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쇼팽은 그의 피아노곡을 드라마틱하게 연주하려면 박자를 ‘넘나드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쇼팽은 그 기술을 ‘템포 루바토(tempo rubato)’라 불렀다.
루바토(rubato)는 ‘훔치다’는 뜻을 가진 이태리어 루바레(rubare)에서 유래되었다. 템포 루바토를 직역하면 ‘박자를 훔치다’라는 뜻이 된다. 템포 루바토는 연주자가 박자를 훔치듯 자신의 재량에 따라 곡을 빠르게 또는 느리게 연주하고 원래 박자로 돌아오라는 음악 용어다.
피아니스트 요세프 호프만은 루바토를 연주하는 데 필요한 것은 ‘안목(good taste)’이라고 했다. 그는 안목 있는 연주자가 템포 루바토로 연주하면 박자만 훔치는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훔칠 수 있다고 했다. 가수가 곡의 클라이막스에서(보통 고음일 경우가 많다.) 템포를 느리게 또는 빠르게 노래하며 그의 기량과 감정을 보여줄 때 청중은 감동한다. 이렇듯 박자의 완급을 적절히, 꼭 필요한 곳에서 보여주는 것이 연주자의 안목이다.
안목은 어떻게 생길까. 안목은 어떤 상황에서든 원래 박자를 놓치지 않고 연주할 수 있을 때 생겨난다. 박자는 찰나에도 흔들릴 수 있다. 박자의 흔들림이 아주 미미해도 듣는 사람의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 높은 수준의 연주를 보면 원래 박은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사이사이 밀고 당기고, 느려지고 빨라짐을 느낄 수 있다. 호프만은 루바토의 원칙은 ‘균형(balance)’이라고도 했다. 음악이 너무 처지는 느낌이 들거나 급해지는 느낌이 든다면 균형이 깨진 것이다. 곡의 원래 박자를 많이 벗어났다는 얘기다.
인간관계에서 소통과 공감은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박자와 같다. 박자가 제시되어 있으면 음악과 어떻게 소통하고 교감해야 하는지 힌트를 얻는다. 악보에 제시된 박자도 연주자마다 조금씩 다르게 연주하는데 서로가 갖고 있는 생각·관념·경험을 나누며 맞춘 박자는 더 큰 갭을 가져올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음악적 관점에서 봤을 때 상대의 마음을 ‘훔친 것’은 자유롭게 박자를 조절할 수 있는 템포 루바토로 인해 가능한 것이다.
최근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들어 보면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가 어떻게 호흡을 맞춰 가는지, 특히 클라이막스(유튜브 채널 실황공연 약 40분즈음)에서 어떻게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볼 수 있다.
본인의 감정에 치우쳐서 오케스트라를 앞서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오케스트라에 종속된 연주는 더더욱 아니었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는 각자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원래의 박자를 고려한 절제된 템포 루바토를 구현했으며 그것이 오히려 큰 감동을 주었다.
관계의 밀고 당김(밀당)은 모든 인간관계의 필수 요소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부부 사이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밀당은 늘 존재한다. 안목이 있는 사람은 밀당으로 인한 갈등 상황에서도 어떠한 속도로 언제 다가가야 할지를 감각적으로 알아내고,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로 그러한 갈등을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이다.
사람의 마음을 얻기까지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음악에서도 박자를 세는 수준에서 밀당이 가능한 수준이 되기까지에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박자를 넘나들 수 있을 때 음악과의 ‘진짜 관계’가 시작된다.
쇼팽이 그의 음악을 드라마틱하게 만들기 위해 템포 루바토를 활용해서 청중의 마음을 훔치는 연주를 했듯이, 우리도 일상의 삶에서 서로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이미 뛰어난 안목으로 균형 있는 관계를 맺고 있다면 아무 걱정 없다. 서로를 공감하고 때로는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관계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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