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경북 경산과 포항에 사상 첫 ‘폭염중대경보’가 내려졌다. 일 최고 체감온도가 38도 이상으로 치솟는 극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건강한 사람도 온열질환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경고다. 더위가 불편을 넘어 생명을 위협하는 재난이 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낮 햇볕을 받은 옥탑방 지붕과 반지하 외벽은 해가 진 뒤에도 쉽게 식지 않는다. 창문을 열어도 뜨거운 공기만 밀려들고 선풍기를 틀면 실내의 열기가 방 안을 맴돈다. 밤새 식지 않은 방에서 잠을 설친 주민은 다음 날에도 같은 공간에서 더위를 견뎌야 한다.
에어컨이 설치된 집이라고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경우도 있다. 전기요금이 걱정돼 가장 더운 시간에만 잠깐 켜거나 방문을 닫고 가족이 한 방에 모여 지내는 가구도 있다. 냉방비 몇 만 원이 식비와 약값을 흔드는 가정에서 에어컨은 마음 놓고 사용할 수 있는 가전제품이 아니다.
무더위쉼터는 폭염 취약계층이 잠시라도 더위를 피할 수 있도록 마련됐지만 실제 이용에는 여러 장벽이 따른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게 집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주민센터나 복지관까지 이동하는 일은 쉽지 않다.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문을 닫는 시설은 열대야가 이어지는 시간에는 도움을 주기 어렵다. 지도에는 쉼터로 표시돼 있어도 주민이 필요할 때 이용할 수 없다면 실질적인 대피시설이라고 보기 어렵다.
뜨겁게 달궈진 도로에서는 배달기사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지를 오간다. 건설노동자와 환경미화원, 경비노동자도 폭염 속에서 정해진 작업량과 근무시간을 채워야 한다. 물을 마시고 그늘에서 쉬라는 행동요령이 반복되지만 배송시간과 작업 일정이 그대로라면 휴식은 노동자 개인이 선택하기 어려운 일이 된다.
하루 일을 쉬면 곧바로 수입이 줄어드는 노동자도 많다. 몸에 이상을 느끼면서도 일을 멈추지 못하고 잠시 쉬었다가 밀린 물량을 처리하기 위해 더 빠르게 움직이기도 한다. 폭염 속 휴식권을 작업자의 판단에만 맡겨서는 사고를 막기 어려운 이유다.
질병관리청 집계에 따르면 10일까지 올해 온열질환자는 535명, 추정 사망자는 2명이다. 지난해에는 온열질환자 4460명과 추정 사망자 29명이 발생했다. 특히 환자의 약 30%가 7월 하순 열흘 남짓한 기간에 집중됐다. 기온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피해가 짧은 기간 급격히 커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무더위쉼터를 운영하고 취약계층에 냉방비와 냉방용품을 지원하고 있다. 서울시도 쪽방 주민과 노숙인을 위한 보호 대책을 가동하고 노후주택에 차열페인트를 시공한다. 다만 시설 수와 지원 건수만으로 폭염 대책의 성과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쉼터가 밤과 주말에도 열려 있는지 냉방비 지원으로 실제 에어컨을 가동할 수 있는지, 야외 작업장에서 휴식시간이 지켜지는지까지 살펴야 한다.
누군가는 에어컨이 켜진 집과 사무실에서 폭염을 피하지만 누군가는 달궈진 방과 거리에서 더위를 온몸으로 견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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