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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베르의 뚝심', '3개월에 걸쳐 협약안이 오갔다. 고무라의 손을 거친 협약안은 여...'))
3개월에 걸쳐 협약안이 오갔다. 고무라의 손을 거친 협약안은 여전히 고종의 환궁을 독촉하고 일본군 주둔을 합리화했다. 베베르가 골몰하고 있을 때, 유제니가 작은 쟁반을 들고 왔다.
“어서 와요. 슬슬 지쳐가는 참인데 잘 왔구려. 그런데 이 구수한 냄새는?”
베베르가 기지개를 켜며 부인을 맞이했다.
“여보, 수라간에서 좋은 야식을 주었어요. 밤에 먹어도 잠이 잘 오고 속도 든든하다고 해서 가져왔어요.”
쟁반 위 백자 안에는 노릇한 건더기와 함께 따뜻한 차가 가득 담겨 있었다.
“냄새가 아주 구수한데요? 안 그래도 출출하였는데 당신이 최고라오!”
베베르가 고개를 돌렸다. 유제니는 쟁반을 탁자위에 놓았다. 조선식 둥근 수저도 있었다. 피곤했던 베베르는 수저를 들고 맛있게 야식을 먹었다.
“수라간 상궁이 숭늉이라고 하면서 주었어요. 밤 늦게까지 일하는 당신에게 좋을 거라고요.”
“정말 속이 훈훈해지는군요. 조선 사람들이 쌀요리를 좋아하는 건 알았지만 이 차는 아주 훌륭하네요.”
베베르가 수저를 놓았다.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계셨군요? 당신 얼굴에 그렇게 쓰여 있어요.”
“당신 말이 맞아요. 국왕께서 여기에 계시니 속이 탄 일본인들이 우리나라와 협약을 맺자고 합니다. 여러 번 수정안이 오갔고 이제 막바지예요.”
베베르가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따뜻한 누룽지차를 마시고 나니 몸이 확 풀렸다.
“일본이야 자신들의 권리를 어떻게든 챙기려고 할 거고… 본국의 입장은 어때요?”
유제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본국은 조선에 대해 적극적이진 않아요. 아시아의 군사 강국 일본의 비위를 거스를까 보아 신중하다오.”
베베르가 대답했다.
“당신의 고민을 알겠어요. 조선을 잘 아는 당신은 이 협약을 좀 더 적극적으로 밀어붙여 일본을 제압하고 싶겠지요. 하지만 일본 또한 물러서지 않으려 할 거고 로바노프 외상께서는 적당한 합의점을 찾도록 당신에게 명하시겠지요.”
“이제부턴 ‘유제니 공사님’하고 불러드려야 하겠소. 당신은 요점을 콕 짚고 있어요!”
베베르가 호탕하게 웃었다. 지혜롭고 명민한 유제니는 베베르에게 최고의 대화상대였다. 그녀는 조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열강의 움직임을 간파하고 있었다.
유제니가 방을 나가고 베베르는 다시 문서에 집중했다. 베베르는 곧바로 수정 대안을 제시했다. 국왕의 아관망명은 왕후 시해의 죄인들로 구성된 배신자 내각이 국왕의 권력을 찬탈한 결과임을 상기시키고, 1조의 내용인 국왕의 환궁 조건은 국왕의 안전 보장임을 확실히 하였다.
따라서 환궁은 ‘국왕의 안전이 궁궐 내에서도 보장이 될 때’, 그리고 이것이 ‘국왕 본인의 판단일 때’ 가능한 사항이라고 밝혔다. 2조 내용인 전신선에 대해서는 독립 국가인 조선 내의 일본의 전신선 보유는 정상적인 일이 아님을 말했다. 3조에서 거론한 일본 수비대의 일본인 거류지(서울·부산·원산) 주둔에는 단호하게 반대했다. 덧붙여 일본군의 조선 주둔이 허용될 경우 러시아 경비대 또한 합법화될 것이라고 했다.
베베르의 이러한 수정안은 다소 강력했으나 그는 일본의 양보를 밀어붙였다. 그는 온건한 인물이었으나 부인 유제니의 평대로 때로는 왱왱거리는 벌과 끝까지 싸웠다.
[글 최문형 그림 박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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