국 상담 기능을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상담 기반 수가를 설계해 약사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방향없이 직능간의 갈등 또는 반발 등에 묶여 목표 없이 규제만 유지된 채 일반약 활성화 논의는 여전히 공염불처럼 들린다.
일반약은 제약산업의 말단으로 취급받아 왔지만 보건의료 체계의 첫 관문이다. 지난 12월 초 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돼 비대면 진료가 법제화되면서 전문약 접근성은 더욱 높아졌다. 반면 활성화가 요원한 일반약의 유통 채널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금기의 영역이다. 전문약과 건기식보다 접근성이 더 떨어지고 있다는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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