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사고를 계기로 우리 사회와 시민의 안전의식에 대해 진단해 볼 때다. 돌이켜보면 최근 30년 내 우리나라는 수 차례 대형사고를 겪었다. 삼풍백화점‧성수대교 붕괴, 세월호 침몰을 비롯해 이천 냉동창고 화재와 같은 인재, 포항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 그리고 대구지하철 화재와 신당역 살인사건과 같은 테러 등이 우리의 일상을 흔들어놓았다. 이에 이번 이슈포커스에서는 우리 사회가 재난에 얼마만큼 대비하고 있는지를 주제로 화재‧지진‧테러로 나누어 다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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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코뿔소’로서 언젠가 큰 피해를 초래할 수 있는 재난 중에서도 화재에 대해 우리 사회와 개개인은 얼마나 경각심을 갖고 대비하고 있을까. 눈앞에 닥친 일이 아니기에 또다시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씨랜드 참사’ 등 대형 화재로 법 바뀌었지만… 피해 규모 오히려 늘어
통계청 e-나라지표에 공개된 전국 화재건수 및 인명피해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총 3만6267건의 화재사고가 발생했으며 이로 인해 2130명의 인명피해(사상)가 발생했다. 전년(2020년 3만8659건, 2282명) 대비 각각 6.18%, 6.6% 감소한 수치다.
약 10년 전인 2012년(4만3249건, 2223명)과 비교하면 화재사고 발생건수는 16.1% 감소했지만, 인명피해는 오히려 4.3% 증가했다.
재산피해도 크게 늘었다. 2012년 화재사고로 인해 총 2895억 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는데, 2021년에는 이보다 3.8배 증가한 1조991억 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대형 화재로 인한 소방법 등 개정을 수차례 겪어왔다. 23년 전인 1999년 6월30일 경기 화성군 ‘씨랜드 청소년 수련의 집’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로 유치원생 19명, 인솔교사 및 강사 4명 등 23명이 숨지는 참사가 있었다.
당시 사고로 건축법, 소방법 등 개정이 이뤄졌다. 화재와 관련해서는 청소년 수련시설에 소화기·소화전·스프링클러 필수 설치 및 건축허가 전 공무원의 현장검증 절차를 의무화하고, 수련원의 내장시설을 불이 붙어도 연소되지 않는 불·난연재로 마감하도록 하고 4m 이상 진입로를 확보하도록 규정했다.
이로부터 4개월 뒤인 1999년 10월30일에도 인천 중구 소재 호프집에서 화재가 발생해 사고 발생 30분여 만에 중·고등학생 52명 등 총 57명이 숨졌다. 해당 현장 역시 스프링클러가 제거돼 있는 상태였고 소화기 또한 제대로 비치되지 않았다.
2018년 11월9일에는 서울 종로구 관수동 소재 국일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7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다.
상대적으로 시설이 열악한 고시원에서 그동안 여러 차례 화재 사고가 발생해왔고, 이로 인해 비상구 확보 및 규격화, 간이스프링클러 설비 등 소방법이 대폭 강화됐지만 또다시 사고가 발생했다.
현재는 어떨까. 안타깝지만 이 같은 ‘사후약방문’에도 유사 사고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2020년 4월 경기 이천시 물류센터 신축공사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38명이 사망했고, 지난해 6월에는 이천 쿠팡 덕평 물류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해 이를 진압하던 소방관 1명이 순직했다.
국일고시원 화재 4주기인 올해 4월 서울 영등포 소재 고시원에서 또다시 화재 사고가 발생해 2명이 숨졌으며, 약 5개월 뒤인 9월 26일에도 대전 현대프리미엄아울렛 지하 1층에서 발생한 화재로 환경미화·시설관리 직원 등 7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후 고용노동부가 전국 대형 유통업체의 산업안전보건법 준수 여부를 긴급점검한 결과, 207곳 중 87곳(42%)에서 위반사항이 발견됐다.
구체적으로 화재 시 비상대피로 방향을 제대로 표시하지 않거나 비상 탈출구가 없는 곳에 비상 탈출구 표시를 한 사례, 압력이 정상범위에 있지 않은 소화기를 주차장에 비치한 사례 등이 적발됐다.
