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민사소송, 환자 입증 기준 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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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중 저혈압으로 사망
대법 “개연성만으로 충분”

임한상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3-09-17 17:21:57

▲ 전신마취 수술 도중 환자가 사망한 사건에서 병원의 배상책임이 인정됐다. 게티이미지

대법원이 병원의 책임을 묻는 의료사고 민사소송에서 기존보다 환자 측 입증 책임을 완화하는 판단을 내렸다.

대법원 1부는 숨진 P씨의 유족이 한 의료재단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의 원고일부승소 판결을 확정했다고 17일 밝혔다.

70대 남성 P씨는 2015년 12월 서울 강서구 소재 병원에서 어깨 수술을 받다 혈압이 떨어져 심정지로 숨졌다.

유족은 담당의사가 환자를 소홀히 대했고 간호사 호출에 바로 대응하지 않아 P씨가 숨졌다고 주장하며 2019년 7월 병원을 운영하는 이 재단을 상대로 1억6000여만 원의 배상금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사건 당일 담당의사는 P씨에게 전신마취제를 투여하고 한동안 수술실을 비운 것으로 알려졌다. P씨의 혈압이 계속 내려간다는 간호사의 연락을 받은 뒤 뒤늦게 돌아온 담당의사는 심폐소생술을 하고 큰 병원으로 옮기는 조치를 했지만 P씨를 살릴 순 없었다.

1·2심 법원은 유족의 주장을 받아들여 약 9000만 원의 손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했고, 대법원 판단 역시 같았다. 그러면서 의료사고 소송에서 환자 쪽이 법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책임을 기존보다 완화한다고 밝혔다.

이전 판례는 환자 쪽에서 ‘일반인의 상식’에 바탕을 둔 의료과실 행위를 입증해야 했다. 또 의료사고 피해가 기존 질병 등 다른 원인으로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도 증명해야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입증 기준이 현실적으로 지나치게 엄격한 데다 치료 지연이나 환자 방치 등 적극적 행위가 없는 경우 환자 측이 피해를 배상받기 어렵다는 논란이 많았다.

대법원은 “이러한 증명의 어려움을 고려할 때, 환자 측이 의료인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 위반, 즉 진료상 과실로 평가되는 행위의 존재를 증명하고 그 과실이 환자 측에 손해를 발생시킬 개연성이 있다는 점을 증명한 경우에는 진료상 과실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정해 증명책임을 완화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환자가 입은 손해가 의료상 과실로 발생한 게 아니라는 점을 의료행위를 한 의사·병원 등이 증명하면 이 같은 인과관계 추정은 깨질 수 있다고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의료사고 민사소송에서 진료상 과실이 증명된 경우 인과관계 추정에 관한 법리를 정비해 새롭게 제시한 것”이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한편 대법원은 같은 날 열린 형사사건 상고심에서 마취를 담당한 의사에 대한 유죄 판단을 뒤집었다.

항소심 법원은 의사의 업무상과실치사·의료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금고 8개월과 벌금 700만 원을 선고했지만 대법원은 의사의 진료상 과실이 피해자의 사망을 야기했는지 증명이 부족하다며 다시 재판하도록 사건을 돌려보냈다.

의사가 수술실에 남아 대응했다면 P씨가 사망하지 않을 수 있었는지 더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임한상 기자 hsrim@skyedaily.com 기자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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