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여긴 어디, 우린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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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옥 논설실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21-06-04 00:02:50

오래 전 대학원 시절, 다소 엉뚱한 후배가 있었다. 그는 공부도 잘 했지만 다방면에 남다른 호기심을 갖고 있으며 부업으로 이런저런 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어느 날 그가 달 표면을 확대한 지도를 펼쳐보였다. 그리고는 열심히 상품 홍보를 하기 시작했다. 주위에 모여든 동료들 입가에 묘한 웃음기가 번졌다. 그리고는 “대동강 물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 뺨 칠 녀석이군” 하면서 한 마디씩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후배가 달 지도를 펴놓고 내놓은 설명이 달 표면, 그러니까 달의 토지를 구역으로 나누어 한 구역씩 팔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던 것이다.

2021년 여기는 ‘어스2(Earth2)’, 가상 세계 ‘메타버스(Metaverse)’ 속 또 하나의 지구다. 이 세계에서는 누구나 0.1달러라는 합리적인 가격, 그러니까 누구나 버릴 셈 치고 장난삼아 투자할 만한 가격, 단돈 100원 정도로 부동산을 소유할 수 있다. 어스2에서는 가상의 지구를 가로 세로 10m의 100㎡ 단위로 쪼갠 ‘타일’ 단위로 땅을 사고판다. 가상의 땅을 매입한다는 발상은 어떻게 보면 단순하고 황당하기까지 하지만, 이 게임 서비스는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작년 11월 처음 출범할 때 모든 땅의 타일당 가격은 0.1달러로 동일하게 책정되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거래량이 증가함에 따라 뉴욕 맨해튼은 58달러, 서울 서초구는 20달러까지 올랐다. 내 비록 현실에서는 손바닥만한 땅 한 평 가지지 못할지라도, 가상 세계에서는 적은 돈으로 압구정 갓물주(‘God’과 ‘건물주’의 합성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어스2는 홈페이지에서 ‘미션 선언’을 통해 이 게임 서비스를 내놓은 의도를 밝히면서 “우리 미래는 가상 세계다”라고 선언한다. 그들은 우리가 몸담고 있는 정보화 시대에는 이제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기술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이미 대다수 인류가 삶의 절반 정도를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지내고 있으며, 해마다 ‘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One)’이나 ‘스노우 크래쉬(Snow Crash)’ 같은 SF 소설이나 영화 속 가상세계인 ‘메타버스’가 점점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어스2는 가상 세계에서 갓물주가 되는 뿌듯함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곳의 거래 방식은 실제 페이팔을 통해 현금으로 땅을 구입하는 시스템이기에, 땅값이 오른 후 되팔면 시세차익을 ‘현실화’ 할 수 있다. 물론 어스2 시스템 내 땅 자체는 무형의 자산으로 실제적 가치는 전혀 없고 게다가 언제 그 가치가 떨어질지 모르는 일이다. 그러므로 투자를 염두에 둔다면 이 거래는 무척 위험한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제 메타버스 속 세상은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의 패러다임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아지고 있다는 거다.

이 가상의 부동산 시장에는 투자자의 현실적 욕망과 미래에 대한 전망이 혼재되어 있다. 이곳 투자자들의 동기는 각자 다르겠지만, 혹자는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욕망을 가상의 공간에서나마 대리만족 할 수도 있을 것이고, 혹자는 향후 이 분야의 전망을 내다보고 수익을 목적으로 투자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이트를 방문해 보면 이 거래의 이면에는 묘한 국가주의가 게임의 동기로 작동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어스2 구매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거래가 성사된 지역에는 해당 타일에 구매자 국적의 국기로 표시되어 있다. 예를 들어 서울 종로구에 있는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지역은 온통 붉은 중국기로 덮여있다. 어느 중국인이 어떤 의도인지 몰라도 그 일대를 선점해버린 것이다. 이에 방어하듯 그 주변엔 한국의 태극기가 배치되어 있다. 청와대가 중국 국기로 덮인 걸 보면 누구라도 애국심이 발동해 주변 지역을 매입해 포위하거나 중국을 공략하기 십상이다.

메타버스는 가상과 현실이 혼재되어 있는 공간이다. 현실이 가상세계에 영향을 줄 수 있고, 반대로 가상의 세계가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다가올 미래에는 지구의 땅덩어리 뿐 아니라 개인을 대신하는 제2의 자아, 즉 아바타가 메타버스의 공간을 누빌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영화 메트릭스에서 보았던 가상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순간, 그 세계는 우리에게 현실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믿고 있는 지금의 이 현실은 과연 얼마만큼 실재(reality)에 가까운가? 이 역시 우리가 오로지 믿음과 약속으로 구축한 가상의 세계는 아닐까? 오늘날 가상화폐의 등장에 새로운 컨셉이라고 수선을 떨지만 사실 현실의 ‘화폐’인들 실제 가치가 있는 것일까? 역시 오래되고 익숙한 약속에 불과한 것이다.

메타버스의 등장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말한 ‘동굴의 그림자’를 새삼 소환한다. 플라톤은 현실은 이데아(실재)가 비친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동굴에 사는 사람들이 보는 그림자에 비유하고 있다. 즉 세상의 사물들은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에 불과하므로 인간은 동굴 밖에 있는 실재를 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구라는 동굴에 살고 있는 인류에게 보낸 플라톤의 메시지가 메타버스가 등장한 오늘날 인간과 세계의 존재론적 물음을 던져주고 있다.

박선옥 논설실장 sobahk@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