수십 년간 대형 화재로 안타까운 희생이 발생했고 관련 조치도 취했지만, 또다시 기본적인 요소부터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예방교육·단속 투입 예산 부족 등 현실 문제… 시민 안전불감증도 높아
정부 및 지자체에서는 매년 화재 예방교육, 현장점검을 통해 사전예방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제주특별자치도는 ‘불조심 강조의 달(11월 1일~30일)’을 맞아 취약계층 대상 주택용 소방시설을 지원하고, 화재 취약시설 안전점검 및 소방특별조사를 강화했다.
광주 광산소방서 역시 ‘불조심 강조의 달’을 맞아 송정매일시장(전통시장)을 방문해 소방차 출동로 확보 훈련, 주택용 소방시설 설치 촉진 운동 등을 진행했으며, 서울 동대문소방서는 주택용 소방시설 설치 당부 및 홍보용 마스크를 배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한 인식 부재와 함께 홍보 예산 문제 등 현실적인 고충이 발목을 잡는다. 익명을 요구한 소방청 관계자는 “2020년 소방공무원이 국가직으로 전환됐으나 여전히 전체 예산의 약 60%를 지방정부에 기대는 형편”이라며 “지난해부터 5년간 화재예방·대응정책 사업에 7조 원을 투입하겠다 했지만, 이 역시 충족되지 못하는 등 최근 트렌드에 맞는 화재예방 홍보활동을 하고 싶어도 쉽지가 않다”고 말했다.
화재를 대하는 시민들의 경각심 또한 부족하다. 안전불감증으로 인해 소위 ‘화재사고를 접했을 때만 잠시 관심을 갖는’ 형태다.
실제로 서울시가 지난해 초 시민 3517명을 대상으로 ‘안전의식 및 안전교육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10명 중 9명은 화재와 관련된 안전불감증의 심각성을 인지하면서도 이에 대비하지는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서울시의 질문에 응답자의 93%는 심각하다(매우 심각 35.2%, 조금 심각 57.8%)고 답변했다. ‘소방시설 설치 의무 인지 여부’에 대한 질문에 85.5%는 알고 있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거주하는 주택에 소방시설이 설치되어 있다’고 답변한 응답자는 56.9%에 그쳤으며, ‘화재예방을 위한 안전점검 빈도’를 묻는 질문에도 ‘아주 가끔’ 점검한다는 답변이 39.5%로 가장 많았다.
성북구에 거주 중인 직장인 A씨(27)는 “겨울철 특히 화재에 더욱 주의해야 한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매년 11월이 ‘불조심 강조의 달’인 것을 모르고 지냈다”면서 “현재 원룸에 거주하고 있는데 사실 소화기가 어디에 비치돼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일본‧미국 등 이른바 소방선진국에선 소방법에 따라 화재 진압 시설, 경보장치 등이 기본적으로 설치돼야 건물의 허가가 난다. 평소 실시되는 소방점검 역시 정부 산하 기관에서 직접 대규모 정기점검을 진행, 규정을 어겼을 때 매겨지는 벌금의 수위가 매우 높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스프링클러 등이 설치된 연면적 5000m² 이상 건물은 ‘종합정밀점검’(전문업체에 맡겨서 소방정밀점검을 받음)을 받고, 그 이하는 ‘작동기능점검’을 해야 하는데, 특히 작동기능점검이 사실상 건물주 또는 관계인이 직접 ‘셀프점검’하는 형태여서 그간 많은 지적을 받았음에도 개정되지 않았다.
규제가 미미하다 보니 설치 의무화된 주택용 소방시설 설치율 역시 50%대에 머무르고 있다. 미국(96%), 영국(88%), 일본(81%) 등에 비해 크게 저조한 수준이다.
소방청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화재 관련 예방교육이 형식적인 부분을 넘어 좀 더 정기적·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가운데 정부 및 시민들의 많은 도움과 관심이 필요하다”면서 “소방차 길 터주기 등 과거보다 시민의식 자체는 높아졌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에 적정한 규제와 교육이 도입된다면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화재 발생 위험률을 높이는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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