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같이 지구촌 전체의 정치·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갖는 국가의 대통령 선거는 세계사의 흐름을 반영하며 선거 결과는 세계사의 진행 방향을 결정한다.
1945년 미국이 세계 제1의 초강대국으로 등극한 후 1990년 소련이 붕괴될 때까지 냉전시대를 지나는 동안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누가 더 훌륭한 냉전의 전사(戰士)인가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었다. 냉전시대 모든 미국 대통령은 전원 장교 출신이고 대다수가 참전 용사였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냉전 당시 미국 대통령들은 반공투사이기도 했다. 민주당의 아이콘인 존 F 케네디 대통령(제33대)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서 부상을 당한 냉전의 전사였으며, 쿠바 미사일 위기 땐 핵전쟁을 각오하고 소련을 밀어낸 반공투사였다.
공화당의 아이콘인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제40대)은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명명하고 고르바초프 소련 수상에게 베를린 장벽을 허물라고 소리침으로써 소련 제국을 붕괴시킨 냉전의 전사였다.
2차 대전 당시 19세의 해군 조종사로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고 추락당해 죽음 직전까지 갔던 조지 부시(제41대)는 소련의 종말을 마무리한 냉전의 전사였다. 이렇게 미국은 냉전에서 승리했고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되었다.
패권국이 된 미국은 자신이 원했던 세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미국은 본시 딜러(dealer)의 나라다. 장사꾼의 나라였다는 말이다. 미국이 원했던 세상은 모든 나라가 자유롭게 무역하는 세계였다. 국제 분업에 기초한 자유무역은 미국과 미국 시민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 뿐만 아니라 세계인 모두를 풍요롭게 만들 것이라는 막강한 경제학 이론의 뒷받침도 있었다.
소련 붕괴 직후인 1991∼2015년 미국은 유일한 패권국으로서 국가 간의 경제적 장벽이 허물어진 자유무역의 세계를 만들었다. 이 시대를 학자들은 ‘세계화의 시대(Age of Globalization)’ 또는 미국적 표준이 세계에 적용되었다는 의미에서 ‘미국화의 시대(Age of Americanization)’라고 불렀다. 미국이 압도적인 패권을 유지했던 이 시대의 미국 대통령은 빌 클린턴·조지 W 부시(아들 부시)·버락 오바마였는데 이 중엔 냉전시대였다면 상상도 할 수 없던 병역 기피자 대통령도 있었다.
이 기간 동안 미국 대통령 3인은 민주·공화 구분 없이 모두가 ‘자유주의적 국제주의(Liberal Internationalism)’를 신봉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의 시대를 구축하고자 노력했다. 세계화는 물론 결점이 없는 사회는 아니었지만 제프리 프리덴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의 설명은 세계화 정책을 정당화시켜 주는 막강한 논리를 제공했다.
프리덴 교수는 ‘지구적 자본주의(Global Capitalism)’라는 저서에서 “과거 국가들은 자급자족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지금 국가들은 자신들이 제일 잘 만드는 물건을 만들어 수출하고, 그렇지 않은 물건은 수입한다. …국제 분업은 가족과 마을과 국가를 분열시키기도 했고, 끈끈했던 전통사회를 파탄 나게 했다. …모든 대륙의 흩어진 농민과 노동자들은 고통을 당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적어도 그들의 아이들 혹은 손자들은 그들보다 더 잘살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세계화 시대는 궁극적으로 좋은 것이기는 하지만 한 국가 사회의 일부가 파탄남으로써 가능하다고 한 프리덴의 지적은 2015년 무렵부터 본격적 문제로 등장한다.
세계화 시대에서 미국의 정보산업(IT) 엘리트들은 문자 그대로 수퍼클래스(Super Class)가 되어 세계의 돈을 그러모았다. 미국은 부자가 되었지만 미국의 제조업은 인건비가 낮은 나라를 상대할 수 없었다. 결국 미국 제조업의 본산지였고 미국의 힘의 원천이었던 5대호 지역 공업지대가 붕괴되었다. 세계화를 통해 미국이 거두어들인 풍요는 미국 국민에게 골고루 배분되지 못했다.
미국의 동서 해안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세계적 엘리트(Global Elites)’들과 미국 중서부의 폐쇄된 공장 노동자들은 더 이상 같은 나라 국민이라고 볼 수조차 없게 되었다. 중공업의 상징으로 강철 벨트(Steel Belt)라고 불렸던 5대호 연안 주들은 지금은 녹슬어 버린 ‘폐쇄된 공업지대(Rust Belt)’로 몰락했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은 몰락한 미국 노동자들의 반란의 결과였다. 미국 동서 해안지역의 글로벌 엘리트들을 대변하는 민주당은 2020년 다시 정권을 탈환했다. 한 달 한 달 ‘근근이 살아가는(paycheck to paycheck)’ 60%의 미국인은 미국을 다시 찾아와야 한다고 외친다. 이들을 이끌고 있는 국가주의자 트럼프와 세계화 엘리트들이 내세운 카멀라 해리스의 대결이 2024 미국 대선의 큰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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