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제국의 꽃’ (106) 서울의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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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연재소설

일본과 러시아 군대의 균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6-08 08:02:00

베베르의 밀어붙이기는 로바노프 외상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조선 문제에 소극적인 러시아는 쟁점을 일본이 유리한 방향으로 타협했다.

5월 14일에 ‘베베르-고무라 각서’(서울의정서)가 체결되었다. 베베르는 당일 저녁, 여느 날과 다름없이 고종을 만났다.

“폐하, 오늘 밤에는 각별히 보고드릴 일이 있습니다. 일본과 본국이 협약을 맺은 사안이 있습니다.”

고종이 베베르에게 자리를 권했다.

“일본은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이 마뜩잖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베베르 공사님?”

“바로 보셨습니다, 폐하. 이 협약의 첫 번째 조항이 바로 그 문제입니다. 하지만 폐하의 환궁 결정에 관한 것은 제가 확실하게 해 두었습니다. 폐하께서 원하시는 시기가 바로 그때입니다.”

“일본군 철수 문제는 어찌 되었습니까?”

고종이 진지하게 물었다.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온 큰 이유 중 하나가 일본군대의 철수를 관철시키는 것이었다. 고종은 이 문제에 대해 수차례 베베르·슈페이예르와 상의했고 러시아의 도움으로 해결되기를 원해왔다.

“그 문제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폐하의 뜻을 받들어 고삐를 바짝 죄었습니다. 보십시오, 폐하! 일본군 전체 병력이 헌병 200명을 포함하여 1000명을 넘지 못하도록 조치했습니다. 일본이 자국민 보호 목적으로 서울에 2개 중대, 부산과 원산에 각각 1개 중대를 배치하도록 했습니다. 1개 중대의 병력은 200명을 넘길 수 없습니다. 더불어 러시아도 동일한 지역에 동일한 숫자의 경비대를 둘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듣고 있던 고종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돌았다.

“훌륭합니다! 베베르 공사께서 수고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저들이 언제쯤 조선 땅에서 철수하기로 했나요?”

“폐하, 기뻐하십시오! 조선 거주 일본인들에게 아무런 위험이 없어지면 즉시 철수하기로 하였습니다.”

베베르가 자신에 찬 어조로 설명했다. 그때 밖에서 엄 상궁의 아뢰는 목소리가 들렸다.

“황공하옵니다, 폐하! 야참을 드실 시간이옵니다. 베베르 공사께서 계시어 함께 준비했습니다.”

엄 상궁은 탁자에 아담한 유기에 담긴 냉면을 내려 두었다. 뒤따른 김 상궁이 베베르 공사의 소반을 놓았다.

“자, 베베르 공사님, 조선의 시원한 냉면을 맛보시지요.”

작은 유기에 동치미 육수와 어우러진 냉면은 고명으로 십자형 편육과 잘 저민 배를 올리고 잣을 띄웠다.

“폐하께서 소인을 이리 아껴주시니…”

고종과 베베르는 깔끔한 물냉면을 함께 들었다.

“폐하, 일본 정부는 친일 인사들을 보호하려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 부분은 적절히 협의하였습니다. 너그러우신 폐하께서 그들에게 각박하게 하시지 않으시니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니라고 해 두었습니다.”

“그렇지요. 일본을 편드는 자들도 나의 백성이고 나의 신하가 아닙니까? 왜국이 조선에 도움을 주지 않을까 생각할 따름이지요. 그들의 마음도 조선을 향하고 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