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또다시 매를 들었다. 5월 금융권 가계대출이 한 달 새 9조3000억 원 늘자, 매주 금융회사를 압박하는 비상 관리 체계를 가동, 규제 위반자를 엄단한다는 방책을 내놨다. 약정을 어기고 대출금으로 집을 산 이들을 찾아내 자금을 회수하고 금융거래를 제한한다는 경고도 얹었다. 거시경제의 최대 리스크인 부채 총량을 선제적으로 관리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다.
하지만 시장 현실이 그리 단편적이지 않다. 우선 대출 질주를 견인한 주범은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이 아니다. 주담대는 오히려 전월보다 줄며 주춤했다. 폭등세를 이끈 건 마이너스 통장을 비롯한 신용대출(기타대출)로, 한 달 만에 무려 5조3000억 원 불었다.
당국은 이를 가정의 달 자금 수요나 규제 우회용 부동산 투기 자금으로 해석하고 싶겠지만 현장 체감 온도는 다르다. 고물가·고금리 장기화 속 고정 수입만으로 버티지 못해 마이너스 통장에 손을 뻗은 생계형 대출이 임계점에 달했다는 비명으로 보는 게 맞다.
신용대출을 꼼수로 악용해 부동산 투기에 나선 이들은 엄벌해야 하지만, 정부의 화살촉이 막다른 골목에 몰린 서민의 마지막 비상구까지 겨눠선 안 된다.
당국의 압박에 은행권, 특히 모바일 뱅킹의 편리함 탓에 ‘뇌관’으로 지목된 인터넷은행들도 고강도 자구책을 내놓은 상태다. 최근 국회 정무위 자료에 따르면 인터넷은행들은 연간 가계대출 관리 목표치를 초과하거나 감축 목표를 이행하지 못했다. 일부 인터넷은행 관계자가 당국에 긴급 소집되고, 비대면 접근성이 좋아 증시 과열기 청년층의 ‘빚투(빚내서 투자)’ 창구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당국 칼날 앞에 인터넷은행들이 택한 처세는 ‘대출 빗장 걸어 잠그기’다. 카카오뱅크는 마이너스 통장 한도를 반토막 냈고, 케이뱅크는 신규 개설을 아예 중단했다. 토스뱅크도 한도를 대폭 축소하고 사용률이 낮은 계좌 한도까지 칼질하고 나섰다.
그러나 1금융권과 인터넷은행의 문턱이 한꺼번에 높아진다고 해서 대출 수요 자체가 증발하지는 않는다. 당장 생활비와 사업 자금이 아쉬운 서민과 소상공인들은 결국 더 높은 이자를 뱉어내야 하는 보험사,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을 기웃거릴 수밖에 없다. 5월 제2금융권 대출이 2조3000억 원 늘며 일제히 반등한 지표가 이를 방증한다. 규제가 낳은 풍선효과다.
당국이 주목해야 할 건 9조 원이라는 총량 수치가 아니다. 숫자가 가리키는 민생의 절규다. 서민이 마이너스 통장으로 연명하는 시점에서 은행 목을 죄어 대출을 걸어 잠그는 건 병의 원인은 덮어둔 채 열이 난다고 해열제만 들이붓는 격이다.
필요한 건 압박이 아니라 대출의 성격을 정교하게 분리해 대응하는 ‘핀셋 처방’이다. 금융망을 촘촘히 짜 투기성 우회 대출과 증시 과열형 빚투를 차단하되, 마이너스 통장에 매달린 생계형 차주들에게는 연착륙할 수 있는 금융 지원 활주로를 깔아줘야 한다.
숫자 채우기식 가계부채 관리는 결국 가장 약한 고리부터 부러뜨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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